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찬바람이 분다. 누군가에겐 추워서 싫은 겨울이지만, 나에겐 행복한 계절이다. 찬바람과 함께 그들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붕어와 그 친구들. 물론 붕어빵이야기다. 지금은 대부분 잉어빵으로 바뀌었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붕어빵이 있었다. 몸통이 두툼하고 머리 끝에서 꼬리 끝까지 팥이 잔뜩 들어가 있던 붕어빵이 얄프리하고 바삭한 잉어빵으로 바뀐 것은 솔직히 서운하다. 하지만 슈크림 잉어빵이 등장했으니 서운한 마음을 조금 달랠 수 있다.
우리집은 산중턱쯤 되는 오르막 끝에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려면 적어도 세번의 오르막을 지나야했다. 그 오르막 가운데쯤 오래된 여고가 있었다. 그렇다. 여고이다. 주변에는 온갖 군것질거리들로 가득했다. 떡볶이, 튀김, 어묵은 어느 계절이나 기본이었다. 여름에는 슬러시, 곧 부서질 것 같은 콘에 동그랗게 떠서 파는 아이스크림이 나와있었고, 겨울에는 붕어빵, 국화빵, 바나나빵, 계란빵 각종 빵들이 즐비했다. 언니들 학교 드나드는 시간에 등장하는 바나나빵, 계란빵 수레를 제외하고는 오전 느즈막히 장사준비를 하는 가게들이었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길목마다 맛있는 냄새가 번졌다.
집으로 올라가는 오르막은 초등학생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조금 힘든 길이었다. 오르막도 경사졌지만 모퉁이 돌때마다 바뀌는 맛있는 냄새의 유혹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먹는 걸 사랑하는 사람이라 여름에는 여고 앞 슈퍼마켓에서 쭈쭈바 하나를 물었고, 겨울이면 그 길 건너에 있는 허술한 가게에서 붕어빵을 물었다. 붕어빵 가게 정면에 국화빵 수레가 있었는데 둘 중 무엇을 먹을 지 항상 고민했다. 그 고민은 걸음 짧은 아이가 집으로 가는 험난한 길을 기다리게 하던 신남이었다.
붕어빵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넋을 놓게 된다. 동일한 동작이 군더더기 없이 유연하게 이루어진다. 한 쪽 귀퉁이가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팔을 맡기면 주전자가 저절로 팔을 움직여 반죽을 따른다. 갈고리처럼 생긴 막대로 팥소를 떠 반죽이 부어진 틀 속에 떼 놓을 때는 막대에 저울이라도 달렸나 눈을 부릅뜨고 본다. 다시 반죽이 부어지고 손 앞 틀의 뚜껑을 닫으면서 손 먼 쪽의 틀을 뒤집는다. 뚜껑이 닫히는 철컹 소리와 틀이 뒤집어지는 철렁 소리가 툭탁툭탁 노래를 만들었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트로트 소리에 박자를 맞추기도 한다. 주인 아줌마 먼 쪽의 붕어빵들이 가까워지면 틀의 뚜껑이 열린다. 한 김 지나고 나면 갈색으로 노릇한 붕어빵들이 자태를 드러낸다. 뚜껑이 열린 순서대로 갈고리 같은 그 막대에 걸려 줄줄 딸려온다. 강태공도 이런 강태공이 없다. 식힘망 위에 하나씩 자리를 잡으면 살짝 식어 지느러미 끄트머리가 바삭해진 앞 번 아이들이 약봉지 같은 종이봉투 속으로 들어간다.
뜨거울 때 한마리 더 먹어라.
하며 막 꺼넨 것을 한 마리 더 건네 주시면 이미 흡족한 마음이 얼굴의 웃음으로 번진다. 막 꺼넨 붕어빵은 머리부터, 꼬리부터가 아니다. 일단 반으로 갈라야 한다. 머리나 꼬리부터 입에 넣었다간 틀림없이 용암같이 뜨거운 팥소에 입천장이 홀라당 다 까지고 만다. 허리 춤에서 반으로 갈라 풀풀 올라오는 김에 찬바람을 좀 쐬어줘야 내일 또 먹을 입천장을 보호할 수 있다. 오른손에 꼬리를 왼손에 머리를 쥐고 찬바람이 먹기 적당하게 식혀 줄 때까지 앞니로 갉작갉작 지그러미의 얇은 부분을 먹는다. 그제야 종이 봉투를 벌려 쥐고 집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기운 빠진 붕어를 먹고 싶지 않으면 봉투 입구를 앙다물어 눅눅해지는 일을 막아야한다. 이미 끄트머리가 바삭할 만큼 식은 붕어빵이라도 말이다.
4마리 천원. 그 가게에서 마지막으로 사먹은 붕어빵의 시세다. 산에서 내려오는 개천을 따라 꼬불꼬불 했던 시멘트 오르막길은 이제 쭉뻗은 4차선 복개천 도로로 변했다. 우리 아파트 사람들만 지나다니던 자동차 한 대 겨우 지나가던 허술한 콘크리트 다리도 판판하게 펴진 아스팔트 도로 속으로 숨었다. 떡볶이와 튀김을 팔던 가게는 카페로 변했고, 쭈쭈바를 사먹던 슈퍼마켓은 명색만 유지하고 있다. 길 건너의 허술했던 가게도 그 앞의 더 허술한 수레도 모두 어디론가 가버렸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가슴 속에 삼천원 쯤은 품고 다녀야 한다던가? 만나기도 힘든 잉어빵 수레이지만, 만나도 삼천원으로는 잉어 세마리와 동전 몇 개가 손에 쥐어질 뿐이다. 머리부터 먹을지 꼬리부터 먹을지 보다는 팥을 먹을지 슈크림을 먹을지 더 고민한다. 동전 지갑속에 천원짜리 지폐를 세어보고 두장을 더 추가한다. 그래도 다섯마리는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