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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수 Dec 02. 2021

무모함의 원동력, 블록체인

'디지털 마을 만들기', '창업'에 대한 성찰과 한 가지 사유.


무모함에 대하여


  모든 인간은 '무모함'을 추구하고, '무모함'에 대한 의미를 각자만의 방식으로 부여하면서 살아가는 그 과정자체를 '인생'이라고 부르는게 아닐까? 지난 4~5년간, 내 인생에는 무모함이 신중함보다 앞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무모함은 나의 신중함 그 자체이다. 이게 무슨 말장난 같은 소리일까? '무모함'과 '신중함'은 양립한다. '양립한다'는 것은 '두 가지가 동시에 따로 성립하거나, 둘이 서로 굽힘 없이 맞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무모함과 신중함은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무모한 사람이 아니라 신중한 사람이라는 것일까? 답은 아니다. 나는 나 스스로 신중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무모함과 신중함은 양립하며 분명한 차이가 있는 개념이지만 상호공존하며 때로는 같은 의미로 생각 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적어도 누군가가 '임혜수'라는 한 사람의 창업인생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는 노력을 하게 된다면, '말이 안되는 것이 이렇게 말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공감해주는 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마을 만들기(Organizing Digital Neighborhood)'의 탄생과 '블록체인'과의 첫 만남


 5년제 건축학학위(B.Arch)수여 직전 학기에 돌발적으로 '해석학'이라는 수학과 수업을 무모하게 수강하였다. 'F학점을 받고 졸업을 못해도 어쩌면 그게 더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왜냐하면 내가 당장 하고싶어 하는 일은 취업준비를 하여 건축관련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도서관에 매일 출근하여 신문을 보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일을 파악하고, 주식시장을 살피고, 도서관 각 층에 위치한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예술로 구분된 책장 사이사이를 산책하듯 걸어다니다가 손에 잡히는 책을 읽는 일이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는 5층에 위치한 컴퓨터과학도서 바로 옆 코너를 어슬렁 거리며  '집합론', '정수론', '미적분학' 도서를 집어서 책상에 펴 놓고 이해를 잘 못하더라도 그냥 보는 것이었는데, 그러면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고는 '해석학' 교수님의 첫 강의로 부터 받은 영감을 더하여 건축역사와 이론을 연구하는 교수님과 하이테크 건축을 연구하는, 두 건축학과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서 '디지털 마을 만들기(Organizing Digital Neighborhood)' 연구주제를 만들었다.


 연구주제는 만들었으나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창업학'수업에 참여하면서 창업을 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정한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학교를 빠져나와야 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 판단의 중심에는 '고벤처포럼(Goventure Forum)'에서 매 달 다양한 창업생태계 관계자들을 만나고, 운영진으로서 활동을 하면서 창업자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졸업 2달 후 2017년 4월, 나의 운명이 바뀐 사건이 일어난다. 런던의 금융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을 하던 이탈리아 개발자와 함께 참여한 고벤처포럼에서 중요한 정보 하나를 전달받았다. Besuccess 정현욱 대표님의 정보전달 영상으로 기억한다. 기존의 VC시장의 자금을 압도하는 자금조달시장이 블록체인 스타트업의 ICO라는 형태가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 날 내가 함께 어울리던 개발자는 단지 나에게 Java와 Javascript를 구분하여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닌, 한국에 온 이유가 Cryptocurrency개발을 위해 왔다는 사실과 Cryptocurrency가 무엇인지 설명해줄 수 있는 최초의 지인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비트코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어느 카페에서 듣고 난 후, 수 개 월간 나와 공동창업을 결심한 친구와 함께 이더리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는 우선 투자를 해 보는 것을 원했다. 나도 동의는 했지만 돈의 문제라면 신중해야 했다. 그 신중함은 주식을 고를 때 재무재표상에서 ROE를 보고나서 결정을 했던 것처럼 이더리움과 관련된 그 어떤 지표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더리움의 로드맵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로드맵의 중간 업데이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등 내가 정말 무모하게 세계여행을 했던 와중에 만난 도시의 이름을 블록체인과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흥분감을 멈출수가 없었다. 그러한 도시 이름을 소프트웨어 개발에 접목하여 가상에서 새로운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 내는 듯한 철학적, 미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추상화된 개념에 대한 인상에 강하게 매료되었다. 나는 그 과정과 결말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충동과 함께 내가 만들 스타트업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무모한 투자라도 단행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 나는 그 때 한 층 더 과감하게 무모하기로 결심했다.



신중했으면 탄생하지 않았을 첫 사업계획서


 나의 창업인생을 넓게 보았을 때 무모함이 하늘을 찌르던 때는 대학교 4학년 시기였다. 모두가 준비하는 취업준비와 좋은 학점받기를 포기하고, 서울에 멋들어지게 구현 할 수 있는 건축과 도시에 대해서 고민하는 참이었다. 그러고는 무모한 시도를 몇 가지를 했다.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젝트의 주제를 고르는 와중에 세운상가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통해서 공중도시, 입체도시와 같은 개념들을 한국적인 방식으로 정의하고, 영국의 아방가르드적 건축에 대한 이론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한 이상주의 건축을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에 대한 대안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울시청과 SK 사옥 등이 위치한 중구 다동의 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법규검토, 제도, 현실적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지금에서 다시 생각해 보아도 참으로 당돌한 생각이었다. 무모해서 가능했다. 종로 상업지역 한 가운데 건폐율과 용적률, 평당 단가, 주변 임대료 시세등을 고려하고 실제로 법규검토를 하고 가장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의 부동산개발자를 정의하고 가장 이상적인 공공적 성격의 건축디자이너 관점에서 공중도시 개념을 구현하려고 했으니..


  프로젝트 이후의 나의 결론은 하드웨어 중심의 건축과 디자인에 대한 환멸이 생겼고, 미래의 건축은 지금의 건축 방식을 압도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이 생겼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내가 건축공부를 시작했던 많은 이유 중 하나인 직접 땅을 구해서 내가 살집을 멋들어지게 짓고 사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이 사회는 정상적으로 노동을 하면서 사는 청년에게 그것은 쉽게 용납하고 있지 않았고, 비단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청년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많은 분노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단순한 건축행위를 하는 그 자체는 미래가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소프트웨어적 건축에 대한 고민을 통해 나를 포함한 당장의 많은 청년들의 주거문제를 해결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에 빠르게 상응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디지털 마을 만들기(Organizing Digital Neighborhood)'논문에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와 해결점으로 대학생 전세임대 대출과 관련하여 주거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내용을 사업계획서와 함께 넣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분노가 담긴 창업인생의 공식적 첫 사업계획서가 되었다.



 그래도 신중해야 진정성이 유지되지 않을까


 블록체인이 많은 이들의 화두에 오르기 전, 창업멤버를 구하기 위해 다양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무작정 만나보는 과정이 있었다. 대부분 블록체인에 대해서 공감하기 힘들어 했고 블록체인이 다른 기술보다 더 나은 가치를 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은 미성숙한 기능위주의 부정적 접근과 암호화폐에 대한 투기적 성격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기인한 답변이 우세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68혁명이 현대건축의 시발점이라고 가르침을 준 지도교수님의 신중함을 떠올려 보면서, 그들과 진정성있게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이 생각은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가 사이퍼펑크(Cypherpunk)들과 함께 정부의 추적을 피할 수 있는 특정 인터넷 공간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논의하는 과정과 약간은 맞닿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이 조심스런 생각이 '신중함' 이라면, 그 신중함 덕분에 쌓아 올린 몇몇 인연은 무모한 관계가 아닌 '신중한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속해 있는 '비트코인 연구회' 멤버들과의 관계를 '신중한 관계'라고 정의하고 싶다. '비트코인 프로그래밍 스터디'에서 시작해 비트코인 구현체들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펴보는것부터 시작해서 '사토시의 서'를 함께 읽고 토론하며 비트코인 탄생의 과정에서 실제 사이퍼펑크(Cypherpunk)등과의 논의된 글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적어도 약 7개월간 매 달 2,4주차 월요일 저녁 3~4시간씩 논의한 그 시간 자체는 '무모함' 보다는 '신중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까?



그래서, 목적은 무엇인가 ?


 참으로 무모했기 때문에 연구주제를 정하고 블록체인을 알고 누군가를 만나면서 공부하며 무엇인가 이뤄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발산하였다. 그렇지만 아직도 누군가가 나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면 솔직한 감정으로는 두려움이 앞선다. '디지털 마을 만들기(Organizing Digital Neighborhood)' 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창업을 통해 어떤 목적을 이루고 싶은 것인가? 적어도 이 두 가지 질문은 내 인생에서 가장 무모하면서 가장 신중한 중요한 질문이지만,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애써 변명하거나 말이 되는 것처럼 이야기 했던 적도 많았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던 경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상상을 해 볼 수 있다는 영감을 어느 날 갑작스럽게 얻게 되었다. 블록체인과 건축과 도시가 아닌 다른 무엇에 깊이있는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블록체인'의 철학적 깊이를 공감하는 사람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건축과 도시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그리면서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내가 당장 있어야 할 곳은 그 곳이 아닐까? 그러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 즉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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