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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형일 Feb 13. 2022

호호호,  훌훌,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22.02.13. 다섯번째 감각

윤가은 (2022.2.5). 호호호: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 마음산책

타이틀에서 확 끌린 에세이. <호호호,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 

“뭔가를 좋아하는 경험은 늘 귀하고 특별하다”

윤가은 감독을 “위로하고 웃게 했던” 특별한 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란다. “우리 같이 무엇이든 마음껏 좋아해봐요!”라고 작가가 옆에서 속삭이는 듯한 느낌일 것 같고, 어느 울적한 날, 나를 웃게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날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고, 구르고, 소리치는 소녀들」 편 : 영화 〈브링 잇 온〉을 기억에서 소환한다. “뛰고, 구르고, 소리치는 보통의 여자애들을 이렇게나 멋지게 그려낸 작품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많지 않았다”며 이 영화를 “10여 년이나 모른 척하고 살아왔”다고 후회한다. 

「수집엔 취미도 소질도 없지만」 : 고전 문구, 완구를 수집하기 위해 오래된 문방구를 찾아다니던 일화, 1960~8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길창덕, 윤승운, 신문수, 박수동, 신영식 화백의 명랑만화들을 향한 애정이 담겨있단다.  

「그런 취향 Part1」 「그런 취향 Part2」 등 : 막장드라마를 포함해 저자가 특별히 좋아했던 영화, 드라마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노래방을 좋아하고 별자리 운세에 위로받으며, 조카 바보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야기들, 진로 때문에 방황하다가 산티아고 순롓길을 걸은 에피소드 등 개인사가 펼쳐진단다. 


“내겐 그보다 흥미진진하고 짜릿한 유흥이 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어떤 사정으로 만나고 헤어지는지를 지켜볼 뿐인 데도 손에서 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참 신기한 드라마였다. 결혼과 이혼, 양육과 부양 같은 지난한 일상사 안에 온갖 기대와 예상을 뛰어넘는 별별 종류의 사건사고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어떤 인간도 단순하지 않았고, 어떤 관계도 간단하지 않았다. 늘 뭔가가 더 있었다. 애정 뒤엔 희생이, 희생 뒤엔 배신이, 배신 뒤엔 복수가, 복수 뒤엔 전쟁이 이어졌다. 그리고 전쟁 뒤엔……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허공에의 외침만 남았다. 아, 인생 대체 뭘까.” (p. 50)
“지금 생각해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유년을 새롭게 경험하는 느낌도 든다. 모든 게 지금보다는 천천히 흘러가고, 조금은 더 다정하게 느껴졌던 그때가 되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물론 그 시절을 다 지나와 비로소 안전한 자리에 이르러 추억하게 된 입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실제 그 시절을 무사히 살아내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으니깐.” (pp. 102~103) 


김승섭 (2022, 02, 10).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난다. 

이 시대의 아픈 공간을 보건의학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보건의학자 김승섭 교수의 신작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 등 김승섭 교수의 이야기에 너무도 큰 자극을 받은 독자로서 반가운 신작되겠다. 반가움의 결에 여러가지가 있는데, 이 반가움은 앞서 소개한 “호호호”와는 반대 편에 서 있다. 아픔에 대한 즉시. 이 책은 ‘트라우마 생존자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천안함 생존장병의 ‘이야기’를 필두로 세월호 생존학생 이야기를 동시에 하고 있는, 아주 어려우면서도 몹시 힘든 책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된다는 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여러 사례의 연구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들려주는 천안함 생존장병의 이야기들은 천안함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과 진영논리에 휩싸여 정작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야 했던 재난 생존자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나와 너는 다른 사람이라고 선을 긋고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을 목표로 둔다. 

“여기 동료를 잃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고민을 나눌 출발점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 천안함 사건은 폭침 당일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그 이후 천안함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가 되어야 합니다(김승섭 교수).”  

천안함 사건에서 출발한 작가의 고민과 당부는 소방공무원, 세월호 생존 학생, 성소수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들과 교차하며 쉽게 답할 수 없지만 “포기하기엔 너무도 절실한 질문”을 만나게 해준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고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한국 사회가 어떠한 곳이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그들의 눈을 빌려 바라보는 일이 되지 않을까? 

책속으로 들어가 몇 문장을 갈무리해보면..

‘이야기’할 수 있다면, 슬픔은 견뎌질 수 있습니다. .. 트라우마 생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답해주고 그 고통을 비하하는 사람들에 맞서 함께 싸워주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생존자의 몸속에서 고통의 에너지로 머물던 사건은 언어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세월호 생존학생 연구와 천안함 생존장병 연구를 진행했던 제가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미약하게나마 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데 기여하고자 쓴 글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예민한 사건이자, 여전히 진보와 보수 진영에서 각기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사건을 두고서 책을 쓴다는 일이 실은 두려웠습니다. 글을 읽기도 전에 “너는 어느 편이냐”라고 물을 것이 분명한 한국 사회에서 두 사건 모두에서 동료를 잃은 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고, 그 생존자들의 트라우마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가 어떤 태도로 과거를 살아왔는지 더 잘 알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 과연 받아들여질지 걱정스러웠습니다.
저는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이 더욱 첨예해지기를 바랍니다. 다만 그 대립이 정치적 선동으로 인한 공허한 충돌이 아니라,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현실에 뿌리박은 갈등이기를 바랍니다. 그런 갈등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런 진통을 겪지 않고 생겨나는 대안은 현실에서 힘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꿈속에서) 배에 있는 통로를 걸어가는데 그게 있었어. 종이가방에 옷걸이가 되게 많이 엉켜 있었어. 저거 꺼내야겠다. 하나 들었는데 이름표가 달려 있어. 근데 몇 개가 엉켜서 안 나와. 그러다 깼어. 꺼낸 애들은 살아 있는 애들이고 엉켜 있는 애들이 죽은 애들이었어. 거기서 되게 많이, 거기서 되게 울었다. 꺼내야 했는데. 그런 꿈이다. (생존장병 C)
무슨 놀이 같은 거를 한대요. 무슨 마술 그런 공연도 있다 그러고, 또 뭐였지, 무슨 만화 그리기? 그런, 그런 걸 또 일정을 짜서 상담이 끝나면 그런 걸 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 저희는 상담하는 것도 벅찬데 또 그런 걸 하라는, 하라니까 짜증이 나고, 화도 나고, (……) 저는 친구들하고 억지로 했던 거 같아요. 끌려다니면서…… 근데 너무 스트레스 받아가지고, 그것 때문에. (……) 쉬고 싶은데 왜 계속 그런 걸 타임마다 짜서 올라가게 해가지고, 막 간호사가 들어와서 이거 올라가라고 이거 뭐한다고 그러고, 억지로 가, 활동을 하게 만드는 거예요. (생존학생 4)
세월호와 천안함을 적대적인 관계, 반대의 관계, 이렇게 몰고가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저는 본질은 같다고 생각해요. 해상사고가 일어났고, 정부의 대처가 잘못됐기 때문에 그런 논란들이 많아진 거고. 왜 천안함과 세월호 비교하면서 적대시해야 하고, 유가족들을 서로서로 적대시하게 만드는지. (생존장병 E)
서거차도 가서, 갔는데 뭐지? 기자 같은 사람들? 막 있는 거예요. 거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이 물에 잠긴 거 보고 왔는데, 막 기자들이 정신없이 저희들 찍고 있으니까 되게 당황스럽고 저희는 다 젖고 막 꼴도 말이 아닌데. 얘네들이 대체 언제 와서 저러고 있는지, 막 친구들끼리 얼굴 가리려고 뭉쳐 있었는데, 마을 주민, 아주머니가 담요 들고 오시더니 저희를 덮어주시는 거예요. (생존학생 11)


문경민 (2022.02.07). 훌훌. 문학동네.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며 독립을 꿈꾸던 열여덟 살 유리가 주변 사람들과 연결되어 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한다. 주인공 유리의 한 계절을 함께하면서 떠올리게 되는 하나의 단어. 

“사이”. 

식탁에 마주 앉아 스팸을 같이 먹는 사이. 추운 날 아침에 옷을 충분히 따뜻하게 입었는지 확인하는 사이. 내가 처음으로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던 상대방의 표정을 기억하는 사이. 마음의 한 토막을 기꺼이 내어 주게 되는 사이. 

소설은 고등학교 2학년인 열여덟 서유리의 무표정으로 시작된다. 유리는 어려서 입양됐고 버림받았다. 자신을 버린 엄마의 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낳아준 부모는 누구인지, 왜 입양되고 버림받았는지 모른다. 할아버지는 체크카드에 생활비를 입금해줄 뿐, 한 집에 살면서도 말 한 번 제대로 섞지 않는다. 유리에겐 확고한 계획이 있다. 대학 입학만 하면 이 너절한 집과 과거를 떠나 오롯이 혼자 살아갈 것이라는 계획.  삶은 제법 평온하다. 평온한 삶 위에 ‘엄마 서정희씨’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장례가 끝나고 연우가 왔다.” 

엄마 정희씨가 재혼해 남긴 열 살 아들 연우는 당분간 할아버지와 유리의 집에 머물게 됐다. 할아버지는 여행을 간다며 자꾸만 며칠씩 집을 비운다. 병색이 보여 어디 아프냐 물어도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연우를 돌보는 일은 자연히 누나 유리의 몫이 된다. 유리는 연우가 정희씨로부터 심한 폭력과 학대를 당했음을 알게 된다. 연우에게 순한 피해자의 얼굴만 있는 건 아니다. 학교에서 연우는 욕을 잘했고 친구와 다툼이 잦았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거짓말도 잘했다. 숙제는 하는 일이 없고 어딜 가나 말썽만 일으키는 아이였다. 그 때문에 유리의 생활은 “지진이 난 것”처럼 혼란하고, 또 곤란해졌다. “나 하나 살기도 바쁜데…’

유리는 ‘모름’에 기반한 관계에 익숙했다. 특히 할아버지와 그랬다. 서로의 삶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규칙이 두 사람 사이에 놓여있다. 유리는 단짝 친구인 미희와 주봉에게도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미희네 가족에 불화가 감지되는 사건이 발생하지만 유리는 더 캐묻지 않는다. 대신 “관계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없던 일처럼 넘어가게” 되는 것을 바랐다. 누군가를 더 알게 되는 일은, 유리에겐 너무 버거운 일이다.

평온을 어지럽힌 건 연우다. 유리는 엄마를 잃은 연우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본다. 유리는 연우를 보며 “결국은 나처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모른 체하기에는 자신과 너무 닮은, 약하고 어린 연우의 삶에 유리는 점점 개입의 여지를 넓혀간다. 젓가락과 숟가락을 제대로 쥐는 법을 알려준다. 책가방에 교과서와 물통은 잘 챙겼는지 물어본다. 급기야 직접 가방을 뒤져 알림장을 확인한다. 유리는 점점 연우가 궁금해진다. 누군가를 궁금해하는 일이 조금씩 익숙해진다. 나쁜 소문에 시달리는 담임 고향숙 선생님, 입양 사실이 알려져 놀림받는 같은 반 세윤이, 아무래도 암에 걸린 것 같은 할아버지, 그리고 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엄마 서정희씨까지도 그 마음과 삶이 알고 싶다.

유리는 “나를 버리고 가붓하게 떠났”던 서정희씨의 최후를 생각한다. 왜 연우를 학대했는지, 왜 자신을 입양하고 버렸는지 생각한다. 끝내 “서정희씨가 힘든 삶을 살게 된 이유”에까지 궁금증이 뻗친다. 유리는 이제 ‘모름’에 머물지 않는다. 묻고 또 묻는다. 할아버지가 복막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도 캐물어 알아낸다. 유리는 모른 척하고 싶었던 타인의 상처와 결함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그들로부터 상처입은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돌아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버거운 타인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들을 알아갈수록 도리어 훌훌, 마음이 가벼워진다.

『훌훌』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사연으로 버거운 짐을 떠안고 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쉬이 헤아릴 수 없는 저마다의 속사정을 지녔다. 제 몫의 아픔을 고요히 감당하던 그들이 단절의 영역에서 연결의 영역으로 더디지만 분명히 나아가면서 이야기는 뭉근한 온기를 띠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는 무게는 어느 정도인지, 그 무게에 기대고 의지하는 관계도 있을 수 있는지, 어쩌면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맞닥뜨리며 함께 만들어 가는 관계는 그 자체로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닌지. 질문들을 던지며 결국 『훌훌』은 말하는 듯하다. 버거운 덴 각자의 이유가 있을지라도, 가뿐해지는 방법은 하나뿐일지 모른다고. 마음과 마음은 연결될수록 가벼워지기도 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서로의 온기를 쬘 만큼은 거리를 좁혀도 괜찮다고.


김보영 (2022.02.10). 다섯번째 감각. 아작.

2010년 김보영의 소설집 《멀리 가는 이야기》와 《진화신화》가 처음 나왔을 때, 소설가 박민규는 다음과 같이 썼다. 

“여왕의 등극이다. 김보영의 작품들이 언젠가 한국 SF의 ‘종의 기원’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로부터 10년 뒤, 김보영은 한국 SF 작가로서는 최초로 미국 최대 출판사 하퍼 콜린스에서 영문 단편집을 출간했고, 또 다른 영문 단편집으로는 전미 도서상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12년 만에 복간되는 김보영 소설집 《다섯 번째 감각》에는 《멀리 가는 이야기》와 《진화신화》, 그리고 데뷔작 〈촉각의 경험〉에서부터 한국 SF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될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까지, 오래도록 한국의 SF에서 빛나고 있었던 김보영의 초기 걸작들을 마주할 수 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들이길래 수많은 창작자들의 극찬을 받을까? 쟁겨놓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변>

일생 한 편만 써도 없는 것보다는 많다

이 책은 2002년에서 2009년 사이의 내 기록이다. 지금과는 결이 다른 글도 있지만 그래서 의미가 있으려니 한다. 《얼마나 닮았는가》와 달리 퇴고를 다소 했는데, 주로 오류나 모순을 고치고 문장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에 주력했다. 〈거울애〉, 〈땅 밑에〉, 〈마지막 늑대〉, 〈몽중몽〉은 내적 모순이 많다고 판단하여 여러 부분을 수정했다. (……) 간혹 말했지만, 나는 스무 살 이전까지는 소설 쓰기 외에 다른 취미가 없었고, 스무 살 이후로는 갑자기 단절된 것처럼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로 시간만 허비하던 나는 ‘일생 한 편만 써도 없는 것보다는 많다’는 생각으로, 10년이 걸리든 평생이 걸리든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첫 소설들은 그렇게 무식한 시간을 들여 썼다. 출간할 수 없는 글을 쓰고 있다는 확신이 워낙 컸기에 오직 나 자신만을 만족시킬 소설을 쓰고자 했고, 그 소설들은 SF의 형태로 나왔다.

(……) 여전히 이 책은 내 첫 독자였던 친구 구지은과 한소영 씨께 바친다. 구지은은 십 대 시절 내 독자였고, 작가가 될 수 없다는 확신 속에서 방황하던 내게 만날 때마다 소설을 쓰라고 해주었다. 때로는 놀러 와서는 방에 죽치고 앉아 얼른 쓰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기다려주는 그 친구에게 한 편이라도 소설을 선물하겠다는 결심에서 내 집필이 새로 시작되었다. 한소영 씨는 내가 데뷔하기 전부터, 가장 처음 내 초고를 읽어주며 진심 어린 감상을 전해주셨다. 그 감상을 통해 나는 소설을 다듬고 고쳐갈 수 있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두 분께 감사한다. 두 분은 한 명의 독자가 한 명의 작가를 만들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 2020년 2월, 김보영

<독자의 변>

SF는 독자에게 경이로움을 안겨주는 장르라고 한다. 하지만 외계문명, 우주여행, 시간여행, 가상현실, 거대인공지능과 같은 SF의 익숙한 재료들은 이제 그 자체로는 어떤 신선한 충격을 주지 않는다. 장르를 통해 너무 많이 이야기되었고 세월이 지나면서 클리셰화되었기 때문에. 클리셰가 진행되는 동안 이들은 보수화되고 독자들은 이에 안주한다. 허버트 조지 웰스가 《우주전쟁》에서 호전적인 화성인을 등장시켰을 때 그것은 서구제국주의 시스템에 편안하게 안주한 영국인들의 세계관을 뒤흔드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가? 러브크래프트와 친구들이 절대적인 공포를 유발하기 위해 만든 코스믹 호러의 설정이 지금도 같은 충격을 주는가? 모든 것은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달렸다. 어떻게 이야기하고 어떻게 정보를 풀고 이를 우리가 사는 세계와 어떻게 연결시키는가.

김보영의 월드 빌딩은 익숙한 장르 공식을 답습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개안의 과정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모든 익숙한 것들은 그 여정을 통해 낯설어지고 성, 음악. 문명, 생물학적 조건은 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렇다. 세상은 원래부터 기괴하고 무섭고 아름답고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우리는 두꺼운 습관의 담요를 뒤집어 쓰고 이를 무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김보영의 단편들을 읽는 것은 그 담요를 은근슬쩍 떨구는 과정이다.

- 듀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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