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생장 - 레온)
어쩌면 우리가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강하고 밝게 살아가야 함을 아는 것. 그와같은 내면의 성장일지 모릅니다.
2023. 05. 08. (Mon)
몸이 고생할 것을 미리 알아서인지, 막 설레거나 흥분감은 없다. 어쩌면 이것이 나 혼자 있을 때 진정으로 느끼는 내추럴한 감정일수도.. 이번 산티아고를 걷고 나면 뭐가 달라져 있을까 그게 가장 궁금하긴 하다. 내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와 우리가족, 내 주위사람들 모두를 위해 기도도 하고 내 앞날을 어찌살지 정리도 됐으면 좋겠다.
2023.05.09. (Tue)
여레는 낯선 프랑스에서 벌써 5년차 생활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고독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 살아내는 그 생활이 어떤건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자기 길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서, 저 후엔 어떤 단단함이 남아있을까, 어떤 무언가가 되어 있을까 궁금해졌다. 부디 그 순간순간 조금, 적당히 고독하고 큰, 즐거움과 기쁨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길 기도해본다.
2023.05.10. (Wed)
영화에서나 보던 작고 아담한 마을이다.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또 비온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어제부터 우산대가 망가진 것을 쓰고다니는 사람들을 진짜 많이 봤다. ㅋㅋㅋ웃김ㅋㅋ 부러진 우산 그까이꺼 뭐 그냥 시크하게 쓰는거다-
2023.05.11. (Thu)
Day 1. Saint Jean de Pied de port - Burguete (Auritz) (27.76km)
가장 중요한 것은 앞, 뒤 사람을 신경쓰지 않고, 내 발 앞의 길만 보고 걸으면 크게 힘들지 않았다. 한명한명 생각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엎치락 뒷치락 사람들과 걸으면서 나만의 페이스를 찾아간다. 그리고 스틱을 정말정말 잘 샀다.
걸으면서 이 아름다운 길들- 어딜보나 멋지고 아름다운 풍광(구름과 비로 가려지지 않을 때)을 보며 그냥, 표지를 따라 걷는 것이 그냥 행복이었다. 시간과 돈을 내가 쓰고 싶은대로 이렇게 사용할 수 있어서 얼마나 큰 행운인지! 구간구간 멋직 펼쳐지는 모습이 정말 감사하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부엔 까미노, 올라 등도 시전하고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 페이스대로 움직이는 것도 엄청 쿨하고 편하다. 피레네 꼭대기 쯤에서 만난 트럭아저씨는 한줄기 희망이었다.
그 이후로 내려오는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온통 진흙밭이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이 구간에서 무릎이 나간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감사하게도 I'm still alive.
2023.05.12. (Fri)
Day 2. Burguete - Zubiri (18.77 km)
길을 다니다 보면 익숙한 얼굴이 하나둘씩 생긴다. 웃으며 인사한다. 이번 여행에는 한국사람 안만나면 좋겠다 했는데 한 2-3일 지나니까 내가 먼저 가벼운 인사는 건네게 된다. 오케- 나는 모순덩어리다 ㅎ
반갑긴 하지만 깊은건 불편하고 나는 내 시간을 더 가지고 싶으니 딱 요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한다.
그리고 걸어보니 나는 slow but steady. 더더욱 남 의식하지 말고 내 페이스대로 이렇게 움직이기로 해본다. 수비리에 거의 도착했을 때 해목교 형님들과 언니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
2023.05.13. (Sat)
Day 3. Zubiri - Pamplona (20.25 km)
오늘은 재밌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길 가다가 어제 같은 숙소에서 머물렀던 미국언니 - 본인 40살 생일 기념으로 오려고 했는데 코로나때문에 이제서야 왔다고 함. 첫날 론세스바예스에 오후 9시에 도착했다고 함 허허- 그 언니랑 이야기하다가 한국 일행분도 만났고, 한국에서 영어선생님 하며 3년 넘게 살았던 미국인과 그 가족들도 만남 (이분들은 길 끝까지 계속 만나게 된다)
The way : Parable and reality - 비유와 현실의 길-
이 여정은 당신을 ‘순례자’로 만듭니다. 산티아고의 길은 단지 어딘가에 이르기 위해 걸어야 하는 하나의 길인것만도 아니고, 또 어떤 보상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시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엘 까미도 데 산티아고 (성 야고보 순례길)는 당신에게 하나의 ‘비유’이자, 동시에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진정 마음을 열어 이 길에서 당신 자신이 변화된다는 것을 허용하고, 기꺼이 이 길의 순례자가 된다면, 이 길의 각 단계들은 (당신 삶의 이 특별한 시기 안에서) 당신 인생의 전체 여정을 내적, 외적으로 보여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당신을 ’단순함‘에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등짐이 가벼울수록 걸을 떄의 부담이 덜어지는 체험으로부터 당신은 살아가기 위해 정작 필요한 것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이 길에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길은 당신을 다른 사람들과 형제, 자매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설사 당신이 이 길을 혼자서 걷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곧 길동무를 만나게 될 것이고, 당신이 가진것들을 그게 무엇이든지간에 기꺼이 그들과 나누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피로하고 발에 물집이 잡히더라도 당신은 동 트기 전에 일어나 새벽 전 캄캄한 어둠속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 걸어야 하므로 당신은 적절히 쉬기도 해야 합니다. 이 길은 당신을 명상(관상)에로 이끌 것이며,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고, 당신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환영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 길은 당신을 내적 여정에로 초대하고, 소란한 것으로부터 멈추게 하며, 고요 속으로 부를 것입니다. 대자연과, 이 길에서 만난 동료들과, 당신 자신, 그리고 하느님께 경청하고, 감탄하고, 축복하도록 이 길은 당신을 부를 것입니다.
2023.05.14. (Sun)
Day 4. Pamplona
<책들의 부엌> 다 읽음! 팜플로나 구시가까지 들어왔는데 비만 겁내 내리고 가게는 다 문닫았다..!
도심말고 시골에서 연박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하루종일 카페에 앉아서 책 한권 다 읽고 .. 비누로 머리감다가 샴푸 구매함... 그리고 가져온 보조가방과 필요없는 짐들 다 버리기로 함. 더불어 마트에서 산 큰 젤리와 과자 등도 버림.. 은주 욕심 노노 정말로 걷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2023.05.15. (Mon)
Day 5. Pamplona - Zariquiegui (10.96 km)
팜플로나 데카트론에서 필요한 여벌의 옷을 좀 더 사고 점심시간 다되어서 출발.
마을에 도착해 언덕에서 점심먹는데 풍광이 배부르다. 머리를 촤라락 휘날리며 점심을 먹는다. 걷는데 골반이 좀 아프다. 준비운동을 철저히 하기로 한다.
2023.05.16. (Tue)
Day 6. Zariquiegui - Ciraqui (20.53 km)
큰 풍력발전기가 줄지어 서있는 페르돈 언덕을 오르는데 비가 계속 내린다. 꼭대기에 오르니 비가 그치고 햇살이 나타나면서 저 멀리 무지개가 보인다. 갑자기 기분 좋아짐! 그리고 내려가면서 캐나다, 오스트리아 등등에서 모인 언니들을 만났다. 같이 카페 콘 레체 먹으면서 이야기하다가 이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언니들이 어디 교회 들를건데 같이 갈래? 라고 물어봐서 like it! 했는데 알고보니 길에서 4키로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한적하게 떨어진 교회 갔다가 그 언니들은 푸엔테 라 레이나 도시로 가고 나는 거기서 10km 더 떨어진 내 목적지에 오후 4시쯤 도착. 그리고 여기서 중년의 한국 언니 두분을 만났다. 예전에 두분이서 순례길을 걷고 이번에 다시 또 같이 오셨다고- 저녁에는 한국 언니들 및 프랑스 부부들과 함께 베지테리안 식사 하면서 굿타임 윗 굿 피플.
신기하게 하나님이 내가 조용히 하는 기도를 다 들으시는 것 같다. 제대로 준비한 것 하나 없지만, 사람들을 통해 가볼만한 곳은 다 둘러보게 하시고 사람들을 붙여주신다. 나의 부족한 언어로 그들과 완전한 소통을 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전해지는 따뜻함이 있다.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가는길을, 내 기도를 주님이 다 아시는 것 같다.
2023.05.17. (Wed)
Day 7. Ciraqui - Azqieta (21.52 km)
저녁시간에는 독일아저씨, 영국부부, 독일 아줌마, 이태리 아줌마랑 같이 저녁 먹음. 신기하게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한국의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랑 거의 주제가 비슷했다. 재미있는 포인트 ㅋㅋㅋ
2023.05.18. (Thu)
Day 8. Azqieta - Sansol (20.92 km)
앞으로 다니면서 먹는것에 욕심내지 않기로 다짐. 내일의 일용한 양식을 위해 미리 고민하지 않기로 함. 슈퍼가 일정하게 있지 않고, 작은 마을에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아 종종 큰 마트가 있을때 과일이나 먹거리들을 대량 구매하게됨. 하지만 그걸 다 들고다니기엔 가방이 너무 무거워진다 ㅠ
2023.05.19. (Fri)
Day 9. Sansol - Logrono (20.72 km)
숙소예약을 미리하지 않아서 어딜갈까 고민하다가 성당에서 기부제로 운영하는 곳에 들어갔다. 시설은 생각보다 더 좋았고, 저녁도 다같이 만들어먹는데 나는 그때까지 기다릴수 없어 먼저 먹고옴. 저녁식사 후에는 순례자들이 알베르게 비밀통로를 통해 성당 뒷편으로 들어가 초를 켜고 순례길에 왜 왔는지 등 자기 이야기를 간단히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가슴깊이 담아둔 이야기를 꺼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누구는 웃으며 자기의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 시간을 참여하고 나니, 이 길 위를 걷는 모든 사람들이 익명의 누군가가 아니라 한명한명 스토리를 가진 인격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들이 평안하길 진심으로 바라게 됐다.
하지만 밤새 익명의 어떤 아저씨 코고는 소리에 깊이 잠들지 못함.
2023.05.20. (Sat)
Day 10. Logrono - Najera (28.27 km)
거의 처음으로 가장 오래 걷는, 걸어야하는 날! 아침 출발하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가는길에 sb를 만남.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속도 쳐지지 않고 빠르게 걸었다. 꽤 멀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이야기하면서 걸으니 내 생각보다 빠르고 덜 힘들게 도착했다. 근데 공립알베르게 공사중으로 문 닫음. 다른 알베르게들도 풀부킹..! 힘든데 배고파서 숨겨진 하이드가 나올뻔 했지만 sb가 맛집을 찾아서 금방 가라앉음.
우선 배부르게 배 채우고, municipal 체육관에서 3유로에 에어 매트리스 깔고 잠! 샤워실도 잘 되어있고, 사람도 많지 않아서 생각보다 꽤 잘 잠ㅋㅋㅋ
2023.05.21 (Sun)
Day 11. Najera - Santo domingo de la Calzada (20.93 km)
슬슬 걸어가는데 오늘도 정말 멋있는 하늘과 풍경이 펼쳐졌다! 그래서 더 슬슬 걸음.
오늘은 어제 만났던 미국인 친구 만나서 걷다가 그 친구가 마트에서 산 재료로 샌디치를 만들었는데 너무 많다며 나눠준것으로 배부르게 점심 해결. 가는 길 엄빠한테 영통해서 풍경도 보여주고 행복해하면서 잘 걸었다! 도시 도착해서 도전한 삼겹살 튀김과 맥쥬 엄지척!
2023.05.22. (Mon)
Day 12. Santo domingo de la Calzada - Tosantos (27.59km)
방에서 맨 마지막에 출발. 카페에서 아침으로 샌디치 암거나 주문했더니 빵 3겹자리 엄청 양 많은 샌디치였음..! 아침부터 아주 든든하게 과식하고 걷기 시작. 음악으로 템포 올리고 좀 많이 걷기로 함. 날이 습해서 땀이 주룩주룩(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뽀송뽀송-) 좀 빨리 걷기 시작하니 비로소 운동을 하는 것 같다-
길에서 미카엘이라는 프랑스 친구를 만났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조금 더 생각하고 고민해보려고 왔다고 한다. 30대 중반이 되니 다들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오나보다. 이 친구는 계속 종종 만났는데 알고보니 엄청난 핵인싸였다. 내 밑 침대에서 자던 대만아줌마의 약간 소름끼치게 잠꼬대와 그 옆 침대의 유럽 아줌마의 코골이 콤비네이션 파티가 화려하게 밤을 장식함.
2023.05.23. (Tue)
Day 13. Tosantos - Ataquerca (25.13 km)
하루종일 구름속을 걸었다. 아침으로 바게뜨 샌디치, 오렌지 주스, 커피 마시니 9유로.. ㅎ 시골이 더 비싸다.
오늘은 걸으면서 초반에 만났던 미국 버몬트 언니도 만나고 sb도 만남. 그리고 계속 걷다보니 해가 나왔다. 이 길에는 이렇게 매일매일의 위로가 있다. 발 뒷꿈치 통증이 있어서 중간에 크록스 갈아신고 걸음. 바디워시인줄 알고 니베아 뭐시기 샀는데 알고보니 바디로션. 알베르게 도착해서 맥쥬 한잔 마시며 책읽는거 참 행복일세
2023.05.24. (Wed)
Day 14. Ataquerca - Burgos (19.83 km)
부르고스에서 한국분과 에어비앤비로 연박하기로 했는데 나 날짜 착각함. 뒤늦게 급하게 다시 숙박 찾다가 괜찮은 방 찾아서 sb와 함께 지내기로 함. 밥이 너무 먹고싶어서 이것저것 추가해서 17유로짜리 포케 아주 만족스럽게 먹고 도시산책. 이러다 저러다 sb아는 분들 만나서 타파스랑 맥쥬 마시고 또 지나다니다 보니 아는 사람들 만남. 이렇게 저렇게 다 만나게 됨.
부르고스에 아시안 음식 파는 곳에 떡볶이랑 닭강정 파는곳이 있었는데 별로임. 닭강정 4개 줌 ㅎ
2023.05.25. (Thu)
Day 15. Burgos
아침에 여유롭게 커피마시며 책 보다가 슈퍼가서 장 보고 전 직장 친구와 영통하면서 소식 업데이트.
유투브로 성당 가이드 내용 들으며 걸으니 아주 유익함. 저녁엔 불닭에 삼겹살 등등 먹고 둘이서 와인 두병 끝냄ㅎ
2023.05.26. (Fri)
Day 16. Burgos - Arroyo San Bol (26.57 km)
남은 음식들로 아침 푸짐히 먹고 화장실까지 깔끔하게 볼일보고 9시 출발.
구름이 있어서 걷기 좋은 날씨였다. 가고 싶었던 알베르게에 다행히 딱 한자리 남아서 머물 수 있었다.
총 8명이 함께 잤는데 저녁식사도 괜찮았고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유쾌하게 오갔다.
그 중 55살 이탈리아에서 온 막시무스(막스)라는 아저씨가 있었다. 두고두고 생각나던 사람인데 돌아보니 그 아저씨를 만난 이후로 마음이 좀 열렸던 것 같다. 막스는 이탈리아 시골에서 큰 트롤리 트럭을 운전을 하다가 이번에 첫 해외여행으로 순례길에 왔다. 형이랑 같이 산티아고에 왔는데 형이랑 누가 먼저 가나 내기 중이며, 빨리 걷다가 넘어져서 한쪽 무릎이 다 까졌다. 하지만 자기가 지금 더 앞서고 있기 때문에 엄청 신나했다.ㅎ 그리고 순례길에 오니 다른 대륙에서 온 나 같은 아시아 사람도 만나보고 온통 신기한 일들이 많아서 연신 '맘마미아'를 외치며 신기하고 즐거워 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과일을 먹고 있으니 자기 주머니에서 꺼낸 빵과 치즈를 떼어주며 이렇게 이렇게 먹으라고 손짓 발짓으로 알려준다. 그리고 절대 못알아 듣겠는데 계속 이탈리아어로 나한테 말을 건다. 못알아 듣지만 참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느낌으로 알게되나보다. 이 숙소에서 함께 지냈던 사람들을 이후로도 몇번 만났는데 그때마다 막스 아저씨 봤냐고 물으며 우리끼리 또 추억을 되새겼다.
밤새 난로가 켜져있어서 옷도 잘 마르고 따뜻하게 잘 잠.
2023.05.27. (Sat)
Day 17. Arroyo San Bol - Itero del Castillo (23.17 km)
하루종일 해가 쨍쨍 떠있다. 안그래도 길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이젠 이 길을 나 혼자 걷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맘에 드는 숙소가 없어서 가는 길 바로 옆에 있는 수도원에서 묵기로 함.
마침 수도원 문여는 시간(2시)를 약 몇 분 앞두고 그 앞으로 지나가고 있었기에 바로 등록. 딱 8명만 지낼 수 있는 곳이었고 이 건물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샤워시설이 있는 건물에선 전기 사용 가능) 샤워를 하고 뒷마당에 누군가의 매트 위에 누워있었는데 솔솔바람을 맞으며 잠이 스르륵 들락말락 행복했다.
저녁먹기 전, 이 수도원에서 봉사자로 섬기고 있는 이탈리아 부부가 순례자들의 발을 씻기고 키스를 해주는 세족식을 하고 다같이 초를 켜놓고 저녁을 먹었다. 내가 스페인어도 이탈리아 언어도 할 수 없어서 프랑스 친구가 번역을 해줘서 대화에 낄 수있다기보다 적당히 끄덕일 수 있었다. ㅎ
2023.05.28. (Sun)
Day 18. Itero del Castillo - Villarmentero de Campos (24.61 km)
아침에 다같이 커피와 빵을 먹고 출발. 남들과 비슷하게 출발하면 가는 길에 뭔가 말을 해야하는 어색함이 있을 것 같아 아예 느지막히 준비하고 맨 마지막에 출발. 출발 전 봉사자 부부가 축복을 해주는데 괜히 눈물 찔끔 남. 일요일의 한적한 바이브가 온 도시에 퍼져있다.
아침부터 날씨가 너무 좋아서 구름도 없고 사람도 안보인다. 중간에 되게 걷기 싫어지길래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그냥 걸었다.(아무리 걷기 싫어도 딱히 방법이 없다) 걷다보면 노래를 듣든 기도를 하든 아니면 설교를 듣든 아니면 사람을 만나든.. 뭔가 하고싶어지는 그런 느낌이 각각 있다. 그럼 그걸 따라서 가면 된다.
한걸음 한걸음 통증이 있는 발바닥 부분을 피해서 올바르게 힘주고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잘 걷는 방법도 배우게 되겠지.
비가 막 쏟아지기 전, 봐두었던 숙소에 도착. 다행히 자리가 있어서 바로 찜. 어제 숙소에서 만났던 젊은 독일 청년도 있고 스페인 아저씨도 만남. 가족같은 분위기의 숙소였는데, 숙소 주인들에게 우리는 아마 평생에 한번 만날, 그리고 다 기억하지도 못할 사람들일테지만 이름을 물어보고 불러주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리고 신기하게 알베르게에서 애완용으로 거위 2마리와 당나귀를 키우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새벽 3시에 잠에서 깨서 잠깐 건물 밖으로 나와봤는데 별이 초롱초롱하게 떠있었다. 그러곤 다시 들어가서 잠
2023.05.29. (Mon)
Day 19. Villarmentero de Campos - Calzadilla de la Cueza ( 26.73 km)
수도원에서부터 알려줬던.. 마지막 17km동안에 바(bar)도 없고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잘 준비해야한다던 그 길을 무사히 통과함. 조용하고 길이 이뻐서 좋았음.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북한 스파이 아니냐며 계속 재미없는 개그 시전하는 캐나다 아저씨가 있었음.
마을 입구에 바로 보이는 알베르게에 갔는데.. 작은 마을에 알베르게가 한개여서였는지 닭장같은 느낌으로 침대를 구겨넣었다. 여기서도 아는 얼굴 많이 만남. 감사하게도 난 맨 끝에 방으로 구분되어있는 곳으로 배정됨. 행운은 나의편. 그나마 1층에는 수영장도 있고 테라스도 좀 널찍히 있어서 쉴 수 있는 곳이었다.
맥쥬도 좋지만 시원한 콜라의 맛을 알아가고 있음.
2023.05.30. (Tue)
Day 20. Calzadilla de la Cueza - Calzada del Coto (25.99 km)
같은 방에서 잔 사람들이 아주 일찍 준비해서 나도 덩달아 일찍 일어나게 됨.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차도 옆을 걷는것은 느낌이 좋지 않다. 그리고 드. 디. 어 나도 발바닥 물집 생김.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
큰 도시를 지나 작은 마을 알베르게 겨우겨우 도착. 도착해서 씻고 빨래도 하고 동네 바에서 배 좀 채우고 보니 알베르게 반은 아는 사람. (애초에 사람이 많이 없었음)
저녁 8시에 와인과 초리조 등을 같이 마시자는 메모가 있어서 같이 따라갔는데 알고보니 이날의 하이라이트가 준비되어 있었음.
대략 7명 정도의 순례자들이 봉사자 아저씨랑 같이 마을 어디론가 출발. 목적지는 호빗 집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200년정도 된 와인 저장고 겸 작업실. 마을 주민 중 한분이 자신의 작업실로 우리를 초대해서 직접 담근 와인과 치즈, 초리조 등을 대접해주셨다. 작업실을 한차례 다 둘러본 후 본격적으로 자리잡고 앉아서 먹고 마시다가 동네 청년들도 잠깐 들렀다 가고, 옆집 아저씨도 인사하고.. 어느 나라나 시골은 이렇게 비슷한 바이브인것인가. 이날 모인 사람들이 다 다른 언어를 사용했는데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하며 웃고 떠들었다.
알베르게 봉사자 아저씨도 같이 있었기 때문에 통금시간인 10시를 훌쩍 넘겨서 뒤늦게 들어가 바로 쿨쿨 ㅎ
2023.05.31. (Wed)
Day 21. Calzada del Coto - Reliegos ( 26.23 km)
전날 과음으로 7시 넘어서 일어나서 8시 출발. 어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봉사자 아저씨의 축복을 받으며 또 길을 떠났다. 점심으로 비싼 신라면+햇반 먹음. 이탈리아어 통역햐줬던 스페인 아저씨도 만나고 어제 함께 즐거웠던- 매일 새벽 5시에 출발하는 이탈리아 부부도 만남. 그리고 부르고스에서 만났던 한국 젊은 청년들도 만나서 저녁 신세짐.
(이 청년들한테는 신세만 지고 이후로는 보지 못함 허ㅓㅎ)
2023.06.01. (Thu)
Day 22. Reliegos - Leon (24.56 km)
레온 들어가는 길에 한국인 젊은 친구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아주 빠르게 도시 입성 할 수 있었음. 미리 예약해둔 에어비앤비가 좋앗음. 또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장을 엄청나게 많이 봄. 혼자 장본거 우걱우걱 먹으며 암것도 안함.
2023.06.02. (Fri)
Day 23. Leon
아침 여유 부리며 성당 + 가우디 건물 투어 알차게 완료. 레온성당 스테인드 글라스 아주 화려함
저녁에 sb 다시 만나서 문어도 먹고 아주 쫄깃쫄깃했던 파르페 먹음. 여기 아주 맛집
sb와 마지막 만남이 될 줄 알았는데.. (나중에 어쩌다가 한번 더 만나게 됨)
이제 집을 떠난지, 길에서 생활한지 거진 한달이 다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