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야, 이제 엄마 몸이 예전 같지 않아
15년 10월, 엄마는 자궁근종 복강경 수술을 받았다. 자궁근종은 종양 중에 가장 흔한 종양으로 엄마의 세대에서 많이들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종양, 수술 등의 단어는 스물셋이었던 딸에게 자극적으로 다가오기만 했다.
수술이 끝난 후 병실로 옮겨진 엄마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눈도 뜨지 못한 채 고통에 신음하던 엄마는 내가 알던 강인한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스물다섯을 먹은 나는 아직도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를 엄마라고 대답한다)
딸은 엄마의 소변통을 갈아야 했다. 이렇게나 멋진 엄마의 소변통을. 엄마와 단 둘만 존재하던 그 조용한 병실에서 시간 맞춰 소변통을 갈고 있자니 그때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나 2학년이었나, 아침에 학교를 가려고 눈을 떴는데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토를 뿜어냈는데, (뿜어냈다는 표현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정말 뿜어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순간이었다.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아주 새빨간 피였다. 꽃무늬가 그려져 있던 내 노란 이불을 온통 붉게 물든인 새빨간 피. 그렇게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은 백혈병이 의심된다며 내 척수를 뽑았다. 그리고 나는 며칠간 기저귀를 차야했다.
'엄마, 나 쉬 마려워.'
'싸, 기저귀 찼잖아.'
'다 쌌어..'
딸은 당시 엄마와의 대화를 똑똑히 기억한다. 8살의 어린 딸은 기저귀를 차고, 엄마가 그것을 갈아준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거든. 아무튼 엄마는 저 대화를 마치면 묵묵히 딸의 기저귀를 갈았다.
그냥, 엄마의 소변통을 갈고 있자니 그때의 생각이 났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엄마는 그 수술을 받은 이후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래서 엄마는 트라팔가 광장을 코앞에 두고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목이 마르다는 핑계로 카페에 들어왔으리라.
사실 수술 후 엄마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여행 초반에는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엄마는 걷기를 좋아하며, 힐을 신고도 딸의 호흡을 맞춰줄 수 있는 그런 발 빠른 엄마였으니까. 힘이 든다고 헥헥 대는 딸에게 나이 든 엄마보다 못하냐며 채찍질하던 엄마였으니까.
이번 여행에서는 유난히 투정이 많은 엄마였다. 엄마는 매일 아침 호텔에서 나오기 전에 오늘은 어디를 가는지가 아닌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를 물었으며, '너 혼자 보고와. 엄마는 오늘 호텔에서 쉴래.'라는 말까지 했으니 딸은 속이 상했다.
결국 딸은 엄마 도대체 왜 그러냐며, 이럴 거면 왜 왔냐며 그동안의 설움을 토해내니,
'정희야, 엄마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부끄러웠다. 하루하루가 다른 그런 세월을 맞은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 그렇게 나는 야속하고 한심한 딸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 엄마의 세월에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변해가는 엄마의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왜 이렇게 삭았냐며 농담을 던질 정도로 우리네 나이 든 것엔 관심을 가지면서, 왜 정작 엄마의 늘어난 주름에는 관심을 가진 적이 없던가.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면서, 여전히 변함없이 멋진 엄마 탓을 한다면 나 스스로에게도 엄마에게도 조금은 위로가 될까. 아니면 다르게 엄마 탓을 해볼까, 왜 진작에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어린아이를 둔 엄마들은 외출 전 아이에 맞춰 행동반경을 조절한다. 우리 엄마 역시 유난히 차멀미가 심했던 어린 딸을 위해 중간중간 주유소를 들르고, 다리가 아프다며 징징거리던 딸을 달래 가며 움직였을 것이다.
이제 딸은 여행이 힘들어진 엄마를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여행 계획을 짜야할 때를 맞았다. 엄마가 어렸던 나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많이 걷지 않도록. 많이 걸어야 한다면 중간중간 쉬어갈 카페를 찾아놓을 수 있도록.
그렇게 딸은 자신의 빠른 발걸음을 맞춰주던 엄마와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는 엄마의 호흡에 자신이 맞춰야 할 때를 맞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