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8일 수요일 맑음
한때 나는 자타공인 알아주는 빵순이였는데, 언제부터인가 빵 사랑이 시들해졌다. 빵이 싫은 건 아니지만, 빵순이로 살 때처럼 맛있는 빵집을 찾아다닌다던가 매일 빵이 먹고 싶다던가 하는 마음은 사라졌다. 그냥 어쩌다 가끔 맛있는 빵이 먹고 싶은 정도.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중국에 오니 내가 마음 편히 의지할 수 있는 먹거리가 많지 않았다. 만만하게 기댈 수 있는 게 빵이었다. 처음에는 중국은 빵도 맛이 없어서 절망에 빠져있었는데, 하나둘씩 맛있는 빵집을 찾으며 기댈 언덕을 발견했다. 맛있는 빵집은 이곳 물가에 비해 비싸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긴 하지만, 기분 전환을 위해서는 맛있는 빵이라도 먹어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봤자 왕년의 빵순이 입맛에는 엄청 맛있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괜찮네 싶은 정도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은 마음… 다람쥐가 도토리 모으듯 맛있는 빵집 리스트를 차곡차곡 늘려나가는 중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겨버렸다. 갑자기 빵이 그만 먹고 싶었다. 계속 아침으로 빵을 먹었더니 질려서 먹기 싫었다. 그렇다고 다른 게 먹고 싶은 것도 아니고 마땅히 먹을 게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질려서 먹기 싫었다. (이럴 땐 정말 나조차도 입 짧은 내가 질린다!)
아침에 빵 대신 먹을 새롭고 안전한 맛을 찾던 중에 한국 친구가 시안이에게 준 검은콩 두유를 발견했다. 마침 나의 효자 아들이 몇 모금 마시더니 안 먹겠다고 두고 간 것을 차마 버릴 수 없어 내가 마셨는데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바로 알았다. 이거다 이거! 내가 아는 맛! 너무도 익숙한 맛! 사실 한국에서는 검은콩 두유 잘 마시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마시니 너무 익숙한 맛이라 온몸에 행복이 감돌았다. 이게 원래 이렇게 맛있었던가? 그날 밤 바로 타오바오에 ‘豆浆(두유)’를 검색했는데 내가 찾는 검은콩 두유는 나오지 않고, 중국 두유와 콩물 같은 것만 잔뜩 나와서 결국 포기했다. 시무룩한 마음으로 며칠을 기다렸다가 한국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검색을 부탁했더니 바로 ‘韩国黑豆豆浆(한국검은콩두유)’를 찾아주었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났다. 나는 아직도 타오바오를 쿠팡처럼 생각하는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잊지 말자, 여기는 중국!
아이들 등교시키고 택배 보관함에 도착한 두유 박스를 들고 집에 와 바로 한 팩을 꺼내 마셨다. 내가 아는 맛에 기분이 좋아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아침. 한국에 있을 때도 아침으로 두유를 마시곤 했었는데, 이건 왜 이렇게 맛있는지를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마셨던 두유는 무가당이었다. 그럼 그렇지. 앗? 그렇다면 타오바오에 무가당도 있으려나 싶어서 배운 대로 ‘韩国无糖豆奶(한국무가당두유)’를 검색해 봤더니, 있다!!!!!!!!! 그런데 이건 뭐가 이렇게 비싸지? 바로 쿠팡 가격이랑 비교해 봤더니 두 배 이상 비싸다. 방금 내가 마신 검은콩 두유도 이렇게 비싼가 싶어 비교해 보니 얘는 1/3 정도 비싸고. 검은콩 두유는 한국맛이긴 하지만 중국 생산이던데, 비싼 가격을 보니 벌컥 화가 치밀었다. 아는 맛을 먹고 기분 좋았는데 괜히 쓸데없이 가격 비교 해봤다가 마음만 상했다. 어차피 지금 내가 쿠팡에서 구매할 수 없으니 그 가격은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자진해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타국 살이의 설움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미련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