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나 똑같은 그릇은 없다
엄마는 전시회를 다니거나, 꽃꽂이를 하는 등의 고상한 취미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릇을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우리 집에는 현관문 입구부터 내 방까지 엄마가 사들인 그릇이 한가득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그릇에 플레이팅 된 음식을 먹어본 기억은 없다.
우리 집의 그릇들은 왜 제 본분을 다 하지 못하고 그리 널려있는가. 집에 너저분하게 늘어놓는 것이 싫다는 엄마 탓에 내가 초등학생일 때 만들어온 여러 작품들을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우리 집인데 말이다.
그렇게나 엄마는 그릇과 장식품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고려해 계획한 런던의 근교지가 바로 이곳 라이(Rye)였다. 라이에는 아기자기한 앤틱 샵이 많다고 들었으니까.
호흡이 조금 빠르게 느껴질 수 있는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약 2시간을 달리면 영국 중세 시대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라이를 만날 수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정보가 넘쳐흐르는 도심에서 벗어나 근교로 나오면 조금 불안할 법도 한데, 라이에서는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전혀 없다고 하여도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지도가 필요없을 정도로 작은 이곳 라이에서는 슬슬 걸어 다니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다. 슬슬 걸으며 사진을 찍고, 문이 열려있는 작은 가게에 들리며, 볕이 좋은 카페에 앉아 차를 한 잔 한다거나, 가벼운 점심식사를 하면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런던에서 에프터눈 티를 먹지 않은 이유는 이곳 라이에서, 이곳 코블스 티룸에서 맛보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이곳을 찾은 시간은 겨우 세시뿐이 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의 세시는 '벌써'였다. 마감시간이라고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느린 호흡을 간직한 이 작은 마을은 하루 일과만큼은 조금 빨리 준비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다시 가족과 함께, 혹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저녁시간의 호흡을 천천히 가지기 위함이겠지.
아쉽지만 코블스 티룸을 뒤로하고, 늦은 점심을 해결하러 올드 벨 (The Old Bell)로 향했다. 올드 벨의 건물은 15세기에 지어진 역사가 깊은 건물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여관으로 쓰였는데 지금은 펍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우리는 이곳에서 잠을 자지 않아도 15세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치즈가 듬뿍 들어있는 찐 감자에 아삭한 코울슬로를 곁들인 음식을 선택했고, 엄마는 해산물이 들어간 토마토 파스타를 주문했다. 내가 고른 메뉴는 꽤 마음에 들었는데 엄마가 고른 파스타는 간이 조금 심심했다.
가고자 했던 티룸도 가지 못했는데 하필 엄마가 고른 메뉴가 엄마 입에 맞지 않으니 딸의 마음이 점점 쪼들리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엄마는 앤틱 샵 몇 군데를 둘러보며 큰 흥미를 갖지도 않았다.
엄마는 그릇을 좋아하지만, 앤틱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딸은 엄마가 좋아하는 그릇의 스타일을 보고 이곳 라이에서 볼 수 있는 앤틱 소품도 엄마 마음에 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는 앤틱 소품을 싫어했다.
딸은 이 사실을 라이에 와서야 알았다.
홀로 자취를 하고 있는 딸은 아직 그릇에 큰 관심이 없다. 딸의 식기라고는 친구가 다이소에서 사준 젖소 모양 식판 (이 그릇에는 밥과 반찬을 한 번에 담을 수 있어 설거지가 용이하다), 가끔 도마로도 쓰이는 넓은 접시뿐이다.
그릇이란 그저 밥을 먹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딸에게 엄마는 마냥 그릇을 좋아하는 엄마였다. 그리고 이제 딸은 마냥 그릇을 좋아하는 엄마에서, 앤틱은 좋아하지 않는 것 까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딸은 2016년, 스물 넷이 되어서야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