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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Oct 08. 2023

고요한 날들

더 깊고 깊은 호수가 될 수 있기를

  무척이나 고요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고요는 고독이 되어 자꾸만 나를 가라앉게 만드는데 이상하게도 침잠하는 기분이 나쁘지가 않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삶의 무게가 무거워졌기 때문일까. 이따금 내쉬는 한숨의 깊이마저 깊어진 것 같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다. 나는 점점 깊은 호수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올해 세운 계획 중 가장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은 옷을 사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옷장에 옷이 한두 벌 더해져도 내가 입고 다니는 옷은 늘 거기서 거기고, 멋지게 차려입은 멋쟁이가 되고 싶지만 내 현실은 배 나온 애 엄마고, 이런 아줌마 몸에 돈 들여봤자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카드값만 늘어날 뿐이라 특단의 조치를 내렸는데 결과가 꽤나 만족스럽다. 처음 몇 달은 계획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구매욕을 눌러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옷을 포함한 대부분의 소비가 시들해졌다. 구매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니 생활에 탄력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고, 이로부터 비롯된 공허함이 나를 점점 가라앉게 만든 것 같다. 급기야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침잠’이라는 단어를 꺼내 내 마음 상태를 설명하게 될 정도로, 마음이 깊어졌다.


  나는 깊어진 마음이 좋아서, 더 깊어지고 싶어서 더 열심히 나를 돌봐주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지나가는 생각도 꺼내서 다시 한번 곱씹어 보고, 차분히 가라앉는 마음을 즐기며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자칫 극한의 고독으로 치달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롭지 않은 건, 내 호수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반짝이는 물결이 일렁이기 때문이다. 가만 보고만 있어도, 눈만 마주쳐도 사무치게 예쁜 나의 아이들이 잔잔한 호수에 빛나는 윤슬을 만들어 주는데 그게 참 사람을 충만하게 한다. 외로울 틈을 내주지 않는다.


  언제나 철이 없던 마음이 이제서야 조금 어른이 된 것 같다. 붕붕 들떠 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차분히 삶을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부디 이 고요가 내 삶에 오래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내 안에서 마음 편히 빛을 내고 마음껏 일렁일 수 있도록, 내 마음이 어떤 상황에서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내가 더 깊고 깊은 호수가 될 수 있도록. 고요한 날들이 계속해서 나와 함께 해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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