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동진 평론가님 좋아해요.
<굿뉴스>를 보며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대중이 원하는 걸 만드는데 집중한 영화란 어떨까.
면접관이 원하는 말만 하는 지원자를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영화는 짧은 호흡으로 한국, 일본에서 유명한 배우들로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비행기를 탈취하고, 유머도 조금 섞고, 멍청한 고위 간부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며 블랙코미디도 보여준다. 하지만 화려한 배우들이 어떤 감정으로 행동하는지는 모르겠다. 연출, 감정의 깊이, 블랙코미디, 컷의 길이 모두 대중에게 맞춤 제작으로 짜였다고 다가왔다.
마치 이렇게 되뇌면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너희들 이런 거 좋아하잖아, 이런 호흡, 이런 풍자들. 자 이걸 보면서 좋아해. 자극적인 거 좋아하고, 조금만 길면 집중 못 하니까 이런 호흡 어때? 이렇게 만들면 너희들 좋아하잖아. 맞지? 상징적인 컷도 섞어놓고 블랙코미디 소스 좀 곁들였어.'
연출의 깊이 또한 아쉬웠다. 마지막에 이르러 주인공이 시계를 받는다.
엄청난 고생을 한 아버지가 받았다는 복선도 깔렸고, 누가 봐도 상자를 열지 않아도 시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카메라는 시계를 보여준다. 얼굴에 하얀 동그란 빛도 비춰준다. 혹시라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시계를 받고 허탈해하는 인물까지 다정하게 보여주다니. 아 친절하여라.
'마지막에 이르러 대통령 시계를 받는다는 건 누가 봐도 알겠으니 제발 카메라로 시계를 비춰주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빌면서 봤다. 그럼에도 시계는 화면 가득 차버렸다.
이것이 거대자본으로 만든 대중영화의 도착점일까. 이토록 찬란하고 대중에게 친절한 영상물이 넷플릭스에 속할 수 있어야만 할까. 이동진 평론가의 높은 별점을 보고 기대했지만, 터무니 없는 평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 사실에 여러 사람의 상상력을 매듭지으면 재밌는 영화로 평가되는 걸까?
우리의 상상력이 이토록 얇은 탓일까, 넷플릭스의 자본이 그토록 커다란 버팀목인 탓일까.
여러 질문을 남긴 영상물에 이동진 평론가는 평점 4점을 주며 "이런 한국영화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라는 평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