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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Jun 11. 2023

착한 거 아주 지긋지긋!

모질이로 사는 건 이제 그만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아이들이 장난감 정리하는 걸 감독하며 책을 읽고 있었다. 지난주에 동네 축제에서 데이브레이크 공연을 본 둘째가 ‘들었다 놨다’를 얼토당토않게 부르는 게 너무 귀여워서 원곡을 틀어주었더니, 첫째가 ‘엄마 책 읽는데 방해되는 거 아니에요?’하고 물었다. 그 말이 너무 다정하고 스윗해서 엄청난 감동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평소에 내가 집에서 책 읽을 때 조용히 하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한 아이의 배려심이 속상하기도 했다. 나처럼 대책 없이 착한 애로 클까 봐.


  요즘 나는 착한 사람 지긋지긋 콤플렉스를 앓고 있는 중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착하다고 하면 ‘내가 얼마나 나밖에 모르는 사람인데 뭘 모르시네‘ 했었는데, 내가 틀렸다. 나는 너무 착했다. 나는 너무 미련하게 착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모난 말로 내 마음을 상하게 하면 그 사람이 속은 안 그런데 말을 생각 없이 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그 사람을 이해했다. 속이 그렇든 아니든 간에 일단 생각 없이 말을 뱉어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했으면, 생각 없이 말을 한 그 사람이 잘못한 건데 대체 왜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까지 들여다보며 상대를 이해하고 있는 걸까. 이런 모질이 같은 내가 갑자기 지긋지긋했다. 마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니 모든 관계가 다 삐걱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가장 힘들었던 관계는, 가족이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엄마. 나에게 엄마는 연민의 대상이었는데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엄마의 몸에 깊게 벤 고단한 생활의 냄새를 맡으며 자라온 탓에 나는 자연스레 ‘착한 딸 콤플렉스’를 체득하게 되었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공감봇’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고, 엄마의 말에 반기를 드는 건 ‘감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엄마가 틀렸다고 생각할 때도 많았고, 엄마의 거침없는 언어 폭격으로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이해했다. 지난했던 엄마의 생활을 되짚어 보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엄마의 모든 속사정을 알고 있는 나는 엄마를 이해해야만 했다. 그렇게 자타공인 착한 딸로 40년 가까이 살다 보니 내성이 생겨 앞으로 남은 인생도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결혼을 앞둔 동생의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미래의 우리 집 며늘아기가 참 괜찮은 것이 문제였다. 여기서 괜찮다는 건, 착하디 착한 우리 집 결에 딱 맞는 착한 아가씨라는 것이다. 착한 것이 왜 문제냐? 저렇게 사정없이 착하면 분명 우리 엄마가 며느리를 편하게 대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큰 화를 불러올 거라는 슬픈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슬픈 예감이 들어맞기 전에 엄마가 바뀌어야 했다. 며느리는 자식들과 달리 엄마의 힘들었던 세월을 함께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엄마를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데, 순진한 우리 엄마는 며느리를 자식 대하듯 할 게 뻔했다. 그래서 내가 총대를 멨다. 하필이면 우리 가족 중에 제일 물러터지고 제일 착하고 제일 눈물 많고 제일 등신 같은 내가, 총대를 메고야 말았다. 엄마를 가장 사랑하는 죄로.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안고 살던 어느 날. 갑자기 그 돌덩이가 불에 덴 듯 뜨거워졌고 화산이 터지듯 감당할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결국 나는 터져 나온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울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간 내가 엄마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엄마를 이해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마음에 없는 모진 말까지 다 끌어다 엄마에게 상처를 퍼붓고야 말았다. 정말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그간 응축됐던 세월이 한 번에 터지니 그토록 ‘착한’ 나조차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일곱 살, 네 살 작은 꼬마들을 키우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히고, 나 역시 아이들 마음에 수없이 많은 생채기를 내고 있으면서, 엄마한테 왜 그랬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른 방식으로 총대를 메고 좀 더 유연하게 상황을 맞이하고 싶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두고 후회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날의 사건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가슴이 아팠고, 상처를 받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거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우리의 관계가 조금은 나아질 거라는 것도 안다. 해묵은 엄마와 나의 관계도, 이제 막 기초 공사를 시작한 우리 집 꼬마들과 나의 관계도, 분명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래야 그날의 총잡이가 조금은 덜 억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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