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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영 May 22. 2016

#14 라이프치히 제2의 홈

가정이란 어떤 것?

 네덜란드 굴리드와 지낼 때, Shreddrei 의 4주년 파티가 내가 독일을 여행하는 중간에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보았던 옛 사진이 떠올랐다. 내가 스폰 받는 바슬 보드의 생일이나 다름없는 날. 그리고 매 주년 파티를 사진으로만 봤는데, 이번엔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날 기쁘게 했다. 바슬보드는 내게 또 하나의 가족과 같으니.



 파티 이틀 전 밤늦게 도착한 라이프치히, 푸근한 세바스찬이 마중 나왔다. 아빠가 되어서 그런가? 더 푸근해진 세바스찬, 웃음이 얼굴에 박혀있다. 다음날, 슈레더레이 구경하고 보드 간단히 타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베로를 만나 함께 놀면서 라이프치히의 넉넉한 하루를 보냈다. 



 파티 당일, 잠에서 깨어난 난 오른 무릎 쪽에 이상을 느꼈다. 뭐지? 통증이 살짝 왔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라고 생각하며 파티에 갔다. 베를린, 독일 다른 지역, 오스트리아 등등에서 사람들이 찾아왔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웠다. 그러나, 통증은 커져갔다. 스케잇 게임을 하는데 난 낄 수가 없었다.



 다들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고, 집에 돌아가 자기로 했다. 양코가 빌려준 약을 바르고 다음날은 나아지기를 소망했다. 내일은 같이 보드 타며 놀자고. 그러나, 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통증은 커지고 커져, 다리를 1도 움직일 수 없었고, 무릎 쪽으로 신경만 써도 미치도록 아팠다. 약이 잘못된 걸까? 통증에 힘겨워하던 난 진통제를 찾기로 했다. 그리고, 가방에 있는 진통제를 꺼내려 몸을 조금씩 움직이는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새벽 6시가 넘어 간신히 잠들 수 있었다.



 결국, 3일을 예정했던 라이프치히에서 7일을 보내며 요양한 후에야 베를린으로 떠날 수 있었다. 새벽에 아플 땐, 병원을 가거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 회복할 수 있었다. 휴식을 취하며 느낀 건 난 참 운이 좋다는 거였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난 내가 얼마나 축복받고, 운이 좋은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아플 때, 내가 있는 장소가 라이프치히라니, 다른 도시였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바슬이니, 난 쉴 수 있었던 거다. 바슬은 내게 아프지 말라고, 나을 때까지 푹 쉬라고만했다. 그동안의 여행의 피로도 있을 테니 쉴 타이밍이 되었다.



 안타깝지만, 사람은 완벽하지 못하다. 무엇이 정말 소중한지를 너무나도 자주 잊곤 한다. 그래서, 사람은 때론 아프다. 소중한 것을 잊지 말라고. 정말 중요한 것을 떠올릴 시간을 준다. 



 그렇게 쉬면서,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옆에 세바스챤, 레기나(여자친구), 베로(바슬, 세바스챤의 아들, 갓 돌이 지났다) 셋이 웃으며 지내는 것을 보니 자연스레 가족, 가정이란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다. 이 커플은 베로가 세상에 나오면서 더 큰 행복을 만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 하나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저러지 않았을까? 내가 막 세상에 나왔을 때, 아직 걷지도 못할 때, 나를 보며 웃었을 것이다. 그리고,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난 아프지만, 저런 눈빛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것이다.



 남은 긴 여행, 잘 해내자. 내 몸은 단순히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니.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 가족을 힘껏 껴안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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