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어떻게 한 걸까?
몽골에서의 1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 5월 11일은 임지에 파견되고 혼자 살기 시작한 지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코이카 일반 봉사단원은 파견기간 2년 중 1년이 지난 후에야 국외 휴가가 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단원들이 1년이 지나기가 무섭게 한국이나 인근 국가로 휴가를 다녀온다.
이미 동기 선생님 중에는 한국에 다녀오신 분도 계시지만, 나는 8월에 러시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므로 2년 내에 한국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1년이 지나기가 무섭게 슬럼프라는 놈이 찾아왔다.
1년이 지나면 한 번쯤은 지독한 슬럼프가 찾아오니 마음을 잘 추스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뭐 그런갑다, 그런 게 있는갑다 했는데 어김없이 이놈은 나에게도 찾아왔다.
(1년이 지나서 온다는 슬럼프는 아마도 처음에는 이들의 생활과 문화가 신기해서 그것을 보고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면, 4계절 동안 볼 것 다 보고 (더 이상 새롭거나 신선하지 않은) 이들의 생활방식과 사고를 체감하면서 느껴지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사실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뭉쳐 슬럼프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것 같다.
무기력한 기분이 잔잔히 꽤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문득 '아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빵 하고 내 머리를 쳤다.
1. 왜 시청에서는 할 일도 없으면서 코이카 단원을 요청한 것일까.
2. 선임 단원이 시청 말고 도청으로 파견해달라고 요청했는데도 왜 코이카 사무소는 나를 시청으로 보냈을까
3. 한국에서도 공무원들과 일하는 것을 질색했는데 왜 여기서도 공무원들과 이러고 있는 것일까
4. 한국어 수업을 함께 하는 이 언니들은 맨날 늦는다. 10분 20분은 기본이고 1시간도 넘어서 온다.
내가 그냥 하지 말자고 했는데도 꼭 오겠다고 하다가 결국 안 오는 사람도 있다. 나한테 왜 그래!!!
5. 번역해서 책 만든다고 했으면서 그 많은 자료를 왜 전날 넘겨주는 걸까. 그러면 못한다고 해야지
감당할 능력도 안 되는데 욕심부려서 결국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모두가 힘들어졌다.
6. 어떤 성취감이나, 보람,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나는 내 시간을 왜 여기서 이러고 보내고 있는 것일까
7. 이렇게 개개인의 단원을 파견하는 것이 국제개발협력에서 정말 효율적인 방법일까?
단원을 파견하는 것보다, 그들의 생활비로 길을 깔아주고, 낙후된 시설을 재정비해주는 사업이 이들도 더 바라는 것 아닐까? 아무리 봐도 공여국에서 수여국이 된 한국과 같은 케이스는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등등의 이런 극단적인 불만들이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몽골에 와서 처음으로 당장 집에 가고 싶었다(하지만 이미 8월에 티켓팅을 해 놓은 상태. 빼도 박도 못하는.. 나도 모르는 큰 그림을 그렸더랬다......)
사실 겉으로 보이는 현상보다 내가 미처 다 알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엮여서 오늘의 이런 모습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내가 선택했던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화풀이할 것들, 내가 지금 이렇게 불쾌한 기분을 느껴야 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것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껄껄껄
이때쯤 '세계시민교육'자료를 번역(이라기보다 번역기를 돌릴) 일이 있었다. 그중에 눈에 확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다.
세계시민교육 주의사항
① 국가주의, 민족주의 관점의 접근 주의
• 개도국 문제를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인식
② 기존의 인식 및 편견 주의
• 자신의 편견에 대한 성찰, 다양한 의견 교환, 열린 사고 지향 (Ex. 흑인 나라에 부정부패 多, 전쟁, 빈곤, 자연재해를 개도국의 문제로 취급 등)
③ 사회변화 가능성에 대한 무력감 주의
•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 주지 않기 •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방안 생각 • 개인·사회의 역할을 함께 고민
④ 다른 나라의 문제로 취급하는 태도 주의
• 세계 상호연계성·상호의존성 이해, 나와 내 사회와의 연계성 교육
⑤ 쉬운 참여로서의 모금 활동 참여 주의
• 돈으로 해결하려는 태도에서 학생들에게 우월감을 느끼게 할 수 있어 모금이 주요 참여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됨 • 비판적 사고, 자기 성찰적 접근 필요
띠용~
이게 뭐냐 ㅋㅋㅋㅋㅋㅋㅋ
누가 만든 것일까... 외국 여행을 가도 수없이 많은 문화 다향성을 겪으며 세상 우리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세계 시민이라니..
우리나라 안에서도 이게 안 되는데 세계 시민이라니.. ㄷㄷㄷ (그렇다, 지구촌 가족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내뱉을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방안을 생각하라' - 근본적인 원인은 다시 태어나는 것..??
지금 나 너무 비관적이니 ㅋㅋㅋㅋㅋ
사실 코이카에 파견되고 나서부터 계속하고 있는 생각이 있다.
한국은 어떻게 이렇게 발전을 할 수가 있었을까?
-> '사람이 미래다' 이것이 답. 근데 그 사람을 어떻게 한 거지?
다른 문화 속에 비집고 들어가 부딪치면서 내가 가진 것들로 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반대로 내가 속했던 그 세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좀 더 정확히 들어가면 선진국이나 개도국을 막론하고 사회의 속도를 보면 한국의 시스템이나 속도는 세계 최고다. 이것은 선진국/개도국으로 비교할 문제는 아니다. (선진국도 엄청 느리다)
과연 한국인의 근면, 성실 등등의 이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처음에는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었다. 근데 유교는 중국에서 시작했는걸?
....중국.... 누구 말대로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지금의 중국이 되어버린 걸꺼야.... 원래는 안 그랬겠지??
뭔가가 있을 것 같긴 한데 그게 뭔지를 아직 모르겠다.
잘못 가다가는 민족주의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알아내서 여기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얼마 전에 몽골대사와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물어보려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냥 넣어둬야 했다ㅠㅠ
이 답은 계속해서 내가 찾아가는 걸로-
며칠 전에도 한 몽골 언니가 '한국사람들이 어떤 교육을 받았길래 그렇게 발전을 할 수 있었냐'라고 물었다.
그때도 나는 답을 알 수 없어서 그저 웃으며 '글쎄요.. 타고나는 건가? 허허'하며 얼버무렸다.
사실 타고나는 거라는 대답도 이상하다.
+++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하고 여러가지 상황들을 보면서 뒤늦게서야 얼추 답을 찾았다.
바로 지정학적 요건, 자연환경 등이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다고 보는 의견이다.
대한민국은 온화한 날씨와 비옥한 토양, 삼면이 반도로 둘러쌓여 있어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뭐든 노력하고 땀을 흘리면 산물을 얻을 수 있었고, 이런 경험이 문화와 사회 속에 쌓이고 오랜 시간동안 습득되어 근면, 성실, 교육에 대한 열정 등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지금의 발전된 한국의 모습은 태초의 좋은 환경과 앞선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져 이뤄낼 수 있었다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따라서 나의 어떤 노력이 아니라 태초부터 좋은 환경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받은 것들에 감사하고 우리가 운이 좋게 갖게 된 것들을 함께 나누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그리고 그 나눔의 일은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분야를 통해서 좀 더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 같다.
이미 2년의 봉사단원 임기를 다 마치고 나서야 이걸 알았다. 하하하 (나중에 추가한 글)
아무튼.. 세계시민이라..
이렇게 한번 읽고서, 이해하면 되는 문제라면 진짜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올 텐데-
혼자 힘들어하다가 현지 친구 집에서 밥도 먹고 사람들도 만나며 조금은 날카로워졌던 마음이 무뎌졌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지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로 내 마음을 가득 채웠던 저 질문들에 답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아직 1년이나 남은 지금... 언제 또 이런 위기(?)가 올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누가 약속을 안 지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도,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넘어가는 스킬이 좀 늘어난 것 같다(신기하게도 이제는 화가 나지 않는다).
이렇게 나의 1년 기념 슬럼프가 지나갔다. 아니, 지나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