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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mGH Mar 17. 2019

07. 그래, 첫 회의부터 '망삘'이 났다

"커피 한잔 해요"는 생각보다 정말 중요하다

그날 그 회의실, 내 심장은 점점 빨리 뛰었고 목소리도 커졌다. 개발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코 닿을 거리에서 비판을 쏟아냈다. 청사진을 그렸던 내 콘텐츠 기획안이 '재미가 없다', '추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혹평을 받았다. 내 머릿속에선 하나도 걸릴 게 없었는데, 예기치 못한 비판이었다. 1평짜리 회의실의 공기가 달아올랐을 때, 취약한 멘탈은 견디지 못하고 결국 방어기제를 발동했다. 나는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 날이 서서는 "같은  비판을 반복하지 말고 대안을 말해달라"라고 질러버렸다. 인터랙티브 콘텐츠인 '방구석 탈출 프로젝트'는 슬프게도 첫 회의부터 순탄치 않았다.


야심 차게 기획했던 '방구석 탈출 프로젝트'는 조선닷컴의 콘텐츠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조선닷컴은 이해림 푸드칼럼리스트와 협업해, 인터랙티브 뉴스를 만들었다. 꽤 많은 꼭지가 있는데, 특히 '쇼미더라면 2018'이 인상 깊다.


'쇼미더라면 2018'은 시판 라면 90개를 ▲국물 색&맛 ▲면 종류&굵기 ▲매운 정도 ▲어울리는 토핑을 기준으로 분류했다. 콘텐츠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을 선택하면, 조건에 맞춰 '취저'라면을 알려주는 콘텐츠다. 라면이라는 생활에 밀접한 주제와 함께 심리테스트 같은 구성이 인상 깊었다. 유명 셰프의 라면 레시피가 더해져 정보 가치도 높다.


취향저격 라면 찾기 - 조선닷컴 > 인터랙티브 뉴스


여기어때가 액티비티 서비스에 한창 드라이브를 걸 때라, 유사한 콘텐츠를 만들어 볼만했다. "우리도 사용자가 '딱딱' 선택하면, 거기에 맞는 액티비티를 알려주자." 야외와 실내, 활동적인 운동과 정적인 전시회 등. 선택지는 충분했고, 풍성한 결과물이 기대됐다. 독자의 놀거리를 찾아주는 기본 구성에, 할인 쿠폰을 붙여 콘텐츠 유통 촉진하는 계획을 세웠다. 개발, 디자인만 받쳐주면 안 될 게 없어 보였고 신이 나서는 PPT로 기획안을 짰다.


문제는 '혼자 짠 계획'이라는 데서 발생했다. 모든 계획에 협업 부서의 업무 방법과 리소스가 배제됐다. 나의 첫 번째 콘텐츠 기획이 망한 가장 큰 이유다. 콘텐츠에서 구현하고 싶은 기능들이 실제 가능한지(개발), 디자인이 매력적인지(디자인) 고민이 부족했다. 여기어때가 발행하는 쿠폰의 종류와 배포 방법, 소비자 행동 트래킹(마케팅)도 이해도가 떨어졌다. 내가 벌여놓은 일이 예상보다 많은 업무를 만든다는 사실도 회의실에 모인 인원을 보고 깨달았다.


총 3차례의 회의 동안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은 힘들 수밖에 없었고, 기획안을 뜯어고쳐가며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결국 내 콘텐츠는 완성되지 못했다. 지금도 하드디스크 어딘가에 처박혀있다.


출처 = unsplash.com


PR은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했다


"이걸 커뮤니케이션실에서 왜 만들어요" PR담당자의 업무와 언론홍보는 같은 말로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PR담당자의 계획은 생소했던 모양이다. 그 가운데 '바이럴을 기대한다'는 내 목표는 실속이 없었다. 마케팅실의 콘텐츠는 직접 유입으로 이어지는 성과라도 뽑을 수 있지, 구체적 설명이 부재했다. 콘텐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 대비 들어야 하는 자원이 컸다.


심지어 '콘텐츠 기획안'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몰라 샘플을 요청했고, 콘텐츠가 구현되는 플랫폼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다. 앱으로 고객이 어떻게 유입되는 지도 어깨너머로 들은 정보가 전부였다. 디자이너, 개발자와의 의사소통은 한계가 있었고, 당연히 프로젝트의 추진력은 떨어졌다.


PR담당자는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데 익숙하다. 기본적으로 시선이 조직 외부를 향해있다.  그러나 사내 네트워크와 조직 내 유대감, 이해도도 그만큼 중요했다. 개별 부서의 업무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결국 외부인처럼 머뭇거리게 됐다. 조직원들이 어떻게 프로젝트를 추진하는지 예민하게 탐색했다면, 나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출처 = unsplash.com


기자 미팅만큼 구성원 네트워크도 챙겨야


여기어때는 스타트업답게 '사내 소통'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여러 가지 제도를 시행한다. 입사 직후에는 '짝꿍'을 맺어 적응을 돕고, 누구든 회사 경영과 인사제도에 질문할 수 있는 '올핸즈미팅'도 운영한다.


다만, 지난해 산으로 떠나버린 나의 기획안을 보며, 조직원과의 개인적 소통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회사가 운영하는 제도만으로는 ▲각자 업무에 대한 이해 ▲협업에 필요한 유대감을 충족할 수 없다. 나의 경우에는, 갑자기 기획서를 들고 나타나기보단 개발자, 마케터, 디자이너, 영업실무자와 충분한 사전 교감을 나눴어야 했다.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인간적 친밀감을 포함한다.


사내 소통은 특정 업무를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나아가 PR 이슈를 발굴하고 잠재된 위기를 사전에 탐지하는 기회도 될 수 있다. 실무진 미팅은 공론화된 이야기 이외에, 현장에서 직면한 구체적인 내용을 공유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공식 채널에서는 나누기 힘든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는다.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회사를 둘러싼 시장의 변화, 실무자와 중간관리자가 갖고 있는 신선한 시각을 공유한다. 오고 가는 언어 속에서 새롭게 검토하거나 추진하는 전략을 엿볼 수 있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외부 평판과 협업 포인트를 인지하기도 한다.


PR담당자의 가장 큰 장점은 '대화를 할 줄 안다는 것'이다. 들을 줄 알고, 말할 줄 알며, 인사이트를 잡아 발전시키는 능력이 있다. 2주에 한 번이라도 동료들과의 티타임을 추진해볼 생각이다. 각자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워온 동료들은 힘이 되는 협력자이자, PR자원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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