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 from another mother
밤늦게 베를린에 도착했다. 작년에도 그렇고, 베를린에 올때마다 깜깜한 밤이었다. 그래서인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난 베를린이 차가운 감성의 도시라고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에 다시 온 것은,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긴 시간을 계획한 이유는, 아후 패밀리 때문이다. 서늘하고 다가가기 힘든 감성의 베를린, 그러나 좋은 사람들이 많은 베를린, 이번 여행에서 어떤 추억을 남기게 될까?
여행다니며 도시를 옮길때마다 가끔 누군가가 마중나오지 않는 이상, 구글맵 주소에 이끌려 찾아 헤매기 마련이다. 쉽게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나는 근처를 뱅뱅 돌다가 로컬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을 얻어쓰고 연락이 간신히 닿아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난 두 집에서 머물렀는데, 둘 다 아후 패밀리의 집이다. 그리고, 이번엔 둘 다 서핑을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막스 방에서 지낼땐 막스가 여자친구네 집으로 가고 난 방을 혼자 쓰게 해주었고, 볼프 집에서 지낼땐 거실에 카우치를 침대로 바꾸어 지냈다.
밤늦게 들어와서 하루를 보내고, 당연히 아후 크루들과 보드를 타러 갔다. 세계적으로도 자랑할만한 거대한 스팟, 템펠호프(Tempelhof feld)가 있는 베를린. 템펠호프는 베를린 공항 활주로였는데 베를린이 빠르게 확장하는 바람에 공항을 다른 곳에 다시 만들고, 그 곳을 사람들의 공원으로 사용하게 해두었다. 우리나라였으면 그 큰 공간을 다른 식으로 활용했겠지만, 역사적인 걸 중요시여기는 유럽의 마인드 때문이었다. 베를린 아후크루는 템펠호프를 스팟으로 쓰기에, 나도 꼭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갈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스팟에서 신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보드 이외에 즐길 것이 많았다. 내가 베를린에 머문 기간 중 절반 이상이 파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스폰을 받고 있는 의류 브랜드 마날리소의 파티도 있고, 아후 크루 중 한 명의 생일 파티도 놀러갔다. 그리고 노동자의 날인 5월 1일은 베를린에서 큰 축제날이기도 했다. 유럽은 기후 특성상 4월의 날씨가 종잡을 수 없다. 눈, 비, 바람, 해 등 시시각각 날씨가 변한다. 그리고 5월이 되면서 봄이 되고, 날씨가 안정을 찾기에 다들 밖으로 나가 축제를 즐긴다.
베를린 여행에서 그동안 알아왔던 아후들과 진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형제같아졌다. 성격 좋고 모어네 집에서 서로의 오랜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이 행복했고, 내가 멋있게 생각하는 볼프네 집에서 3일 머물면서 그와 나눈 라이프스타일도 좋았다. 제프가 아후 패밀리 첫 번째 인터뷰 대상으로 날 뽑아서 인터뷰 했던 것도 재미있었다. 막스와 하건이 보낸 지난 반 년간의 서핑 여행도 자극이 되었다.
아후들 개개인 뿐만 아니라, 그들의 여자친구 혹은 가족들을 만나는 시간 역시 기뻤다. 서로에게 녹아들어 큰 힘이 되어주는 로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내가 속한 크루, 반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6일간 짧았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사람과의 만남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했느냐 역시 중요한데, 시간을 넘어선 깊은 연결이 서로에게 심어졌다.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오픈마인드라는 단어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되었다.
모어가 날 인스타그램에 태그 걸면서 했던 말.
Brother from another mother.
라이프치히가 또 하나의 부모님이 계신 곳처럼 느껴진다면, 베를린은 또 다른 형제들이 있는 곳이다. 언제고 베를린에 다시 한 번 찾아갈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어서가 아니다. 내 형제들이 있는 곳이라 당연히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다. 형제들아. 잘 지내고 있나. 보고싶은 이들.
처음에 느꼈던 베를린의 차가움이 따뜻함으로 변해간다.
어쩌면 나는 여행을 하며 점점 더 난 코스모폴리탄이 되어가는지도.
세계는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다. 그건 나에게 달려있다. 큰 사람인가 작은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