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행복

by 김씩씩

명절에 시댁과 친정,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집에서 마음 편히 뒹굴 수 있다는 게 해외 살이의 가장 큰 특권이었는데 이번 설에는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한국에 왔다. 급작스럽게 남편의 한국 출장이 잡혔고 때마침 아이들도 2주 간 방학이라 한국에서 방학을 보내기로 했다. 명절에 한국에 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아이들도 함께 와서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한국행이 마냥 신나지 않았다. 그런데, 흥이 나지 않았던 처음의 마음과 다르게 시댁에서 명절을 보내고 친정에 내려와 지내고 있으니 집순이로 살고 있음에도 마음에 행복이 점점 차오르고 있다.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밥을 먹고 아이들과 뒹굴며 놀다가 육아 퇴근하고 책 읽는 시간이 너무 달고 맛있어서 매일 밤마다 행복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책이라면 중국에서도 원 없이 읽고 있지만, 한국에서 읽는 책은 맛의 차원이 다르다. 우선 읽고 싶은 책을 편의점에서 맥주 사듯, 아무렇지 않게 구매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행복의 시작이다. 타오바오 검색창에 사진을 넣고 검색하면 한국에서 쓰던 것들을 대부분 다 구매할 수 있어도 책은 그렇지 않다. 한국 책은 중국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그 어떤 물건보다 소비의 즐거움이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중국행이 결정되었을 때 짐을 줄이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책을 안 사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중국 생활자가 되고 난 뒤에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책을 사들이고 있다. 왜냐면, 책이 내 중국 생활의 유일한 구원자니까. 믿을 구석, 의지할 구석은 책밖에 없으니까. 이거라도 안 사면 내 중국 생활이 더 서글플 것 같으니까.


중국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한국에 나올 때마다 열심히 이고 지고 간 종이책, 밀리의 서재와 전자 도서관에 있는 전자책이다. 가끔 구독 플랫폼에 없는 책은 전자책을 구매해서 읽기도 하지만, 책을 사는 것은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읽고 싶은 마음을 잠시 미뤄두곤 한다. 그런데 가끔 전자책이라도 불구하고 당장 사서 읽고 싶을 정도로 읽고 싶은 마음이 엄청나게 큰데 전자책으로는 출간이 안 되어 읽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때의 속상한 마음은 정말 최악이다. 최악도 몇 차례 겪어 봐서 이젠 팔자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아무리 팔자라도 서글픔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니까. 읽고 싶은 책을 읽지 못하는 서글픔을 왕왕 느끼며 살고 있다.


이렇듯 중국에서는 한정된 자원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했는데 한국에 오니 행복이 사방에 널려있다. 마음만 먹으면 읽고 싶은 책을 사서 읽을 수도 있고 빌려서 읽을 수도 있다. 손 뻗으면 닿을 곳에 행복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진다. 새로 산 책들은 중국에 들고 가서 읽기 위해 잠시 아껴두고, 책장에서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친구가 도서관에서 빌려다 준 책들을 읽고, 읽고 싶었지만 구독 플랫폼에 없어서 못 읽었던 책들을 빌려와 읽고 있다. 어쩜 이렇게 읽는 책마다 하나같이 다 재미있을까. 아 정말 정말 재미있어 죽겠다. 중국 가기 싫어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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