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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Apr 04. 2023

결혼 후에 달라진 마음

이해하고 배려하고 더 나아가 다름을 사랑하겠다던 다짐은 어디로?


  요즘 뒤늦게 팟캐스트의 매력에 빠져 좋아하는 작가들이 출연한 방송을 찾아 듣고 있다. 지난주부터는 나의 고독한 고양이과 시절 긴 새벽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뮤지션이자 다정한 에세이스트, 오지은 언니가 출연한 ‘영혼의 노숙자’를 듣고 있다.


  ‘계간 오지은’이라는 코너에 남편인 성진환 오빠와 함께 출연한 방송을 들었는데, 방송된 날짜를 보니 21년 3월이었다. 성진환 오빠가 만화를 그리고, 오지은 언니가 글을 쓴 ‘괜찮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라면’이 출간된 후 출연한 방송인 것 같았다. 책 이야기를 나누다 성진환 오빠가 한 말이 내 마음을 꼭, 붙잡았다.


성진환 : 책을 함께 쓰다 보니 집에 마감인 사람이 둘이나 있어서 막판에는 좀 힘들었습니다.
셀럽 맷 : 그런데 책에는 글보다 만화가 더 많던데, 마감 속도를 맞춰야 했다는 것은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오지은의 큰 웃음)
성진환 : 책을 읽으신 많은 분들께서도 공감하실 것 같은데 분량이 적어도 오지은 씨의 글은 무게감이 굉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지은 씨가 누워있는 시간도 그냥 노는 게 아니고 일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런 시간을 통해서 음악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굉장히 좋은 결과물이 나오거든요.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오지은 언니의 와식 생활은 반려견 흑당이마저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그런 시간을 ‘인정’해주는 데서 더 나아가 애정을 담아 바라봐줄 수 있다니. 이 사랑은 대체 뭘까, 신기하면서도 대단한 마음이 드는 한편 아직 애가 없으니 가능한 거라는 애 엄마다운 생각을 했다.


  우리집에도 낮에 자주 누워있는, 잠을 많이 자는 남자가 있다. 남편은 연애 시절부터 수면에 어려움을 겪었다. ‘밤에 피는 장미’라고 놀렸을 정도로 남편은 심각한 야행성이다. 밤새 깨어 있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드는데 몇 시간 못 자고 일어나 출근을 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주말이면 누적된 피로로 인해 시체처럼 뻗어 있는 날이 많았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함께 생활하기가 다소 불편하긴 했어도 견딜 수 있는 정도였지만, 아이가 태어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해가 뜬 뒤에도 자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주말에도 무거운 육아의 짐을 나 혼자 떠안는 것 같아서 화가 났고, 나의 화는 자주 폭주했다.


  그런데 성진환 오빠는 달랐다. 단순히 아이가 없어서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우기기에는 좀 찔릴 정도로, 누워있는 배우자를 대하는 마음의 크기가 달랐다. 성진환 오빠 역시도 조금 불편하긴 했으나, 오지은 언니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다름을 이해했으며 안위를 걱정했다. 모든 마음의 기저에는 애정이 있었다. 나 역시 수면에 어려움을 겪는 남편을 이해한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밤이면 잠을 자고 아침이면 일어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너무도 당연한 일을 못 해서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며 속 터져하면서, 겉으로만 남편을 이해하는 ‘척’ 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들여다보니 왕년의 내 일등 가수, 내가 제일 사랑했던 뮤지션 오지은 언니와 내 남편은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았다. 수면에 어려움을 겪는 것부터 시작해서 예민한 성정의 구석구석이 닮아있었다. 오지은 언니 좋다고 노래를 불러대더니 결국 오지은 언니를 닮은 남자를 만난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의 고독한 시절을 버티게 해 준 게 오지은 언니였다면, 나를 고독한 시절에서 꺼내준 것은 지금의 남편이었다. 그는 오지은의 음악을 듣는 나를 좋아해 주었고, 나는 나와 함께 오지은의 음악을 즐겨줄 수 있는 그가 좋았다.


  공교롭게도 2013년 남편과 가졌던 공식적인 첫 데이트에서, 우리는 함께 오지은 언니의 공연을 보러 갔다. 그날 공연을 보기 전에, (오지은의 ‘인생론’ 가사처럼) 고독한 고양이과 사람이었던 우리가 함께 모던락을 즐기는 소년 소녀가 되었으니 이제 이빨이 여덟 개가 보이도록 웃는 일만 남았다고, 서로에게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난다.


  2013년 가을에 느꼈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 나의 모던락 소년을 힘껏 사랑해야지.












글을 마무리하고 나니 갑자기 우리의 청첩장 인사말이 생각났다.

내가 써놓고, 어쩜 이렇게 새까맣게 잊고 살았을까. 결혼 8년 차 부부의 삶이란…


봄빛 쏟아지는 눈부신 5월
저희 두 사람이 부부로서의 삶을 시작하려 합니다.

C(남편)을 이해하고 E(아내)를 배려하고
더 나아가 서로의 다름을 사랑하겠습니다.
지금의 마음 변치 않고
서로의 곁을 지키며 예쁘게 살겠습니다.

오셔서 지켜봐 주시고 축하해 주신다면
저희에게 더없는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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