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만 남기고 떠난 상상력 씨
“오늘부로 상상력이 퇴사하겠습니다.”
상상력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인수인계도 없이, 나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그동안 내가 상상력을 너무 무리하게 일을 시킨 걸까? 아니면, 너무 오래 한 곳에 가둬뒀나?
사실 상상력과 나는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아니, 했었던 것 같다. 어릴 적 나에게 상상력은 친구였다. 그 시절,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도 상상력 하나면 지구 저편 아메리카, 유럽 등 지구 한 바퀴를 여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상력은 조금씩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우리는 조금씩 멀어졌고, 결국 그는 말도 없이 조용히 퇴사했다.
왜 나이가 들수록 상상력이 사라질까.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패한 기억, 남의 시선, 사회의 틀, 생계의 무게. 이런 것들이 마음의 여백을 채워버린다. 상상의 씨앗이 자랄 자리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 세상을 빠르고 정확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더 좁게 살아간다. 족쇄가 되는 것이다. 상상력은 '모름'에서 시작되지만, 우리는 모르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나는 상상력이 없어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다. 괜찮은 줄 알았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것 같았다. 계획표를 보기 좋게 정리하고, 그날그날의 일정도 꼼꼼하게 적어놓고, 목표를 향해 매일 나아가는 삶. 아주 근사하고 어른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일이 익숙한데도, 이상하게 하루가 버겁고, 눈을 떠도 피곤하고, 무슨 일을 해도 의욕이 없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내고', '살아내고' 있지만, 그 안에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상상력이 없는 삶은 단팥 빠진 단팥빵 같고, 호두 없는 호두과자 같다.
그걸 몰랐다.
상상력이 퇴사한 날, 상상하려 해도 좀처럼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나는 너무 당황했다. 삶에 필요한 건 단지 현실 감각이 아니라, 그 현실을 사랑하고 지탱할 수 있게 해주는 상상력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