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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Mar 29. 2023

loving? lovely!

사랑스러운 엄마를 꿈꾸며

  나는 ‘엄마’를 오래, 깊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이것은 엄마에 대한 사랑보다는 부채감,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 번 시작되면 멈출 수가 없어서 엄마 생각은 늘 적당히 해야 한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도 ‘엄마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사는 엄마를 보며 자라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헌신과는 거리가 먼 엄마였다. 나는 내 삶이 소중했다. 엄마로 사는 게 가슴 벅차게 행복하면서도, 육아에 치여 나를 잃게 될까 두려웠다. 육아도 잘하고 싶고 내 삶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을 종종거리는 마음으로 살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들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게 큰 의미를 갖는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삶의 어느 순간에 나를 즐겁게 만드는 일이 육아 때문에 유예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필사적으로 내 시간을 지켰다. 그렇게 지켜낸 시간에는 책을 읽고, 수를 놓고, 뜨개를 하고, 꽃을 만졌다. 이토록 잔잔한 행위 앞에 ‘필사적’이라는 말을 쓰다니 어쩐지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지만, 나는 누구보다 전투적으로 이 시간을 즐겼다. 단순히 취미로 여겨질 법한 것들을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이고, 온 마음을 퍼부었더니 단순한 취미를 넘어 재능이 되었다. 좋아하는 것들이 생길 때마다 최선을 다해 그것을 즐겼더니 나는 ‘다능인’이 되었다. 때로는 나조차도 내 스스로의 정체성이 궁금할 때가 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누구보다 알차고 즐겁게 내 시간을 채워가는 사람이니까.






  얼마 전,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을 읽다가 깊이 공감한 대목이 있다.


‘사랑스럽다’는 말은 엄마가 굉장히 좋아하는 형용사였다. 엄마는 나를 딱 한 단어로만 표현해야 한다면 ‘사랑스럽다’는 말을 고를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에게는 그 단어가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열정을 아우르는 말처럼 느껴졌었나보다. 그것은 엄마의 묘비명에 새겨넣기에도 딱 알맞은 단어였다. 자애로운(loving) 엄마는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지만 사랑스러운(lovely) 엄마는 남에게 온전히 자신만의 매력을 지닌 사람이니까. p.268


  나는 미셸이 엄마의 묘비명에, 엄마의 이름 앞에 ‘loving’이 아닌 ‘lovely’라는 형용사를 써넣기로 결심한 게 참 좋았다. 그에 앞서 온전히 자신만의 매력을 지닌 삶을 살았던 미셸 어머니의 삶이 참으로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삶도 이대로 쭉 이어진다면 자식에게 온전한 매력을 갖춘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을 것 같아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우리 엄마의 삶이 왠지 더 아프게 느껴졌다. 남편에게 읽은 책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 엄마의 삶에는 엄마를 즐겁게 하는 것들이 없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덧붙였다. 그랬더니 남편은 나와 다른 생각을 내놓았다. “장모님은 요리하는 걸 좋아하시잖아. 내가 볼 때 장모님은 그 속에서 즐거움을 얻으시는 것 같은데? 단순히 요리라는 행위뿐만 아니라 본인이 만든 음식을 남들이 맛있게 먹어주고, 또 맛있다고 칭찬해 주는 게 장모님의 활력이 되는 것 같지 않아? 그래서 나는 장모님이 음식 주신다고 하면 일단 뭐든 다 싸가지고 오는 건데?” 30년 넘게(40년 가까이) 키운 딸보다, 10년 밥 해 먹인 사위가 더 나았다. 남편의 말이 맞았다. 듣고 보니 그게 우리 엄마의 기쁨이었다. 어쩜 우리 엄마는 희생과 헌신의 아이콘답게, 삶의 즐거움조차 이토록 자애로울까. 30년 넘게 묵혀둔 부채감이 조금은 씻겨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자식을 위해 마르지 않는 샘처럼 모든 것을 아낌없이 퍼주는 ‘loving’의 삶을 살았지만, 나는 엄마처럼 살 깜냥도 없고 자신도 없다. 나는 그저 자식에게 종속되지 않고 자식을 내 삶에 종속시키지도 않고 온전히 나로 설 수 있는 ’lovely’한 사람이고 싶다. 우리 가족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았으면 좋겠다. 서로를 지독하게 사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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