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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Aug 15. 2024

국제 학교의 첫날, 울보 엄마의 일기

2024년 8월 14일 수요일 날씨 맑음

  캄캄한 밤, 자고 있는데 재이가 내 등을 톡톡 두드렸다. 돌아누워 재이를 봤더니 작게 웅크리고 내 품으로 파고든다. ‘무서운 꿈을 꿨어. 학교 처음 가서 떨렸나 봐 자꾸 잠이 깨’ 재이의 말에 울컥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재이를 달랬다. ‘엄마도 중국 처음 올 때 엄청 걱정되고 떨렸거든? 근데 막상 와서 보니까 괜찮더라? 재이도 그렇지 않았어?’, (끄덕끄덕) ‘아마 내일 학교도 똑같을 거야. 가기 전이니까 떨리는 거고 가서 보면 또 괜찮을 지도 몰라’ 위로가 되지 않을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달리 전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아 속상했다. 재이를 토닥여 재우고 있는데 시안이도 뒤척이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겪고 있을 극도의 긴장감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눈물이 흘렀다. ‘엄마, 지금 4시인데 6시까지 계속 못 자면 어떡해?’, ‘괜찮아 엄마가 안아주면 잘 수 있을 거야’ 잠을 험하게 자는 아이가 오늘따라 가만히, 작게 웅크리고 자는 게 가여웠다. 재이의 작은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니 이내 깊은 숨소리가 들렸다. 재이는 잠이 들었지만, 나는 날이 밝아오는 걸 보며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아침이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 알람을 끄고 조용히 일어나 아이들의 준비물을 점검했다.


  중국 학교는 아침을 먹는 것부터가 일과의 시작이라 7시 30분까지 등교를 한다. 밤새 잠을 못 잔 아이들을 5분이라도 더 재우려고 기다렸다가 6시 40분에 깨웠다. ‘엄마, 마지막에는 잘 잤어. 엄마가 해 준 얘기 듣고 마음이 놓여서 잘 잤어.’ 재이의 명랑한 인사가 참 기특하고 고마웠다. 양치하고, 세수하고, 옷만 갈아입혀 바로 출발. 7시에 차를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18층 버튼을 찾느라 순간 멈칫했다. 중국에 온 뒤로 항상 아이들과 함께 붙어 다녔던 터라 엘리베이터 버튼은 늘 아이들 차지였기 때문에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공허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맞다, 화장실! 괜히 조금이라도 더 재우겠다고 시간을 촉박하게 만들어서 정신없이 준비하고 나가느라 아침에 아이들 화장실 들렀다 가는 것도 깜빡했다. 아이들도 긴장해서 잊은 것 같았다. 차 타고 이동 시간이 20분 정도, 가자마자 아침을 먹고 교실로 이동한다고 했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아이가 혼자 해결할 수 있을까? 괜히 참다가 첫날부터 실수하는 건 아닐까? 첫날부터 이런 일로 아이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다니 그런 기본적인 것도 챙기지 못한 내가 너무 싫었다. 걱정이 커질수록 마음이 점점 더 조급해져 급기야 눈물이 났다. 시안이는 아직 어리니까, 한국인 선생님께 메시지를 남겨놓았지만 재이가 걱정이었다. 부디 무사히 오늘 하루를 잘 보내고 올 수 있길.


  다음 주까지는 방과후 수업이 없어서 정규 수업이 끝나는 3시 15분에 하교를 한다.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데리러 갔더니 교문 앞이 학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담장 너머로 아이의 얼굴을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순간, 환하게 피어나는 웃음꽃. 맑게 핀 아이의 얼굴을 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엄마, 진짜 재밌었어! ‘ㅇㅇ초’보다 훨씬 재밌었어!’ 고작 하루 갔다 온 학교가 한 학기 다녔던 학교보다 재미있다니. 역시 현재에 충실한 걸 보니 내 아들이 틀림없다. 형에게 질 세라 시안이도 합세하여 오늘 하루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를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아, 다행이다. 더 다녀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한시름 놓았다.


  ‘재미있었다’라는 커다란 말 뒤에 가려진 작은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분명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었을 테고,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한 순간들도 여러 번 있었을 텐데, 그 모든 당혹스러운 순간들을 작게 만들어 준 ‘재미’에게 참 고맙다. 재미 덕분에 오늘 하루 아이들이 명랑하게 제 몫을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일은 아이들이 더 커다란 재미와 함께 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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