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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엠히 Jan 17. 2017

화력 발전소의 새로운 변신: 테이트 모던

엄마에게 들려주는 현대미술 이야기



 엄마는 딸이 4년이나 다닌 학교에 딱 한 번 발도장을 찍었다. 그 한 번은 딸의 입학식이었으며, 두 번째이자 마지막은 2월에 있을 딸의 졸업식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엄마는 딸이 4년 동안 공부한 내용과 만들어온 작품에도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딸은 4년 내내 자신이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해 말할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에게 한 번쯤 말해주고 싶다. 혹시라도 졸업 후에 '너는 4년 내내 돈 처발라 배운 게 뭐니?' 하고 묻는다면 이미 내 전공지식은 증발해버린 후일 테니까.


 


"엄마에게 내가 4년간 미대를 다니며 무엇을 공부했는지 보여주기에 런던은 적합한 장소였어. 테이트 모던,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브리튼, 사치갤러리까지. 내가 엄마에게 보여주고자 계획했던 미술관들 중, 날이 좋았던 런던에서의 둘째 날은 테이트 모던으로 결정했어. 파란 하늘 탓에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미술관에서 한참을 걸어야 할 엄마를 생각해 꾹 참았어."






 "테이트 모던 개장시간보다 서둘러 일찍 도착한 이유는 이 밀레니엄 브리지에 들리기 위해서였어. 그때 말했지, 영국이 2000년 밀레니엄 해를 맞아 프로젝트를 하나 하는데, 이 다리가 그중 하나라고. 그 프로젝트에는 이 다리뿐만 아니라 엄마가 타고 싶어 했던 런던아이, 그리고 우리가 갔던 테이트 모던도 포함되어 있어."


 



 "그렇다면 테이트 모던은 어떻게 런던 최고의 명소가 되었을까? 테이트 모던 역시 2000년 밀레니엄 해를 맞아 개관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바로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라는 거야. 가동이 중단되어 흉물이 되고, 우범지역으로 변해버린 화력 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 한 거지. 저 큰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고 생각해봐.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손해가 따르겠어? 새로운 것을 위해 기존의 것을 너무 쉽게 버리고 허물어버리는 우리 사회에서 본받을 수 있는 정신이야. 그래서인지 테이트 모던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건축물 중 하나에 속한다고 해. 엄마는 그 건축물을 본 거야."





 "미술관에 들리기 전에 6층에 있던 카페에 갔잖아. 엄마는 또 오늘은 얼마나 굴리려고 벌써 빵 쪼가리 먹이냐고 했지만, 앞을 봐. 그 어디서도 이 멋진 풍경을 보며 커피를 마실 수는 없어. 이 풍경 앞에서 간장에 밥 비벼 먹을 순 없잖아. 그러니 빵 쪼가리라도 괜찮은 거야."





 "엄마는 이렇게 멋진 사진도 남겼잖아. 내가 아침부터 이 카페에 가야 한다고 하는 것을 엄마는 극성이라고 표현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일찍 가지 않아 자리가 없어 저 풍경을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없었대."





 "터바인홀, 이 광활한 공간은 상상 이상의 미술작품이 나오는 곳이야. 비록 우리는 볼 수 없었지만 2003년에는 인공 태양이 설치되는가 하면, 2006년에는 대형 미끄럼틀이 설치되기도 했어. 그 미끄럼틀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했었대."





 "이 바닥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었지? 언제라도 터바인 홀에 간다면 꼭 바닥을 봐야 해. 2007년에 도리스 살세도라는 작가가 이 콘크리트 바닥을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균열을 만들었어. 지금은 메꿔져 있지만 원래 테이트 모던에서는 메꾸지 않고 영구 소장하겠다고 했었대. 그런데 아이들의 발이 자꾸 빠지는 사고가 발생해서 안전을 위해 지금은 저렇게 메꾼 흔적만 볼 수 있는 거야.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는 곳이야, 그래도 엄마는 미술을 공부한 딸 덕에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거고."






 "엄마, 엄마가 서있는 뒤의 작품이 바로 몬드리안의 작품이야. 몬드리안은 네덜란드 작가인데, 1차 세계 대전 때 네덜란드는 중립 국가였기 때문에 그 시기에 미술이 많이 발전했대. 몬드리안은 명확성, 확실성, 질서를 추구해서 수평, 수직, 사각, 정육면체를 기본으로 그림을 그렸어. 그런데 같은 그룹이었던 반 데스 부르그라는 작가가 45도 각으로 수직 축에서 벗어나자 그와 같이 작업을 하지 않았어. 이제 다시 사진을 봐. 정말 그림에 곡선, 사선 따위는 볼 수 없지? 몬드리안은 그런 그림을 그렸던 작가야."





 "피카소의 우는 여인이라는 작품이야. 그림 속 여자의 얼굴이 조각나 있지? 저렇게 대상을 파편화 함으로써 입체적으로 표현한 거야. 저 시기에 그린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얼굴은 정면인데 코는 측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등의 시점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어. 평면인 그림에 시간 개념과 공간 개념을 넣은 거지."




 

 "살바도르 달리라는 작가의 그림이야. 초현실주의라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 꿈의 세계를 표현하던 사조야. 조금 어렵지? 쉽게 말해서 달리는 비현실적인 것들을 그렸어."





 "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흥분해서 '엄마 나 사진 찍어줘."라고 하던 게 기억 나? 요셉 보이스라는 작가야. 동물의 지방이라던가 펠트천으로 조각을 해. 이뿐만 아니라 죽은 토끼를 안고 꿀을 뒤집어쓴 채 자신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어. 또 독일 카셀에서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나무를 다 심기 전에 사망해. 그런데 아들과 부인이 계속 그 프로젝트를 이어가 7000그루를 다 심을 수 있었대."





 "테이트 모던은 창 밖 풍경마저도 그림 같았어. 테이트 모던이 사랑받는 이유 중에 하나인 것 같아. 꼭 미술관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저렇게 미술관 앞에서 스스로가 그림이 될 수 있으니."





 "너무나도 유명한 앤디 워홀이야. 그림이 마를린 먼로잖아. 작가가 대중적인 아이콘을 미술에 가져온 거야. 앤디 워홀뿐만 아니라 많은 유명인사, 그리고 코카콜라까지. 다 찍어내. 그림을 더 이상 손으로 정성스럽게 그리는 것이 아닌 기계로 찍어내는 거야. 엄마가 알던 미술과는 다르지?"





 "엄마가 내가 들려준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워했던 작품이야.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 불어로 엄마라는 뜻이야. 어린 시절 아빠의 외도로 불행했던 기억으로 엄마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는 작품이야. 알을 품은 이 거미는 가정을 돌보는 세상 모든 엄마들을 상징한대."






 

 "엄마에게는 조금 길고 지루한 곳이었지? 하지만 엄마, 많은 것을 기억하지 않아도 좋아. 미술관에 다니는 엄마가 아니어도 좋아. 그저 엄마가 그 어떤 현대미술을 (엄마가 보기에 정말 잘 그린 그림들 이라던가, 멋진 조각품들이 '아닌' 작품들) 보더라도 '이게 무슨 작품이야?'라는 말이 아닌, '잘은 모르겠지만 이건 그냥 이대로의 작품이 될 수 있는 거랬지.'라는 생각만 해줘도 엄마는 미술을 전공한 딸의 백 점짜리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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