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창문을 깨고 가방을 훔쳐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잠이 깼다.
맞은편 침대에는 스웨덴 친구가 아직 잠을 자고 있어 그녀가 깨지 않게 살금살금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왔다.
페루, 리마의 숙소는 B&B 형태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가족의 집이었다.
어젯밤 페루의 버스 정류장에서 택시를 타고 어느 동네의 빈티지한 빨간색 식당 앞에 도착했다.
배낭을 메고 두리번거리고 있는 나를 향해 웃는 얼굴의 아주머니가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다가오고 계셨다.
'hola'와 동시에 그녀는 나를 안았고 볼 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지 못한 환대에 얼떨떨해하며 그녀를 따라 작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을 지나 들어간 곳에는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할아버지가 계셨고 북적이는 분위기 속에서 가족들과 두 번째 인사를 나누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응접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녀의 남편과 마주하고 있었다.
숙소 안내 사항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내가 스페인어를 모른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그와 나 사이에 공백이 생긴 상태였다. 그의 영어는 능숙치 않았고 나도 그러했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더 많은 의사소통을 하길 원했나 보다. 아쉬워하는 그의 표정을 보니 1년 전에 산 10 페이지도 보지 않은 스페인어 책이 떠올랐다.
공부 좀 하고 올걸 하는 후회를 하며 그의 안내를 받으며 방으로 향했다.
주방 옆에 놓인 아슬아슬한 철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게스트가 머무는 공간이 나왔다.
3개의 방이 있었는데 그는 모든 방문을 하나씩 열면서 소개해줬다.
내가 머무를 방도 아닌데 굳이 왜 소개를 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의 열정적인 설명에 맞춰 나도 힘차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크지 않은 방에 침대가 2개씩 놓여 있었고 이 가족들의 분위기처럼 따뜻함이 풍겨 나왔다.
드디어 내가 이틀간 머물 방의 문이 열렸고 같이 방을 쓸 친구가 손을 흔들며 나를 맞이해줬다.
배낭을 내려놓는 나에게 친구는 어느 나라 출신인지, 어디서 왔는지 질문들을 쏟아냈다.
이케아에서 일한다는 스웨덴 친구는 페루 여행을 마치고 내일 돌아간다고 했다.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하는 나에게 페루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에 대해 극찬하며, 마지막은 이 숙소와 가족들의 따뜻함을 칭찬하며 끝이 났다.
정성이 가득 담긴 아침 식사를 하고 호스텔을 나섰다.
오늘의 일정은 시내버스를 타고 박물관에 갔다가 구시가지를 구경하기로 했다.
봉고차 같은 버스는 목적지가 문에 적혀있었다. 버스비는 1솔-약 350원-로 운전기사님에게 드리면 된다. 버스 타기는 미션 같았지만 성공적으로 박물관에 도착.
박물관은 'museo rafael larco herrera' 라는 곳으로 예쁜 정원과 함께 볼거리가 많다고 해서 찾아왔다.
난 박물관을 좋아하는데 '하나의 나라'가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겪어온 과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내가 기원전 몇 백 년 전에 살았던 누군가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페루 사람들은 왜 이렇게 귀여운지
천, 벽, 그릇과 조각의 그림들이 너무 귀여워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귀여움으로 한 껏 충전하고 꽃과 식물로 가득한 박물관 정원이 너무 예뻐서 박물관의 카페에서 한 잔 마시며 여유를 부렸다.
구시가지는 우버를 불러 택시를 탔는데, 구시가지에 다다르자 기자님이 뒷좌석에 앉은 나를 보며 가방을 좌석 밑에 두라고 말씀하셨다. 지난번 어떤 강도가 창문을 깨고 가방을 훔쳐 간 적도 있다며 구시가지는 강도가 많은 곳이라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스페인어도 못하는 나는, 이 이야기를 기사님의 바디랭귀지로 모두 이해했다. 어쩌면 나는 바디랭귀지 해석 천재?
구시가지는 말 그래도 오래된 시내로 고풍스러운 건축물들로 가득했다.
큰 광장에 위치한 교회에서는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이것저것 구경하며 시내를 걷고 있는데 한 페루비안이 나에게 다가왔다.
왜소한 체구에 안경을 낀, 착하게 생긴 친구는 변호사를 준비 중이고 한국 여행을 갈 거라고 말했다.
오늘 큰 분수쇼가 열리는데 같이 가보지 않겠냐며 제안했다.
곧 어두워질 것 같고 현지인과 함께 하면 무섭지 않을 것 같아서 같이 가보기로 했다.
구시가지에서 걸어서 분수쇼가 열리는 공원에 도착하니 축제 분위기에, 엄청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입장료는 4솔, 티켓을 사고 들어가니 또 다른 모습들이 펼쳐졌다.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음식을 먹으며 놀고 있는 가족들과 푸드 트럭들, 작은 무대에서는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엄청 큰 워터파크였는데 분수가 정말 많았다. 여기저기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진 분수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축제 분위기에 들떠 여기저기 구경하며 친구와 함께 구슬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는 잔디밭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는, 페루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고 더 많은 세상을 보기 위해 아시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여행 가면 만나자며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는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무사히 호스텔에 도착했다.
밤 열 시가 되도록 들어오지 않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호스텔 부부는 나를 보자마자 두 팔 벌려 포옹을 했다.
리마는 정말, 따스한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