대학에 입학하고 매주, 매 학기, 졸업 이후 계획을 촘촘히 세우다 보니 문득 지난 3년이 큰 공백처럼 느껴진다. 대학원을 가거나, 취업 준비를 할 때 그 3년 간 무얼 했느냐 물으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선뜻 생각해낼 수가 없다. 더욱이 학교에서 많게는 9살 어린 동기들과 같이 어울리다 보면 내가 새삼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실감하는데, 다시 한번 지나간 세월을 원망하며 의미 없는 셈을 자꾸 하게 된다. '어학을 1년 안에 끝냈더라면, 그때 누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좀 더 부지런했더라면. 그랬더라면 몇 살에 대학에 들어가 이만큼 덜 어린 동기들과 몇 살에 졸업해서...' 따위와 같은 계산 말이다. 해봐야 고작 몇 년인데.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았는데 왜 이렇게 조바심이 날까?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늙는 건 너무 두렵다. 난 아직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데 나이만 자꾸 먹는다. 그래서 잡아놓을 수 없는 이 시간을 눈에 보이는 성과로 치환하려는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을 수료한 학점으로, 저축해둔 돈으로, 쌓은 스펙으로. 그런데 고작 어학증명서와 대학 합격증만으로 지난 3년을 맞바꾸기엔 너무 아깝다. 내 젊음이 함부로 낭비된 느낌이다.
그러나 어쩌란 말이냐. 나는 원래 효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내키면 하고 내키지 않으면 죽어도 안 하는 성질머리 때문에 2년을 준비한 약대시험도 때려치우고 독일 가야겠다고 1년을 일했던 사람이란 말이다. 오래 살 건데 100년 인생에 그깟 1년 늦는 것이 무슨 대수냐며 느긋하게 어학 공부를 했던 것도 나다. 이제 와서 초면인 것처럼 굴어봐야 천성은 어디 안 간다. 어쩌면 이런 성격 덕에 지금 여기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나버린 3년은 내가 낭비한 세월이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으로 충실하게 살아낸 세월인 것이다. 내가 단 한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는 사람이었다면, 모든 이력이 대단한 스펙이 되는 삶을 살았더라면, 지금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있진 않았을 거다. 더 좋은 데 있었을까?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그건 내가 아닐뿐더러 난 지금이 참 좋다. 여기서 만난 친구들도, 하고 있는 공부도. 그래서 좀 우회하더라도 여기까지의 궤적이 뿌듯하고 대견하다. 그리고 관성처럼 앞으로도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나답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역시 난 자기 합리화 하나는 잘한다. 새사람 되기는 글렀다. 그런데 합리화가 나쁜 것이던가...? 어찌 됐건 불평은 그만두고 정 아까우면 백 살까지 살 거 힘내서 백세 살까지 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