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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엠히 Jan 14. 2017

엄마의 여행 방식

엄마는 버버리를 입는다



 나의 모든 여행 계획에서 맛집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항상 돈이 부족한 대학생의 배낭여행, 그리고 그런 우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곳. 바로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맥도날드. 그곳은 허기진 배, 지친 다리, 시계로 전락해버린 핸드폰에 와이파이를 연결할 수 있는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의 성지와도 같다.





 

 여행에 있어 맥도날드를 성지라 여기는 딸이, 그래도 엄마와의 여행에서는 조금 신경을 써야지 싶어 괜찮아 보이는 음식점 몇 군데를 체크해 놨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랍스터 버거를 판다는 소호(Soho)의 스맥(Smack Lobster Roll) 되시겠다.





 가게에 들어서서 한 번, 주문 후 받아온 음식을 본 후 두 번. 엄마는 기가 차다. 엄마는 늙은 어미 하루 종일 굴려놓고 저녁이라고 먹이는 것이 고작 이 빵 쪼가리냐며 성을 낸다.


 아니 엄마, 주둥이만 살아있는 딸 입장에서 한마디. 언제 엄마가 이 젊은이들이나 먹는 음식을 먹어보겠어. 딸이 있으니 이런 것도 먹어보는 거지. 안 그래? 그리고 한국에는 이런 음식이 없어요. (사실 최근에 서울 어디에 비슷한 게 생기긴 했지만.)





 사실 그 당시에는 성난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왜, 랍스터 버거가 어때서?


 그런데 지금 '엄마와 런던에서 먹은 저녁이에요' 라며 올린 저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내가 주둥이만 살긴 살았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조금 더 심도있게 변명해 볼까. 엄마와의 여행에서, 이토록 멋진 런던에서의 첫 저녁식사가 왜 고작 이뿐이었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부끄럽지만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여태껏 딸이 홀로 해온 여행에서는 엄마를 모실만한 근사한 식당이 없었다고. 그저 다음 목적지로 향할 수 있는, 배를 채울 정도의 음식이면 충분했다고. 그리고 엄마와의 여행이란 내가 하던 여행에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되는 정도인 줄 알았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그토록 세심하게 고민하지 못했다고.


 그러니 아직은 부족한 딸을 엄마가 조금 이해해 주시라고.






 그저 빵 쪼가리라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요란한 빵 쪼가리를 먹고 호텔로 가는 길에 엄마가 말했다.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정말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이 든다고.





 내 브런치의 유입경로를 보면 '엄마와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들어오신 분들이 꽤 많이 보인다.


 지난날 나는 여행 준비를 하며 야경 포인트, 미술관 위치 등이나 찾았지 엄마를 모시고 갈 근사한 레스토랑이라던가 엄마와 여행이라는 엄마에 초점을 맞춘 키워드 따위는 없었는데.


 '엄마와 여행', 내게는 참 익숙하고도 낯선 키워드가 되었다.





 이제 빵 쪼가리 이야기는 접어두고, 그것을 먹기 전 이야기를 해야겠다. 우리는 쇼핑을 위해 리젠트 스트리트를 거닐고 있었는데 엄마가 그곳에 있던 버버리 매장을 가리키며 아마 그곳이 버버리 본점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하.


 말귀를 못 알아먹는 딸을 위해 엄마는 구경만 하자며 딸의 손을 이끌었다.





 그렇게 구경만 하자던 엄마의 손에는 결국 버버리 쇼핑백이 들렸다. 잠시 미뤘던 생일 선물을 딸에게 받아낸 것이다. 어쩌면 이 날까지 엄마가 생일 선물을 미뤄온 것은 런던에서 버버리를 받기 위해 그린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고등학교 1학년, 엄마 생일 선물을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샀다. 속옷이었는데 12만 원 정도였나, 아무튼 엄마는 용돈을 모아서 선물을 한 딸이 기특했는지 그걸 그렇게 자랑하고 다녔다. 그 모습을 본 딸은 조금은 미련하고 일차원적인 생각이 들었다. '아 용돈을 모아 비싼 선물을 하면 엄마가 좋아하는구나.'






 엄마가 돈이 없어서, 혹은 딸의 얼마 안 되는 돈을 탕진시키고자 딸에게 값비싼 선물을 원하겠는가. 엄마는 그저 딸이 모은 돈으로 엄마에게 이만한 선물을 한다는 것, 그 마음과 함께 '우리 딸이 이만한 것을 해주었다' 정도의 자랑거리 하나가 생기기때문 아닐까.





 이날도 엄마는 호텔에 돌아와 딸이 사준 버버리 플랫슈즈를 한참이고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는 열심히 핸드폰으로 무얼 작성하던데, 카카오스토리에 올렸을까 아니면 친구들과의 단체 카톡방에 올려 자랑했을까.


 버버리 매장에서 무슨 신발을 50만 원짜리를 신냐며 엄마를 회유했던 나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비록 내 비상금은 증발했지만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이면 됐구나, 나도 앞으로 엄마가 무엇을 사주면 무척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야겠구나. 또 사주고 싶도록.'




 

 비록 빵 쪼가리 하나로 엄마의 배는 가득 채우지 못했지만, 딸의 작은 선물로 엄마의 마음만큼은 행복으로 가득 찼기를 바라며.


 그리고 기억하자, 엄마는 가난한 배낭여행자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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