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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영 Sep 08. 2016

#20 남미의 위험을 몸소 겪다

칼든 강도들이여, 살려줘서 고맙다

 오늘로 콜롬비아에 온지 3일차이다.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시간. 그러나, 누군가에겐 큰 일이 일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다. 남미에서의 여행이라면 특히 분명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남이 아닌 실제 내게 일어난 일이다. 이 이야기를 위해 시간을 돌려본다.


....


 콜롬비아, 보고타에 이륙한 비행기. 창문을 통해 하늘을 보니 파랗다. 페루의 회색 하늘만 보다 파란 하늘을 다시 만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공항에서 20불만 환전해서 택시비를 마련해 카롤리나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어둑해진 저녁 7시. 처음 만난 카롤리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연락이 되었을 땐 함께 보드타자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얼마전에 다리 다쳐 수술하는 바람에 함께 보드 탈 순 없게 되었다. 목발을 짚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어쩔수 없이 보고타에서는 혼자 다녀야겠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카롤리나는 일찍 취침, 나는 콜롬비아에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도착한 날, 떠나는 날 제외하면 9일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6일, 메데진이나 칼리에서 3일을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보고타 돌아다닐 곳을 알아보았다.


1. 황금 박물관

2. 보테로 박물관

3. 볼리바르 광장

4. 몬세라테 성당 가는 길에 그래비티들


 이정도 리스트를 만들 수 있었다. 리스트를 만든 후 날씨를 확인했다. 화요일 구름, 수요일 구름/해, 목,금,토 비, 일요일 해로 기상예보가 나왔다. 일요일엔 차없는 거리라 보드 타기 좋다길래 보드 타는 날로 확정했다. 화, 수는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결정한 후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부모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콜롬비아 도착했다고, 어제는 늦게 왔고, 이야기하고 정보 검색하면서 연락을 못드렸었다.


 '아버지, 엄마! 저 어제밤에 콜롬비아로 넘어왔어요. 날씨는 콜롬비아가 더 좋네요 ㅎㅎ 별 일 없으시죠?'

 '응. 별 일 없지. 도영이 보고 싶네. 11월이 빨리 오면 좋겠다'

 '네ㅎㅎㅎ 한국 가야죠! 집에 가야죠!'

 '알겠어 조심하게 다니다가 집에 오길..'

 '네네!!'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조심하게 다닌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남미가 위험하다고 하는데 얼마나 위험한지를. 조심하게 다니라는 말에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 나.



 그저 새로운 곳을 본다는 사실에 신나 길을 나섰다. 카롤리나 보드가 사마 플3 였는데, 옛 생각이 나서 그 보드를 빌려 나왔다. 카롤리나가 함께 나가지 못하는 대신, 크루징으로 센터 가기 편한 길을 알려줬다. 기상예보대로 흐린 날씨였다. 어제 택시비로 환전한 20불을 다 써서, 100불을 가는 길에 환전했다. 길거리에 파는 콜롬비아 간식을 사먹고, 음료를 사서 크루징 중간에 발견한 공원에서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그런데 이게 왠일? 하늘이 맑아졌다. 여행을 하다보면 나중에 해야지, 하고 미루면 못하고 넘어가는 게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인생과 마찬가지. 좋은 날씨에 야외에서 볼거리를 놓쳐선 안된다, 고 생각하고 리스트 중에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몬세라테부터 가기로 했다. 그 후에 볼리바르 광장을 보면 딱이다.



 내일 좋다는 날씨가 혹 나빠서 비가 오면 날씨 좋은 유일한 날을 놓치게 되는 거니까.

다음날 박물관들 구경하면 되니까. 실내는 날씨하고는 무관하니까.


 고프로로 이쁜 거리들, 사람들을 틈틈이 촬영하고, 가방에 넣으며 움직였다. 지도상 가까이 왔다. 몬세라테 성당은 산 위에 있어서 언덕을 올라가야한다. 근데 내가 보고 싶은건 성당이 아니라 그 아래 가는 길에 위치한 독특한 그래비티들이 많은 거리. 인터넷으로 봤을 때 재밌어보였다.



 가는 길에도 볼거리가 많았다. 사람들도 많았다. 유럽과도, 다른 남미 나라들과도 다른 거리의 느낌이었다. 그렇게 구글맵을 따라 움직였다. 거의 다 온듯했다. 이제 저 위로 조금 더 올라가면 될듯 싶었다. 큰 차도를 건너 걸어가기에 넓은 길을 찾았다.


 조금 이상했다. 차도 하나 차이로 아래는 사람도 많고, 붐볐는데, 이쪽 길은 사람이 많지 없었다. 슈퍼도 있고 청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좀 더 큰 길을 찾으려 옆으로 빠졌다. 옆에 괜찮은 길이 안보이면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뒤에서 누가 날 벽으로 밀쳤고, 사방에서 강도들이 튀어나와 나를 둘러쌌다. 5명의 강도는 손에 칼을 쥐고 있었다. 칼을 흔들며 위협했다. 칼도 칼이지만, 그들의 광기 찬 눈빛이 무서웠다. 한 명은 내 모자와 안경부터 뺏어갔다. 또 한 명은 손에 들린 보드를 가져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난 패닉에 빠졌다.


 'Money ! 돈!'


 시키는 대로 뒷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꺼내 주었다. 내 오른 편 끝에 있는 강도가 칼로 위협하는걸 보고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돌렸다.


 치익! 하는 소리가 가방 오른 어깨끈에서 났다. 섬짓했다. 내가 몸을 안움직였으면?..


 다른 강도들이 달려들어 가방을 뜯어내며 가져갔다. 입고 있던 청자켓마저 뜯어갔다. 물건들을 3명이 가져가고, 2명이 조금 더 위협하다가 떠났다. 왜 그랬을까? 내가 순간 정신이 나간걸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쫓아갔다. 그런 내게 강도가 보드를 던졌다. 더 쫓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Help me !!'


 를 외치며 그 자리를 벗어나 내려갔다. 그런데, 이미 소란을 알아챈 마을 사람들이 이상했다. 올라올 때 안보였던 이들이 나타나고, 날 둘러싸려하는 게 보였다. 마을 전체가 강도단으로 변했다. 보드도 보드고, 혹시라도 내가 뺏기지 않은 게 있는지 생각했나보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그들 틈을 피해 간신히 달려갔다. 약 20미터 정도 내려가니 바로 큰 차도가 보였고, 오는 차를 무시하고, 찻길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위험에서 벗어났다. 그 차도 하나를 두고 아래는 사람이 붐비고, 경찰들이 많이 보였기에.


 이제 안심할 수 있는건가? 놀란 나는 안심할 수 있는 센터인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발을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럴리 없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할까봐 겁이 났다. 그렇게, 간신히 집에 들어왔다. 나는 멍해졌다. 갑자기 온 몸이 떨려왔다. 또다시 멍해졌다를 반복했다.


 하필이면 어쩌다 카롤리나가 다리 다쳐서 혼자 다녀야했을까?

 하필이면 보고타 오기 전에 페루, 리마여서 파란 하늘에 설레었을까?

 하필이면 기상예보가 다른 날들은 비로 되있었을까?

 하필이면 그 길로 들어섰을까?

 하필이면 보고타에 내가 봐야할 선택지가 그거였을까?

 하필이면 집 나서기전에 평소 잘하던 가방 정리를 안했을까?

 

 하필이면? 그게 아니다.

 어쩌면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황상 모든 일들이 꼬였고, 내 부주의가 이런 일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남미가 내게 준 고약한 선물인지도. 그렇게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살았으니까. 나머지는 시간이 문제지, 다 해결하게 되있으니까.


 어쩌면 남미가 내게 마지막으로 주는 미션인가?

 남미에서 남은 20일 동안, 두려움을 극복하고, 더 적극적으로 여행해보라는. 그리고 안전히 돌아가보라는 그런 미션.


 한 번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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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앗긴 것 : 여권, 국민카드, 하나카드2개, 고프로4, USB, 보조배터리, 핸드폰 케이블, 안경, 도수 맞춘 선글라스 2개, 여행하며 틈틈이 쓴 노트, 책 한 권, 셀카봉, 의류, 현금 등등

 

# 안뺏긴 것 : 가장 중요한 나, 보드,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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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히 써서, 나중에 수정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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