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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mGH Oct 25. 2018

02. 보도자료는 재송이 맛이었던가

흔한 스타트업 PR 담당자의 하루

오전 6시 30분 알람. 이를 닦으며 반려묘 2마리의 밥과 물을 챙겨줬다. 후다닥 머리를 말리면서 전날 생각해놓은 옷을 대충 걸치고 뛰어나온다. 마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도착해 간신히 열차에 발을 딛는 순간, 하루가 시작된다.


위드이노베이션은 삼성중앙역 바로 위에 위치한다.


그날은 내가 작성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날이었다. 발 딛기도 힘든 빡빡한 지하철 안에서 휴대폰을 열었다. 임시 메일 보관함을 클릭해 전날 저장해놓은 보도자료를 마지막으로 검토했다. 상급자까지 검수가 끝난 자료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확인만 하면 됐다. 오타는 없는지, 제목은 멀쩡하게 썼는지. 인사말은 건방지지 않는지를 점검했다.


그리고 '문제없군'이라고 생각하며,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발견했다, 오타. 왜 가격을 2만1900원이 아닌 2만1900천원이라고 적었을까. 순간 등골이 싸늘해지며, 고민에 빠졌다.


보도자료가 잘못됐다고 보고부터 할까. 보도자료를 재송해야 하나. 기자들이 알아서 고쳐주지 않을까. 이럴 거였으면, 집에서 큰 모니터로 보고 전송할걸.


지하철 한 정거장을 지나가는 2분 동안, 수십 가지 생각이 들었다. 20개 넘게 나오는 유사한 기사들, 나만 모른 척하면 독자들도 대강 보고 넘어갈 것이란 합리화부터 혹여 문제가 커지면 감당하기 어렵겠다는 무서움까지. PR 담당자에게 쏟아질 질타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데 따른 책임을 상상하니 빈속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결국은 메신저를 열어 팀원 모두와 문제 상황을 공유하고, 바로 메일을 고쳐 재송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민이 길지 않았다는 점이다. 메일을 재송하는 데는 5분 안팎의 시간이 걸렸다. 잘못된 기사를 내보낸 매체는 1곳이었다. 출입기자와 담당 데스크에게 사과를 하고 간신히 오류를 바로잡았다.


오타를 냈던 자료는 하이원 워터월드 이용권 할인 판매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이직 후 보도자료를 2번째 배포했을 때의 일이다. '기자였을 때도 오타로 혼나더니. 이가희, 내가 너 사고칠 줄 알았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도 그나마 빨리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을 먹은 건 '단 하나의 잘한 짓'였다.


이벤트나 프로모션, 기획전을 알리는 보도자료는 참 쉽게 써졌다. 행사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서론에 담으면 됐다. 구체적인 내용을 적는 본문, 그리고 주요 관계자의 멘트를 덧붙이면 완성이다. 그러나 참 오만한 착각이었다. 보도자료가 회사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보도자료는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발표한 글이다. 단순 할인 행사를 설명하더라도 절대 가볍지 않다.


잡코리아가 지난해 말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사담당자의 40%는 맞춤법을 틀린 자소서는 대부분 탈락시킨다고 한다. 오타 하나가 '부주의하다'는 인상을 각인시킨 탓이다. 보도자료라고 다를까. 아무리 쓸모 있는 정보를 담더라도, 오타를 발견하는 순간 '인상 평가'에서 아웃이다. 잘못된 보도자료가 '여기어때는 비전문적이다'라는 인식을 심을 수 있다는 건 직관적으로 예측 가능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더 무서운 건 미디어, 즉 기자들이었다. 기자의 오보 가능성을 높였다는 차원에서, 리스크가 정말 크다. 보도자료를 재구성하는 기자들 또한 정보의 오류를 확인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 상황을 만든 PR 담당자가 그 뒤로 숨는 건 불가능하다. 기자들이 업무를 수행할 때 실수를 하게 만들었으니, 빨개지는 얼굴과 민망함, 미안함을 감출 수가 없다. 지난 사건에서도 수정을 요청하며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랄까. 미디어와의 장기적 관계를 생각하면, 치명적인 실수였다.


많은 PR전문가들이 '보도자료 쓰는 법'을 강의한다. 자료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는 물론이고, 인사말과 담당자의 연락처를 적으라는 내용을 강조한다.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경험상 이야기하자면, 보도자료의 기본은 정확한 맞춤법이다. 신뢰도와 직결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뉴스와이어 홈페이지 캡쳐(www.newswire.co.kr)


드디어 보도자료 세상에도 동영상이 침투했다. 보도자료 배포 서비스인 '뉴스와이어'는 '동영상 보도자료' 코너를 만들었다. 많은 기업이 서비스를 화려한 영상으로 소개한다. 기어때 또한 보도자료를 영상으로 소개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동시에 더욱 꼼꼼하게 자료를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영상은 텍스트보다 배포 이후 자료 수정이 더욱 고되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 세상에 '가벼운 오타'라는 건 자취를 감출지도 모르겠다. 보도자료 검수는 2중, 3중으로 해도 모자라지 않나보다. 더욱더 철저하게 검수하고 '보내기' 버튼을 눌러야겠다며,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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