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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인테리어 공사 5

그 참견

by 지야

오전 아홉시 반 출근.

아이를 등원시키고 곧장 교습소를 향한다.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동네의 끝에서 끝으로 가야하는 길이라 15분쯤 운전을 해야한다. 공용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이층 계단을 오르면 칠판색 시트지로 마감한 유리문이 보인다. 나의 일터다.



나무 블라인더를 걷고 창문을 연다. 밤사이 갇혀 있던 쎄한 공기가 열린 문들을 통해서 가을 공기로 바뀐다. 먼지포를 꺼내 창틀을 닦고, 책상 위 지우개 가루도 떨어낸다. 흰색 책장과 싱크대는 먼지가 잘 보이지 않아서 충분히 만족스럽다. 바닥에 떨어진 먼지들을 쓸어낸다. 어두운 콘크리트 색의 바닥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전날 수업한 흔적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우개 가루도 굴러 다니고 기다란 머리카락들도 뭉쳐서 굴러 다니지만 온 신경을 집중해야 볼 수 있다. 조금 밝은 색으로 할 걸 그랬나.


신랑이 공을 들이고 또 들인 벽은 페인트 칠과 조명으로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먼지를 뒤집어쓴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마감이 깨끗하게 잘되었다고 혼자 뿌듯해했던 벽엔 칠판이 자리했다. 그 노력의 결과를 볼 수 없다. 샌딩기를 들고 땀에 범벅이 된 신랑에게 내가 했던 말.


“아무도 그런데 신경 안 써. 너만 알아.”


딱 그 말 그대로 됐다. 수업을 받는 학생들도 상담을 오는 부모님들도 금색으로 번쩍번쩍한 세면대 수전이나, 알록달록 책이 꽂힌 전면 책장으로 눈이 향하지 벽이나 천장을 보진 않는다. 본다고 한들 내게 ‘선생님, 벽이 울퉁불퉁해요.’라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점심 사 줘.”


어느 날 신랑은 이 말과 함께 쳐들어왔다. 그 말은 경계를 했어야 했다. 근처에서 밥을 먹고 교습소로 올라와 본인이 만들어 놓은 공간을 하나하나 살핀다. 내가 잘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 감시 아닌 감시를 한다.


“문에서 왜 소리가 나?”

“몰라. 처음부터 났는데?”


그러면서 출입문을 살핀다. 힌지를 맞추고 소리가 나는지 확인하고, 또 맞추고 또 확인하고 소리가 나지 않을 때까지 같은 동작을 열 번 넘게 반복했다. 슬 짜증이 쌓이기 시작한다.


“야 야 여기 커피 얼룩. 좀 닦아라.”


내가 쓰는 책상 위에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겠는 희미한 얼룩을 발견하고는 물티슈를 꺼내 닦는다. 매의 시선으로 잔소리거리를 찾아낸다. 무심코 돌린 시선에 바닥에 콕 찍힌 마카자국이 보였는가 보다.


“이건 언제 그랬데?”

“아 몰라. 칠판 쓰다가 떨어뜨렸나 보지.”


내 말에 짜증이 섞인 걸 눈치챘는지 머쓱해져서는 바닥을 닦는다.


“안 지워지잖아!”

“보이지도 않는데 안 지워지는 게 뭐?”


가시 돋친 말에 신랑은 공격할 거리를 찾다. 싱크대 옆에 미처 막지 못한 공간이 삐죽 보인다. 내가 해결하겠다고 큰소리 쳐 놓은 공간이었다.


“저건 언제 막을 건데?”


내 눈꼬리가 틀림없이 삐죽 올라갔을 거다. 입 다물라는 표시로 알아들은 신랑, 입은 다물었다. 그러고도 괜히 서랍문을 열어보고 싱크대 문도 열어본다. 벽에 걸리지 못한 시계가 싱크대 속에 들어 있다. 시계의 전선이 보이는 게 싫다며 본인이 걸어 주겠다 한 지 이주가 넘었다. 내가 지을 수 있는 최고로 삐딱한 미소를 날린다.


“네가 시계 달아주면. 어차피 시계 달려면 또 뜯어야 하잖아.”


내 썩소에 입을 딱 다문 신랑은 황급히 자리를 뜬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었다. 신랑이 나간 자리에 내가 주문하지 않은 택배상자가 도착했다.


“야, 이거 뭔데?”

“녹 제거제. 출입문 문틀 녹슬었더라 닦아놔.”


아 진짜 저 썩을 놈. 나가는 뒤통수에다 대고 욕을 해주고 싶었지만, 참는다. 어쨌든 국어선생이지 않는가. 사람들 듣는 데서 욕을 할 순 없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집에 가서 보자.’ 할 뿐.



시어미보다 더한 잔소리를 하는 신랑을 남기고 환상일지 환장일지 알 수 없는 인테리어 공사가 끝났다. 나는 매일 그곳으로 출근을 한다. 작지만 올망졸망 내게 필요한 것들이 다 있는 공간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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