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유캔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이 곳은 쏘유캔 현장이다. 다들 이틀 연이은 대회와 오랜 스케이팅으로 지쳐있었다. 그러던 중, 유서프가 모두를 집중시키며 소리쳤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기다리던 남자 스폰서부 파이널 진출자를 발표합니다! 9명의 파이널 진출자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저 멀리 브라질에서 온 브레~~~노!! 월드컵으로 불리는 쏘유캔 다음 파이널 진출자는 어느 나라에서 나올까요? 이번엔 프랑스입니다! 매쥬츄 보드의 아부!! ..... 벨기에 당연히 나와야죠? 크라운보드의 한스!! .. 독일도 있죠? ....
이쯤되서 난 불안해졌다. 처음에 당연히 올라갈 줄 알았던 오멘 라이더인 에반스가 안올라가고 브레노만 불리고, 아부랑 악셀 중 한 명이 불리고, 한스때도 마찬가지였고, 로피와 맹지 중 로피만 불리고, 세미 파이널에 같이 탄 사람 중 한 명만 붙이는 것만 같아서 더 불안했다.
내가 떨어질까봐 불안한 게 아니었다. 내가 붙을까봐 불안했다. 세계최정상인 종빈이와 함께 탔는데, 내가 파이널에 올라가게 될까봐 그게 불안했다. 점점 파이널 진출자는 밝혀져가고, 숫자는 줄어들고 있었다. 불안감이 늘어가고 있었다.
종빈이와 내 이름이 불리지 않은 채, 결국 한 자리만이 남았다.
마지막 남은 파이널 진출자는 누굴까요? 수퍼 코리안! 당연히 코리안 파이널 올라야죠!
난 종빈이 옆에 서있었다. 속으로 빌었다. 부디, 부디, 제발 날 부르지마라. 종빈이 이름을 불러라. 제발. 하느님 제발요.
DO YOUNG !!
아. 유서프가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몸에 힘이 쭉 빠져버렸다. 왜? 내가 불린거지? 종빈이가 나보다 훨씬 나은데.. 왜 우리 둘이 붙어서..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 옆에 있던 종빈이는 형, 축하해요. 라고 말한다. 웃고 있었다. 이건 아니잖아.. 라고 말해도 괜찮다 한다. 이제는 마음 편히 보드타고 맥주 마시면 된다고 한다. 어찌 괜찮을 수 있을까?
발표 후 파이널때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있었다. 그 시간동안 난 우울했다.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보드가 타지지도 않았다. 잘 모르는 보더가 스케잇 게임을 제안해서, 함께 하는 데도 오히려 넘어지고 다치기만 했다. 토비가 조심하라며 괜찮냐며 달려왔다. 파이널 무대 보고 싶다며 걱정을 했다.
잠시 난 구석에 가서 앉았다. 얼마나 혼자 있었을까? 인식하지도 못한 채, 내 이름이 내 귓가에 들렸다. 누구지? 이스라엘 출신, 현재는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아후 크루 중 한 명이자 항상 웃는 모어였다.
'Doyoung ! what's up? what's wrong? 도영! 뭐해? 뭔 일 있어?'
나와 마음이 통하는 모어라면, 세상을 즐겁게 크게 살아가는 모어라면, 내 감정을 말해도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기분을 털어놓았다.
'모어, 내가 파이널에 올라갔어. 근데, 나와 같이 탄 그 누구보다 잘 타는 종빈이가 못올라갔어. 이게 싫어. 답답하고, 짜증나. 쏘유캔 와서 계속 즐겁기만 했는데, 내가 파이널 올라간 게 슬퍼'
모어는 잠시 할 말을 잃었는지, 조용했다. 잠시 후 그는 말했다.
'도영, 무슨 말하는지,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 나도 마샬이랑 탔으니까.'
난 모어가 마샬과 얼마나 친한지 어느정도는 안다.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들의 런을 응원했다. 그런 모어가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고 이해한다고 하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 잠시 말을 끊었던 모어가 말을 이었다.
'근데 난 누가 제일 잘탄다고 말 못하겠어. 가장 좋아하는 라이더를 꼽으라면 꼽아도, 가장 잘 타는 라이더는 못꼽겠어. 잘 타는거? 트릭만 보면, 파비오가 나을걸? 댄싱만 보면, 도영이 너가 잘하고, 종빈이는 둘 다 섞어서 잘타지! 다 다른거야. 넌 너대로 자격이 있어. 그리고 난 너의 파이널 무대가 보고싶어. 너무 우울해하지말고 힘내!'
모어의 말을 듣고나자, 조금이나마 힘이 생겼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누가 누구보다 낫다는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그 다름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이들인까. 그렇다면, 결과가 납득이 되든 안되든, 날 응원하는 이들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추슬렀다.
.....
어느덧 파이널 스폰서부 남자 댄싱/프리스타일이 시작되고, 마침내 마지막인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난 항상 대회에서 내 차례가 시작하기 전에 하는 생각이 있다. 실수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거 최대한 잘해야지! 가 아니다. 이번엔 정말 잘타서 좋은 성적 거둬야지! 가 아니다. 단지, 내가 타는 모습을 보는 다른 사람들이 와! 쟨 진짜 롱보드를 좋아하는구나, 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시간을 함께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번엔 하나가 추가됐다. 종빈이가 보고 실망하지 않는, 부끄럽지 않은 라이딩을 해야겠다, 는 생각 들었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2분에 남김없이 모든 힘을 썼다. 내 런이 끝나고 내게로 달려드는 친구들. 종빈이, 명진이 한국인들, 아후 크루, 스페인 라이딩 어드벤쳐 애들이 내 이름을 외치며 달려들었다. 유서프는 날 무등을 태웠다. 많은 이들이 환호해주는 모습이 기뻤다. 그 중에 종빈이가 당연히 눈에 보였다.
'종빈아, 나 너가 보기에 부끄러운 라이딩은 아니었지?'
'아니에요. 형. 잘 탔어요'
'안 부끄러웠다면 됐다. 그거면 됐다 진짜'
......
내겐 모어가 찍어준 내 파이널 영상이 있다. 여행 중간에 가끔씩 그 영상을 찾아 틀곤 한다. 그 때 당시의 마음처럼, 오늘 하루도 즐겁게, 넘치는 에너지로 그리고 가능하다면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