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든 뱃살만큼 늘어난 두통
몸무게가 줄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무려’ 2kg이나 줄었다. 겨우 2kg 가지고 뭐 그리 호들갑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30대 후반이 되니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출산 전에는 먹는 것에 신경 좀 쓰면 2-3kg 정도는 쉽게 줄일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내 몸무게는 야식을 끊고 군것질을 줄이고 식사량을 줄여도 요지부동이었다. 근데, 그렇게 대쪽 같던 몸무게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갑자기 줄어든 것인가? 곰곰 생각해 보았더니 아무래도 범인은 스트레스인 것 같았다. 몸무게가 줄어든 덕분에 불편하게 입고 다니던 청바지가 조금 덜 불편해지긴 했지만, 청바지가 덜 불편해지는 동안 내 마음에는 엄청나게 큰 불편함이 자랐다.
이제 정말 마흔이 코 앞인데, 나는 이제서야 ‘사회초년생’이 된 기분이다. 봄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대책 없이 들떠서 올 한 해가 얼마나 아름답게 흘러갈지 잔뜩 기대에 차 있었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양아치 같은 고용주 때문에 호되게 마음 앓이를 했다. 밖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내가 안쓰러워 다시 집으로 불러들이고 싶었지만, 나는 그 사이 고정된 수입의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구직 시장으로 나를 내몰아 어떻게든 수입원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2학기에는 중, 고등학교 시간 강사로 일하며 재미있는 삶을 살게 될 줄 알았으나, 그것은 아주 큰 오산이었다.
사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모든 문제는 다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햇수로 7년째, 내 아이들과 기싸움을 벌이며 살고 있는 ‘엄마’이다. 아이들이 떼를 쓰는 수많은 상황에,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나여야만 했다. 나는 내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야만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잡아주기 위해서는 어른인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엄마로서의 권위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갈 때도 이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갔는데, 그것은 참 어리석고 미련한 선택이었다.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이번 학기는 지난 학기보다 수업 시수가 늘어서 훨씬 많은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학기 초에는 너무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입력되다 보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조금 적응이 될만하니 다른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 말을 정말 심각하게 안 듣는다는 것이었다.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중학생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는 시간 강사의 말을 잘 들어줄 리도 없는 데다, 나는 중학생들에게 먹힐 카리스마라는 게 0.1g도 없는 물러터진 아줌마일 뿐이었으니, 어찌 보면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 게 당연했다. 그러면 그냥 적당히 내게 주어진 시간을 보내고 왔으면 되는데, 나는 대한민국의 ‘엄마’이고 한때나마 열정이 넘쳤던 ‘교육자‘로서 그 꼴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집에서 내 새끼 다루던대로) 아이들을 통제하려는 마음이 불쑥 치고 올라왔지만 이곳은 학교였고, 내 새끼 다루듯 기싸움을 벌여봤자 아무 말도 들을 의지가 없는 상대와의 전투 끝에 다치는 건 내가 될 게 뻔했기 때문에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굉장히 무력했다. 단순히 돈만 버는 일 말고, 내 삶에 의미가 되고 활력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그 어떤 의미도 되지 않았고, 무력감만 안겨줄 뿐이었다. 한동안은 아이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내가 선생으로서 자격 미달인 것 같아서 우울하기도 했다. 그러다 또 어느 날은 아이들을 휘어잡을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선생이라고 여기는 건 너무 어처구니없는 생각 같아서 기가 차기도 했다. 매일 계약 종료일만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다가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전략을 바꿨다. 그것은 바로 ’힘 빼기의 기술‘! 정교사들도 힘들다 힘들다 하는 마당에 나 같은 시간 강사 나부랭이가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하는 건 너무 원대한 포부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편하게 가기로 했다. 너무 애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수업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들을 품고 가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데, 자꾸만 수업에 어긋나는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애쓰다 보니까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관심을 줄 에너지가 없었다. 이게 다 내가 사회초년생이라, 경험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하니 깊은 한숨이 났다. 그래서 앞으로는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을 너무 괘념치 말고, 가벼이 여기기로 했다. 미운 아이들을 미워하지 않고, 예쁜 아이들을 마음껏 예뻐하기! 아이들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내 방식대로 나답게 사랑하기! 그리고, 마음에 힘 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