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 삶을 열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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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겪고 나서의 삶은
이전과 절대 같아질 수 없다.
세상과 단절된 순간들에 휩싸여
계속해서 더 깊은 굴을 파고들다 보면,
괴로움에 지쳐
차라리 계속 잠들어 있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생각이 많아서—
아니, 생각이 많아져서—
그래서 눈을 뜨는 것조차 두렵던 날들.
결국 끝에는
제발 이 쓴 고통이 멈추기만을,
그저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그렇게 하나둘
세상을 떠난 소중한 영혼들과
여전히 다행히 살아 있는 이들이
교차해 떠오른다.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
자신의 유서를 써보려 했다는 동생의 절망을 들었다.
결국 한 줄조차 써 내려가지 못했다는 그의 말에서
나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외로움의 깊이를 느꼈다.
고통스러운 삶의 날들에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찾았다.
나는 다행히 책 속 문장들에서 힘을 얻었다.
최근 읽은 정혜윤 작가님의 신간
<책을 덮고, 삶을 열다>도 그렇게 나를 붙들어주었다.
“우리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하는가이다.
이야기하는 방식이 바뀌면 삶도 바뀐다.”
— p.111
오래 울었다.
고통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고통을 이야기할 언어를 잃어버렸던 것이
더 힘들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고통을 다시 읽고, 다시 쓰고,
다시 나를 데려오는 과정이
삶을 조금씩 다시 움직이게 한다는 사실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이 글속의 글은 마음을 깊이 울렸다.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책을 경험한다는 말을 알게 되었어요.
책은 자기 확신에서 빠져나오는 경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책은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 상상해 보게 만드는
마음속 장소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당신들 덕분에 내 삶이라는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볼 수 있었어요.
삶을 온전하게 경험하려면 삶이라는 텍스트를 다시 읽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어요.
책과 삶의 연결이 기쁨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정말 묵직한 기쁨이에요.”
— p.112
책은 분명히 나를 살렸다.
문장들은 흔들리는 내 삶의 한 부분을
붙잡아주는 동아줄이었다.
그리고 정혜윤 작가님의 문장들은
오늘의 나에게 가장 정확하게 필요한 말들이었다.
“우리는 읽는다. 외롭고 괴롭기에.
우리는 읽는다. 도움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희망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길을 찾길 원하므로.
읽기는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가슴에 아름다움이 있는 채로 살아낼 수 있다.
독자인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읽은 책 너머, 쓰인 책 너머,
아직 읽히지 않은, 쓰이지 않은 우리의 삶이 있다.”
— p.180
삶이라는 텍스트를 조심스레 다시 읽어본다.
아직은 아프고, 두렵고, 흔들리지만...
“세상이 생긴 이래로
항상 누군가는 우리 삶에 아름다움을 불어넣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삶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 p.84
그러나,
그럼에도 아름다운 삶.
오늘도 나는
열심히 나를 다시 데려오는 중이다.
- from 제주에서 걷고, 읽고, 쓰는 유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