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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주어디가 Dec 13. 2017

봉사활동..?

몽골에서의 273일. 내가 생각하는 '봉사활동'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코이카 파견 후 6개월이 지나면 받는 건강검진과 함께 12월을 시작했다.

온갖 종류의 검사를 받고 A형 간염 2차 접종도 했다. 너무 아파서 팔 못쓰는 줄...

너무 오랜만에 다녀온 울란은 정말 오타(매연)가 너무 가득한 곳이었다.

울란으로 향하는 2차선 도로를 달리다 보면, 저 멀리 보이는 검은 오타의 아우라. (이거 진짜 눈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음)

집에 오니 머리에 배인 매연냄새가 정말 지독해서 머리를 감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겨울 울란 주의※

종모드는 정말 여러모로 청정지역인 것이었다-


그렇게 첫 주를 보내고, 이래저래 하다 보니 브런치에 글이 많이 밀렸다. 헤헷

요즘에는 미리 사진도 편집하고 가끔 페이스북에 올릴 동영상의 선별, 편집 등의 일을 하고 있다.

그건 그거고, 그래서 요즘 글이 밀리는 이유를 핑계를 대보자면...

너무너무 느린 기관 인터넷, 요놈이다. 보통은 3G보다 더 느리다ㅠ 으아아아아아악!!!!!!!!!!

우스갯소리로 한국 가면 인터넷이 너무 빨라서 현기증 나겠네-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이게 결코 농담이 아니다.

 요즘에는 카톡 사진도 안 열릴 만큼 느리거나 아예 안된다.

그러니, 사진을 빠바박 하고 업로드를 해야하는 브런치는 새로고침 몇 번 하면 시간이 다 지나간다.

집 가서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종종 하지만.. 공부나 일은 원래 집에 들고 오는 거 아닌거.. 다들 알쥬? 껄껄껄




이렇게 지금까지 나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을 좀 하고,

본격적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봉사활동'에 관한 이야기다.


건강검진 날에 맞춰 몽골에 도착한, 한국에서 보내온 상자에는

내가 주문한 몇몇 가지 물건들과,

종류별로 엄선해 챙겨 넣은 라면과 과자들,

치마레깅스와 수면잠옷 등의 소소한 옷가지,

오는 동안 다 얼어버린 마스크팩, 에센스,

그리고 책 몇 권이 있었다.


어렵게 한국에서 건너온 책 3권 중 2권은 읽은 책들이었다.

:-D

이렇게 우리의 부족했던 소통은 딱 그 책 두 권의 무게만큼의 국제택배비용으로 지불되었다....

는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책 중에 한 권이 공지영 작가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였다.

불과 1년 새에 나의 상황은 꽤나 변했고, 다시 열어본 책에서 눈길이 가는 부분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내가 책에 나온 요리 레시피를 다 카메라로 찍어두었다는 것이다!

요리는 잘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요리를 못해도 잘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혼자 끼니를 모두 해결해야 하는 때에 엄마가 알려주는, 심지어 쉽고 간단한 레시피만큼 혹하는 것이 어디 있으랴- ㅋㅋㅋㅋㅋ


그리고 책을 읽다 보니 쉬운 레시피만큼이나 눈길을 사로잡은 구절이 있었다.


"엄마, 마음을 다쳤어. 선의로 무언가를 해주었는데 그만 상처만 받고 끝나버리고 말았어."


위녕, 엄마는 그렇게 생각한단다. 살다 보니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선의로 무언가를 대가 없이 누군가에게 주는 일이었어. 이상도 하지? 그리고 그 대가는 대게는 가혹해. 이건 불우 이웃 돕기 성금을 내거나 결식아동들을 돕거나 하는 일을 말하는 건 아니야. 이건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에서 오가는 무상의 공급(?)에 대한 이야기야.


  이건 엄마가 전에 말한 대로 '늘 주기만 하는 A는 늘 받기만 하는 B에게 필연적으로 배반당한다'와 같은 맥락이란다. 인간의 심리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복잡할 거 같아 여기서 결론을 말한다면, 그냥 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야. 그러니 만일 네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아니 사랑하지 않아도 그냥 친분이 있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거저 주려고 한다면 한 가지는 명심해야 해. 우선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한 번은 곰곰 생각해봐야 해. 그 일로 인해 너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기는커녕 험담을 들을지도 모르고 혹은 온갖 비방에 시달릴지도 모른다고. 몇 번의 뼈아픈 경험을 하고 나서 나는 이제 그럴 경우 내 자신에게 물어.

  "네가 이것을 주고 나서 너는 그걸 준 대가로 욕을 바가지로 먹고 모함당할 것이다. 그래도 좋은가?"

  심하다고? 아니 그렇지 않아. 이런 물음 없이 주는 행위는 사실 위험할 수 있단다. 첫째, 내가 괜히 좋은 사람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될 위험이 제일 크고, 받는 상대는 자존심이 상하게 될 수 있다. 주는 나는 안그려러고 해도 조금의 서운한 행동에도 '내가 줬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할 수 있고 받는 그는 '줬다고 저런 식으로 유세를 하는구나'하는 이중의 오해들에 빠지기가 아주 쉽지. 잘 생각해봐. 엄마 말이 그리 틀리지는 않을 거야. 어쩌면 무상으로 주는 이유는 내 스스로 잘난 척, 어렵게 말하면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일종의 욕심일 수가 있단다.

  이런 질문을 한 이후에 누굴 돕겠느냐고? 아니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도 도울 일은 많단다. 이런 질문을 하고 아예 보답은커녕 욕먹을 각오까지 하고 나면 그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욕이나 안 먹은 것에 감사하게 되는 이상한 효과(?)도 있더라고 알고 보니 엄마의 이 생각은 틀리지 않아.

  불교에서는 이런 걸 '무주상보시'라고 하고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지.  


- <딸에게 주는 레시피> 중에서


우선 위에 글에서 말하는 '무상의 공급'은 코이카와는 조금 다른 상황이긴 하다.

어찌 되었든 국가는 2년 동안 단원들이 생활할 수 있는 여건과 귀국 후를 준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들을 마련해 두었다. 이것들이 단원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든 아니든 단원은 자발적으로 이만큼의 혜택을 받고 이만큼의 봉사를 하는것에 동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글을 인용하는 까닭은 각 개인이 2년 동안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쏟아붓는 노력과 마음이 상당히 크고, 그와 비례하게 일상에서 부딪치며 겪는 낯선 환경과 문화,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 처음 이 부분을 읽어 내려갈 때에는 다른 누구가 먼저 떠올랐다. 평소에 내가 못마땅해하던 사람들-

이렇게 한 10초쯤 읽어 내려갔을까, 이건 그냥 딱 내 이야기였다 ㅋㅋㅋㅋ


누군가 정말 순수한 동기로 코이카, NGO단체, 혹은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면 먼저 이 질문을 던져보자.


 "네가 이것을 주고 나서
너는 그걸 준 대가로 욕을 바가지로 먹고 모함당할 것이다.

그래도 좋은가?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생활이 이제 273일 밖에 되지 않았고 또 언제 생각이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지금으로서는 저 질문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처음에는 도움이 되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그것을 받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태도에 상처를 받으면서 체념 내지는 순응하게 되거나, 언제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관계- 때로는 없는 것만 못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실제로 다른 가치관과 문화의 차이는 꽤 심각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특히 '도덕'이라는 과목이 없다는 것의 영향력(?)은 일상생활뿐 아니라 현지인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가장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코이카뿐 아니라 종류를 막론하고 국제개발이나 봉사활동의 현장에서 많은 이들이 겪는 모습이었다. (전 세계에 파견된 봉사자의 수만큼이나 정말 황당한 일들과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발생하는데, 같은 처지에서 이를 전해 듣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다.)


각 나라마다, 기관마다 상황은 많이 다르다.

감사하게도 내가 일하는 기관 사람들은 나에게 매우 우호적이고,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아직까지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을 보면 꽤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허허허

그럼에도 내가 마냥 희망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와 분위기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한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각 구간의 시간을 조금씩 단축할 수는 있어도 그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ㅉㅉㅉ 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살지? 이해를 못하겠네' 였다면 지금은 '이렇게 조금씩 변하고 있는 거겠지. 문화나 사회의 의식이 하루아침에 바뀐다면 그게 더 무서운 일이 될 수도 있어'라고 생각하게 됐다.


여기서 뭔가를 해야 한다면-

내가 이들의 인식을 단번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사는 삶도 있다고 보여주는 것.

간단한 위생습관과 식습관만으로도 40살이 되어서도 이를 뽑지 않아도 되고, 계단도 넘어지지 않고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보통의 시민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날이 조금 더 앞당겨질 수 있도록 옆에서 자극하는 것 정도 일 것 같다.


나는 아직 제대로 뭔가를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 일들이 전혀 부질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

273일을 지내며 알게 되었다.



                       모든 봉사의 현장에서, 우리 존재 화이팅!! (feat. 가장 몽골식으로 화이팅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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