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높고 터무니없이 작은 집
‘내가 하는 일이 아무리 작고 하찮고 보잘것없어도,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있어! 나도 내 삶이 있다고!’
출국 2주 전, 펑펑 울며 남편에게 소리쳤던 말이다. 당시에 나는 내 손에 쥔 작은 알사탕 같은 행복들이 너무도 소중해서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어딜 가도 계속해서 본인의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으니 상관없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내 나라에서’ 소박한 재미를 느끼며 사는 안분지족의 삶을 살고 싶었다. 내가 엄청난 걸 바란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원했을 뿐인데 그 쉬운 걸 누릴 수 없어 매일 마음이 무너졌다. 매일매일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한국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싶은 내 마음과 중국행을 포기하지 않는 남편의 고집 사이에 놓인 팽팽한 긴장감.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고, 쉽게 좁혀질 것 같지 않던 마음의 거리가 좁혀진 것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고집 뒤에 가려져있던 그의 진짜 마음. 그가 왜 그렇게 중국행을 고집하는지를 알게 되니, 그제서야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그가 학문을 하며 겪었던 어려움을 우리 아이들은 겪지 않길 바란다고, 훗날 본인이 아이들의 삶에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학자의 길을 포기할 수 없다고도 했다. 나는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놓인 작은 행복과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눈이 멀어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그는 더 큰 가치를 추구했고 더 먼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을 바꾸었다. 남편을 믿어보기로 했다.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던 마음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니, 비로소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마음을 바꾸었더니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졌다면 좋았겠지만, 정말 마지막까지 쉬운 건 하나도 없었다. 출국 준비를 하는 내내 애를 태웠던 비자는 출국 전날 오후가 되어서야 받을 수 있었고, 우리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받은 비자를 손에 쥐고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에서 살 집조차 정해지지 않은 채로, 무작정. 대책 없이 용감하게 한국을 떠났다.
중국에 도착해 호텔에서 나흘 밤을 묵고 난 뒤, 가엾은 우리를 반겨준 건 한없이 높고 터무니없이 작은 집이었다. 남편의 회사에서는 일단 급한 대로 이곳에서 지내고 있으면 나중에 큰 집으로 바꾸어준다고 했지만, 일단이 언제까지이고 나중이 언제 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이 와중에 위로가 되는 사실도 있는데 그건 우리 집이 깨끗한 새 집이라는 것이고, 열 평 남짓한 작은 집의 창에는 초록빛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멍하니, 창 밖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맑은 숨이 쉬어진다. 언제까지 살게 될지 모르는 이 작은 집은 벽도 하얗고 바닥도 하얗고 창 밖은 온통 초록이다. 이것은 곧, 예쁘다는 말이다. 시각적인 것이 중요한 나에게는 ‘일단’ 합격!
크고 멋진 집이면 더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집이 작긴 해도 예쁘니까 낯선 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 데 정을 붙일 안식처로서는 제법 훌륭한 것 같다. 예쁜 집을 만났더니 새로운 알사탕이 하나 생겼다. 분명 이전의 것과는 다른 모양, 다른 맛의 행복일 테지만, 이제까지 내가 알던 것과 다르다는 점이 나를 설레게 한다.
정저우의 높고 작은 집에서 만나게 된 행복, 만나서 반가워. 앞으로 나랑 사이좋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