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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Oct 14. 2023

‘빌려서’ 읽고 싶은 책

손을 깨끗하게 씻고 싶게 만드는 읽는 생활

  아이들을 미술학원에 보내놓고 생긴 한 시간의 여유, 혼자 동네 도서관에 갔다. 이 동네에 햇수로 6년째 살고 있는데 오늘 처음으로 대출증을 만들어 책을 두 권 빌려왔다. 내 책이든 아이 책이든 보고 싶은 책은 구매해서 읽는 편이라 도서관에 갈 일이 없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어쩐지 좀 도서관이 싫었다. 수험생이던 시절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몇 년 간 매일 도서관에 출근 도장을 찍었던 터라 도서관의 공기와 냄새가 너무도 지긋지긋해서, 굳이 책을 읽기 위해서까지 도서관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미술학원 근처에는 혼자 들어가 책을 읽고 싶은 조용한 카페도 없고, 집에 다시 가서 엉덩이만 잠시 붙였다 나오기도 귀찮은 데다, 마침 ‘빌려서’ 읽고 싶은 책도 있던 터라, 오늘은 기꺼운 마음으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되는데 사서 읽으면 부담이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듣곤 한다. 슬금슬금 오른 책 값에 흠칫 놀라게 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책을 사서 읽는 게 좋다. 내가 책을 사서 읽는 건 책에 대한 소유욕을 채우기 위한 탓도 있지만, 나는 그냥 새 책이 좋다. 이건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와 머리카락은 참을 수 있지만 손이 더러운 건 참지 못 하는 나의 이상한 결벽과도 닿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손때 묻은 물건’이 주는 정취를 참을 수 없는 불쾌감으로 여기는 낭만이 없는 사람인지라, 나에게 있어 도서관의 책은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 찝찝한 ‘물건’일 뿐이었다.


  그랬던 나인데, 왜 갑자기 ‘빌려서’ 읽고 싶은 책이 생겼냐 하면 쌓여가는 책들을 감당하는 게 벅차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작가의 책들은 소중하게 꽂아두고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꺼내 읽기도 하지만, 또 어떤 책들은 분명 내 마음이 동해서 구매했던 책일 텐데도 시간이 흐른 뒤에 보니 그 마음이 시들해져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는 불편한 생각이 들게 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책을 살 것이지만, 우리 집의 크기는 쉽사리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 책장을 늘릴 자리가 없다. 그렇다면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준을 만들었다. ‘훗날 언젠가 다시 꺼내 볼 책인가’를 떠올려 봤을 때, 그렇다 싶으면 구매를 하고 그게 아니라면 대여를 하자!


  구매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장바구니에 담아 둔 책들이 여럿 있는데, 오늘은 그 중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를 빌리기로 했다. 이건 책 읽는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한 책인데, 제목이 너무 노골적인 느낌이라 끌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유명하니 한 번쯤 읽어보고는 싶으면서도 왠지 실망할 것 같아서 선뜻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책이다. 도서관에서 아이들 수업을 기다리며 조금 읽고, 멈출 수가 없어서 아이들 재워두고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다 읽고 든 생각은 진작 사서 읽을 걸. 왠지 뻔한 이야기라 실망할 것 같았던 나의 예측은 정확히 빗나갔다. 책의 구성이, 짜임새가 특히 좋았다. 각 장마다 각기 다른 하고 싶은 말을 전하면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구성력에 감탄했다. 뭐야, 이 책은 소장해도 좋았을 뻔했잖아. 읽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오늘 대출해 온 또 다른 책, 김신지 작가님 책은 처음이라 사실 이것도 좀 걱정이 되긴 한다. 어떤 작가가 좋아지면, 그 작가의 책은 모두 수집하고 싶어 하는 나의 팬심이 고개를 들고 올라오면 어쩌나. 이 책마저 좋아버리면 나의 대여 생활은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 구매 생활로 돌아가게 될 텐데. 아, 이를 어쩌나.


  책이라는 게 참 그렇다. 그냥 단순히 예뻐서 사 들이는 사치품과는 다르게, 책은 독자인 내 마음에 착 들어맞아야 그만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인데 읽기 전까지는 그 가치를 알지 못하니 소유하는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얄궂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구매 기준을 세워두고 흡족해했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 간 기분이라 다소 허망하지만, 이 와중에 기쁜(?) 일도 있다. ‘빌려서’ 읽고 싶은 리스트에 있던 책이 우리 동네 도서관에 없어서 희망 도서 신청을 했는데, 오늘 책을 읽다가 ’빌려서‘ 읽고 싶은 책이 또 생겨서 이것도 신청을 해 두었다. 희망 도서는 한 달에 두 권까지만 신청할 수 있다는데 두 권의 찬스를 대여 생활 첫날 다 써버린 내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희망 도서 들어오면 바로 달려가서 1등으로 새 책 빌려 올 생각에 두근두근. 뭐가 됐든 어찌 됐든 나의 읽는 생활은 계속해서 즐거울 테니 신난다. 손이야 뭐 깨끗하게 씻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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