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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주어디가 Nov 01. 2023

가족의 재구성

엄마 딸이 결혼 후 내가 느끼는 것

우리 집에 새로운 가족이 들어왔다

올해 예정됐던 가장 큰 가족행사인 동생 결혼식이 유쾌하게 잘 끝났다.


이래서 결혼식은 부모님, 가족행사라고 하나보다.

오랜만에 정말 많은 친척 어른들과 사촌들을 만났고, 웃으면서 생각보다 더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이 이후로도 우리 가족은 정말 즐거운 날이었다는 말을 100번은 더 한 듯하다)



영원히 이대로 변치 않을 것 같던 우리 가족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새 식구가 들어왔다. 이와 관련해 별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그동안 든든한 안전망이 됐던 내 기반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에 예상치 못한 큰 데미지가 있었다.

동생이 처음 결혼을 할 것 같다고 할 때(아마 포르투에서였을 거다)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보자’ 단계부터 시작했더랬다.

한국으로 귀국 후 여러 차례 만나면서 동생이 참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도 하기 전에 동생이 시댁집에 자주 드나드는 것을 보고서는 순진하게 저러고 다닌다며(주위에서 보고 들은 내용들이 좀 있었다) 말했더니 지금까지는 없었던 미묘한 신경전이 생긴다. 이러다간 의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난 후로는 알아서 하겠지 하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인정하는 것이 사돈 댁은 정말 다정하고 화목한 가정이었고, 동생을 정말 아끼고 사랑해주셔서 동생이 가고싶어했던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다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서는 벌써 지 가족 생겼다고 얄밉게 구는 동생이 겁나게 밉고 괜히 서러워서 울면서 싸운적도 있었다ㅎ(그 당시에 여러가지 감정적인 요인이 겹치긴 했었다..ㅋㅋ) 하지만 이제 그 모든 단계를 거쳐 지금은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이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모든 (나만의) 우여곡절을 넘어 결혼식을 마치고, 새 가족이 생기고, 이런저런 기회에 양가가 같이 만나기도 하고 상대방의 소식을 건네 들으면서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내가 결혼한 것도 아닌데, 참 생각이 많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감사한 일이 바로 우리 가족을 만난 것이다. 아니, 내가 우리 가족의 구성원인 것이다.

우리 가족의 백그라운드를 간단히 이야기해 보면,

다정하고 성실한 아빠와 부지런하고 알게 모르게 뒤에서 부족함 없이 다 챙기는 엄마. 전형적으로 애교 많지만 막내 같지만 현실감각(?) 뛰어난 동생. 집에서는 대문자 T와 무뚝뚝하고 잔소리 많지만 듬직하다고 30대 이후로 외국에 자주 나가고 싶어 하는 철없는 큰딸이 있다.  


어릴 적엔 외부의 간섭(?)으로 인해 엄마아빠가 많이 싸웠다. 그 원인은 항상 같았다. 이제는 엄마의 입장도 아빠의 입장도 각각의 성격과 캐릭터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쉽진 않았다.

그래도 두 딸들을 위해 엄마 아빠는 최선을 다했고 과분하게 넘치는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초등학생 때는 아빠 퇴근하면 맨날 집 근처 공원에 돗자리 들고 가서 10시 11시까지 쉬면서 배드민턴도 치고, 스케이트를 탔다. 열심히 놀다가 아빠 팔이 부러졌던 일도 있었다ㅋㅋ행복한 학창 시절이었다.

나 고딩때 아빠가 일하던 회사가 다른 회사에 합병되면서 경제적으로 가세가 훅 기울었지만, 그래서 엄마아빠는 좀 힘들었겠지만 나는 크게 힘들다는 생각 없이 후다닥 지나 보냈다.

우리가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종종 가족끼리 국내외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소박하지만 여유롭게 지낸다.




하.지.만. 이번에 '사돈댁'이라는 새로운 가족, 즉 '행복한 가족' 표본이 하나 더 늘어나니 평생 고정되어 있던 '세상에서 가장 좋은 우리 가족'이라는 이미지가 새로운 각도에서 보이기 시작하면서 약간의 부작용이 생겼다.

사돈댁은 사돈 아버지가 사돈 어머니를 참 다정하게 챙기시고, 자녀들이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가정이었다. 역시나 제부와 사돈처녀도 사랑을 잘 받고 사랑을 잘 나눌 수 있는 바르게 자란 친구들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유니콘과 같은 가정의 아들을 동생이 만난 것이었다.

사돈 아버지의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 집안일이든 무슨 일이든 귀찮은 것 상관없이 알아서 척척 잘하고 동생한테 가장 잘한다.

'믿음의 가장'이 이런 모습이었던것 같다. 이야기만 듣다가 실제로 몇 차례 만나보니 정말 알겠더라.


우리 아빠도 어디 가서 뒤지지 않을 만큼 다정하고 유머 가득한 사람이고, 엄마도 그 나이에 맞지 않게 참 사랑스러운 사람인데(이젠 나이가 좀 들면서 예전의 근엄 진지한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지금은 좀 더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많아졌다), 나도 모르게 사돈집을 보면서 우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주말에 차 밀리는 교통지옥 속에서 왕복으로 오고 가야 하는 엄마아빠에게 늦는다고 구박하고, 당사자는 필요하지 않다는 물건들을 비싼 것으로 사다 주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속상해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서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생각하다보니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식도 없는 내가 딸 시집보내는 엄마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미 멋지고 훌륭한 부모님인데 제 3자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과거와 사정이 있고, 나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이해하려하지 않고 남보다 못하게 비난을 했다.

못난 자식이 되었다. 앞으로는 너무 익숙해서 차마 깨닫지 못했던 가족들의 멋진 모습들을 발견하고 말도 좀 더 이쁘게 해 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바깥에서는 티를 잘 안내지만 사실 나는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하면 너무너무 싫고 사실 잘 듣지도 않는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말들에 조금씩 신경이 쓰이며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나'인 것은 나답게 끌고 가야 하는데 그 중간 어디쯤에서 중심을 잠고 있어야 하는지 아직도 어렵다. (그리고 요즘 그만큼의 에너지가 없기도 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뭔가를 시작하는 것도 참 피곤하고 어려운 요즘이다-)


이미 내 자아는 클 만큼 컸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본격적인 '독립'과 '자아성찰'을 새롭게 하고 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모르는 것이 참 정말 많은 것 같다. 찬바람이 불면 꼭 이렇게 한번 현자타임을 갖게 된다.

난 언제쯤 내 감정 냉정하게 파악하고, 컨트롤하고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될 것인가.


엄빠 집에 갈 때마다 셋이서 열정적으로 루미큐브를 하는데, 이번에 내려갈 때는 새로운 보드게임을 하나 가지고 가서 또 다른 재미를 전파해야겠다.


등산도 좀 더 자주 같이 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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