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먼튼, 나의 겨울 학교

영하 30도의 문 앞에서

by 디노

캐나다 에드먼튼의 겨울은 혹독했다. 11월 초,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이미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었다. 나는 처음 이곳에 발을 디딘 날, 기온계에 찍힌 –30도라는 숫자를 보고 잘못 본 줄 알았다. 한국에서 입던 점퍼는 이곳 겨울 앞에서 봄·가을용 점퍼처럼 너무나 얇고 초라해 보였다.


이민을 결심하고 가족을 대표해 먼저 3개월 일찍 도착한 나는, 아는 동생이 살고 있던 아파트에 임시로 머물렀다. 20층이 넘는 오래된 아파트, 벽의 낡은 페인트 자국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맞는 애드먼튼의 밤은 참 쓸쓸했다. 외풍이 스며드는 16층 창가에 서서, 눈으로 덮인 인적 없는 거리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가장으로서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가족이 올 집을 알아보고, 자동차를 구하고, 살림에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하나 마련해야 했다. 나조차 처음인 이 도시에서 먼저 발을 디뎠다는 사실은 곧 올 가족들에게는 믿는 구석이었다.



‘이 긴 겨울, 나는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살아보니, 겨울은 나를 가르치는 학교였다. 이곳의 겨울은 재촉하지 않는다. 아침 8시가 되어도 해가 뜨지 않고, 오후 4시가 되면 벌써 어둑해진다. 차갑게 식은 공기, 발밑에서 뽀드득거리는 눈,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겨울의 언어’를 배웠다.


처음 배운 건 ‘외로움’이었다. 집 밖은 온통 하얗고, 조용하다. 사람들은 실내에서 작은 파티를 하거나 벽난로 앞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나는 처음으로 ‘홀로 있는 시간’을 길게 맞이했다. 그 시간 속에서 책을 꺼내 읽고, 글을 쓰고, 나 자신과 대화를 시도했다. 이전에는 너무 바빠서, 너무 시끄러워서 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완전한 자유가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히 장을 봐서 돌아와 나름 근사한 혼밥을 준비하고, TV를 친구 삼아 나만의 만찬을 즐겼다.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음악을 들으며 피곤을 풀기도 했고, 책을 읽다가 그대로 잠드는 사치도 누렸다.


그리고 또 하나 배운 건 ‘인내’였다. 이곳의 겨울은 무려 6개월, 일 년의 절반이 겨울이다. 봄을 기다리며 긴 밤을 견뎌내야 한다. 겨울은 내게 속삭였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해.’



나는 그렇게 겨울에게 배워 나갔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서 있는 나무들처럼, 어떤 계절이든 끝이 있다는 것을 믿는 마음을. 나는 아직 이 학교의 졸업생이 아니다. 여전히 추위에 떨고, 여전히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겨울은 내게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나를 단련시키는 선생님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애드먼튼에 봄이 왔다. 긴 겨울이 지나고 푸른 하늘, 따뜻한 햇살, 쾌적한 바람이 나를 웃게 만든다. 긴 기다림 끝에 만난 봄은 정말 감사하다. 나무들이 연둣빛으로 물들고, 누렇게 말랐던 잔디가 초록으로 다시 살아나고, 옷이 가벼워진 만큼 마음도 한결 가볍고 상쾌하다.

혹독했던 계절이 있었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긴 겨울을 지나고 있는 당신에게, 이 봄이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