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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주어디가 May 18. 2020

"인생이 개똥이에요.  내 신발보다 더러워요"

영화 [가버나움, Capharnaum] 2018



레바논 빈민가에서 무능력한 부모와 여러 명의 동생들과 함께 살고 있는 주인공 '자인'

영화는 법정에서 재판이 벌어지는 모습과, 자인이 그동안 살아온 모습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줄거리 : 위키백과]

 자인은 셀림과 수아드의 아들로 가짜 처방전으로 구한 약을 빻고 갈아서 만든 주스를 길거리에 나가 팔면서 겨우 연명한다. 교육은커녕 기본적인 의식주 환경 조차 보장받지 못한 가정에서 학대를 받고, 그저 가짜 처방전으로 약을 받아오는 셔틀 취급을 받으며 살다가 아끼는 여동생 사하르가 강제 조혼으로 아사드의 아내로 팔려나가자 분개하며 가출을 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먹고사는 법을 스스로 배워야 했던 것 때문인지 어린 나이치고 최고의 생존력을 자랑하는데, 작중 모습을 보면 거의 사실상 무능한 아버지 밑에서 소년가장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약 탄 주스 장사가 끝나면 아사드 가게에 가서 일을 하고, 중간중간 가게에서 물건을 슬쩍해오는 식으로 돈을 벌고, 책임감은 눈곱만큼도 없는 막장 부모 대신 동생들을 챙기고 있다. 못 먹어서 나이에 비해 몸도 작고 말랐지만, 어른들과 욕을 하거나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신분증을 가지러 집으로 왔다가 사하르가 너무 어린 나이의 임신으로 인해 죽었음을 알게 되자 격노해 그 자리에서 칼을 들고 달려 나가 아사드를 찌른다. 그리고 소년 감옥에 가지만, 전화 연결로 이루어진 라디오 방송 인터뷰로 부모를 고발한다. 이후 억울한 사연을 법정에 다 풀어놓으며 더는 나같이 학대당하는 아이가 없게 함과 동시에 부모가 아이를 못 낳게 해달라고 한다. 곧 태어날 저 아이도 나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거라고......... 그 후 승소한 후에 주민등록증으로 쓸 사진을 최후반부에 찍는다. 이때 자인이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겨우 10살이 조금 넘은 아이의 눈빛에는 꿈과 희망이 아닌 삶의 비루함, 비참함, 절망이 담겨있다.

자인은 영화 속에서 대부분 무미건조한 표정과 적대적인 눈빛을 띄고 있다. 한 번도 웃지 않고(맨 마지막에 한번 웃는다), 몇 번 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에도 펑펑 울지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


영화를 보면서 부모들의 소름 끼치는 무기력함- 집세를 위해 11살인 딸을 팔아버리고 의지도, 능력도 없으면서 계속해서 아이를 가지며, 이를 신이 주셨다고 말하는 무책임함에 숨이 턱턱 막혔다. 특히나 법정에서 자신들을 변호하며 눈물을 짜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저들도 헤어 나올 수 없는, 빈곤층에 갇혀버린 피해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인간의 무지와 이기심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리고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도 함께 떠올랐다.


그 무엇보다, 나는 저 작은 소년이 보여주는 존엄함, 온기에 마음이 절절해졌다.

시궁창 속에 살면서도 무기력하게 순응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 하고, 인류애를 저버리지 않는 모습. 저 상황이면 '이번 생은 망했다'며 다 내려놓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아니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매 순간 순간 마주하는 현실에 인간성을 지키내며 사는 삶이 참 존귀하다고 생각했다.  


(+ 이렇게 소중한 누군가의 인생이 영화 속에서 나의 감정을 건드리는 목적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저마다의 꽃을 피워낼 수 있도록 우리는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요즘 여러 채널을 통해 난민에 대한 이슈가 조금씩 시야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본 영화는 레바논에서 실제 난민들을 캐스팅해서 촬영되었다. 주인공인 자인과 조연인 메이소운을 연기한 배우 등은 모두 시리아 난민이며 요나스의 경우, 케냐 난민과 나이지리아 난민 부부의 딸이 분했다. 촬영 도중에 배우들이 체포되어 추방될 위기에 놓이기도 하였으나 프로듀서의 개입으로 석방되어 추방 전에 영화를 끝마칠 수 있었다. 배우들이 연기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사를 외워서 한 것이 아니라 상황을 주고 그에 어울리는 대사를 알아서 하게 했다. 최종 촬영분량은 520시간에 달했다.  
    촬영 후 자인 알 라피아 일가는 노르웨이 망명이 허용되어 2018년 8월, 노르웨이에 정착했다. 칸 영화제에 자인 알 라피아를 비롯한 등장 배우들 대부분이 초청되었으나 이들 대다수가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출생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아 참석이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되었는데 영화제 1주일 전에 신분증이 발급되면서 기적적으로 영화제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영화의 제작진은 영화에 출연했던 난민들에 대해 현재까지도 지원을 하고 있다.  



요즘은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는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삶의 열망, 인간의 존엄 등 내 일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들.

역설하면 지금 내 삶이 무미건조하고 별 의미 없이 지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목표를 위한 열심도 도전도 없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눈이 반짝이게 재미있고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항상 '나놈ㅅㄲ는 언제 철들래, 마인드가 노답이다'는 결론에 이른다.



5월과 6월에 걸쳐 서울극장에서 '은하계 여행안내'라는 이름으로 명작 기획전을 연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추천받았던 영화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번 기회에 조금 부지런하게 문화생활을 즐겨보려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감상을 브런치에 하나씩 남겨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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