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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엠히 Jan 11. 2017

런던에 가기로 했다

모녀가 사진을 찍는 방법



 체코 가마니 노동자 시절, 회사에서 워킹비자를 주지 않던 바람에 *쉥겐조약을 어긴 불법체류자가 된 적이 있다. 그 결과 체코에서 갈 수 있는 주변국은 다 돌았음에도 입국심사가 까다로운 영국은 가지 못한 그런 때가 있었다. 그렇게 한이 맺힌 채로 한국에 돌아왔고, 영국은 그렇게 내 목표 여행지 1순위가 되었다.


 *쉥겐조약은 가입국에 한해서 6개월 이내 최대 90일까지 여권 제시 없이 가입국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조약이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 쉥겐 가입국인 체코로 출국 후 프랑스로 이동할 때 여권제시가 필요 없다는 말이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오다가다 듣고 본 미술품은 런던의 갤러리에서 꽤 많이 소장하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사치갤러리 등에서. 이 또한 미술을 전공한 내가 영국에 가고 싶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미술관에 가면 엄마와 팔짱을 끼고 전시 관람을 하던 딸들이 그렇게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명색이 미술을 전공한 딸이 있는 엄마가 딸과 함께 미술관에 한번 간 적이 없다니. 역시 엄마와 런던에 가고 싶은 이유였다. (물론 우리는 영국의 미술관에 가서도 사진을 찍느라 팔짱을 끼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런던에 갔다.





 자연스러운 사진을 좋아하는 엄마는 사진을 찍고 싶을 때면 발걸음을 재촉한다. 혼자서. 응, 혼자서. 높은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저만치 가있는 엄마는 한 번씩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 그때 딸은 엄마가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는 그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딸은 가끔 잠시 멈춰 풍경을 찍다가 다시 이동할 때 엄마가 옆에 있지 않는 순간에 당황하지 않는다. 엄마가 옆에 없을 때는 그냥 카메라를 들고 뷰파인더를 통해 저 멀리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엄마를 찾을 뿐이다.





 저 멀리서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은 엄마는 다시 돌아와 카메라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엄마의 얼굴에서 만족감을 본 딸은 똑같이 찍어달라며 카메라를 건넨다. 결과물은 항상 이런 식.


 그래, 고의로 그런 것보다야 이게 낫지.





 덕분에 딸의 카메라에는 한 장면에서 똑같이 찍은 자기 사진이 수십 장이다. 포커스를 딸에게가 아닌 배경에 맞추는 엄마 때문에, 혹은 어떻게 겨우 포커스 맞춰놨더니 눈을 감은 딸 때문에.


 그래 놓고 엄마는 카메라에서 사진을 구경할 때마다 '온통 지 사진밖에 없는 거 봐' 하며 기어코 딸을 치사하게 만든다.


 엄마, 나도 내 카메라에 잘 나온 사진 한 장만 가지고 있고 싶어.






 호텔에서 트라팔가 광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웨스트민스터 브릿지를 건너야 했다. 이곳에서는 빅벤뿐만 아니라 런던아이와 그 앞을 지나는 빨간 2층 버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이유들로 이 곳을 꽤 좋아했는데 엄마는 이렇게 매번 건너 다닐 거면 애초에 다리 건너에 호텔을 잡지 그랬냐며 딸의 계획에 흠집을 낸다.


 내 깊은 뜻은 알지도 못하면서!





 첫날은 날이 참 좋았다. 내가 머무는 동안 런던의 일기예보는 그리 좋지 않았으나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런던의 일기예보 역시 그리 잘 맞아떨어지진 않거든.





 트라팔가 광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트라팔가 광장과 함께 바로 뒤의 내셔널 갤러리에 가려했으나 날씨가 너무 좋은 탓에 갤러리는 다른 날로 미루기로 했다. (런던 여행을 계획할 때에는 날씨가 좋은 날, 비가 오는 날에 맞춰 루트를 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열심히 돌아다녔고, 비가 오는 날에는 갤러리를 몰아서 돌아다녔다)






 이른 아침 비행에 정신없이 짐만 내리고 나온 탓인지 엄마는 트라팔가 광장을 눈앞에 두고 잠시 쉬어갈 곳을 찾았다. 그래 뭐, 잠깐 쉬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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