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굣길에 재이를 호되게 야단쳤다. 재이가 별 것 아닌 일로 떼를 쓰다 급기야 손에 들고 있던 ID카드를 길에 던져버리는 모습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껏 풀이 죽은 아이의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이렇게까지 혼을 냈어야 싶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분명 잘못된 행동이고 혼나야 하는 일이니 혼내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좀 억울할 것 같기도 했다. 재이는 평소 이해의 폭이 넓은 아이인데, 아이의 그런 성향이 자라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할까 봐 걱정이 됐다. 그래서 재이한테 속상한 일, 화나는 일이 있으면 참지 말고 이야기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재이는 엄마의 말에 따라 본인의 감정을 평소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했을 뿐인데, 결과가 이게 뭐지? 억울한 생각이 들 법도 했다. 이렇게 혼날 바엔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어린 시절의 내가 내린 것과 같은 결론을 짓고 입을 다물어 버리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이를 혼내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망아지 같은 두 녀석들이 정신없이 날뛰는 바람에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집 공식 호랑이인 남편 박호랑이 출장 중인 틈을 타, 망아지 두 마리가 집을 점령하는 바람에 저녁 내내 화내고 소리 지르기를 반복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호랑이 없는 집에서는 망아지들이 왕이었다. 분노에 찬 나의 목소리는 그저, 어디서 개가 짖네? 뭐 이런 느낌이었달까. 기운이 하나도 없었지만 힘을 내야 했다. 저녁에 아끼는 책방의 온라인 북클럽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둘러 망아지들을 잠잘 상태로 만들어 두어야 했다. 평소 30분이던 TV 시청 시간을 두 배로 늘리니 모든 일이 척척,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징글징글하게 말을 안 들어 사람 속을 뒤집어 놓긴 해도,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어린이들이다. 나의 귀여운 어린이들이 잘 준비를 마치고 TV 앞에 앉았다. 어느새 이만큼이나 자라서 한 시간쯤은 거뜬하게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니. 감격스러운 평화가 찾아왔다.
멘탈이 탈탈. 기운이 쭉 빠진 상태로 그립고 반가운 책 친구들을 만났다.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책 <새의 선물>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 더 뭉클한 시간이었다. 소중한 이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었던 다정했던 시간이 육아의 고단함을 상쇄해 주었다. 한 시간 동안 맑은 에너지를 가득 채우고 났더니 뒤늦게 미안함이 찾아왔다. 저녁 내내 짜증 내고 화낸 것에 대해 사과를 하기 위해 아이들 방에 들어가 보니 재이는 자고 있고, 시안이는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시안이 귀에 대고 ‘엄마가 오늘 시안이한테 화 많이 내서 미안해’하고 속삭이니까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엄마가 언제 화를 냈냐는 표정이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내 성난 목소리는 그저 어디서 짖는 개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오늘 밤도 나는 박시안의 동그란 귀여움 앞에 지고 말았다. 성난 개도 무력하게 만드는 박시안의 영리한 무기, 치명적인 귀여움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패배자. (언젠간 꼭 이기고 말겠다!) 옆에 있던 재이가 뒤척이길래 재이한테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더니 너무 졸려서 엄마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단다. 졸린 박재이한테마저 지고 나니 절로 새어 나오는 허탈한 웃음. 됐다 됐어, 잠이나 자라 이 요망한 귀염둥이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혼자 일기를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으니 재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찾아왔다. 북클럽 마지막 질문이 소설의 주인공 ’진희‘와 같은 나이인 열두 살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었는데,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 아홉 살 재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도 같은 것이라 마음이 먹먹해져 왔다. 어린 시절의 나는 표현하지 않는 아이였다.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속상한 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았다. 나의 욕구보다는 나의 말을 듣고 느낄 엄마의 감정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돈도 없는데, 일하느라 바쁜데, 내가 힘든 얘기를 하면 엄마가 속상해할 테니까 엄마를 힘들게 할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먹고사는 일이 힘든 엄마를 기분 좋게 만들 이야기만 했다. 그때는 분명 그게 착하고 좋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 나를 보이지 않는 틀에 가두어 버렸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훌쩍 큰 어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비단 엄마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 있어 상대방을 헤아리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점점 더 표현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남을 이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인데 나는 나를 너무 억누르고 지내왔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열두 살의 나에게, 마음을 담아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지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비록 나는 너무 멀리 와버렸지만 재이한테는 늦지 않게 바로 전하고 싶었다. 일기를 쓰다 말고 재이에게 편지를 썼다. 쓰다 보니 말이 좀 어려워서 재이가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 쉬운 말로 다시 편지를 썼다. 그런데 다 쓰고 보니 편지의 내용이 좀 구차했다. 엄마는 네가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엄마는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다 들어줄 거다,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다, 그런데 오늘처럼 물건을 던지는 행동은 나쁜 짓이다. (으응?) 감정을 표현하라는 말과 감정을 표현하되 폭력적인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두 가지 말을 동시에 하려다 보니, 뭐야 어쩌라는 거야 하는 반응이 나올 것 같은 편지가 되어버렸다. 결국 편지 두 장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역시 밤에 편지를 써서 망한 건가. 낮에 쓰면 좀 나아지려나.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휴, 육아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