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잠에서 꺼내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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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날이 많아진다.
무언가를 해보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그건 그 순간뿐이었다.
나를 달래던 것들이 더 이상 큰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두려운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언젠가부터 시끄럽고 가득 찬 것들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가득 찬 지하철에서는 숨이 막혀
몇 번이나 도중에 내리고 말았다.
견뎌보려 했지만,
그건 매번 숨통을 더 조이게 만들었다.
좋아하던 카페에서도
소란스러워지는 순간이면 조용히 자리를 뜨게 되고,
어쩔 땐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과의 대화가
훨씬 더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 걸까.
아니면 원래의 내가
이제야 드러나고 있는 걸까.
지나고 나니 알겠다.
그 시절 나는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너무 오래 입고 있었다.
마치 나 아닌 누군가가 되어야만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옷을 벗지 못한 채
갑옷처럼 껴입고 버텼던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비록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지만
사부작사부작 해보는 조용한 시도들은
내 안 어딘가에는 닿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이렇게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기로 한다.
기분이 좋아지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였다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고.
이제는 조금씩 그 옷을 벗어내는 중이다.
리고 그 아래에 있던
작고 약한 나를
더 조심스럽게 꺼내보는 중이다.
- from 제주에서 걷고, 읽고, 쓰는 유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