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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 Jun 24. 2022

청부 살인자의 성모, 행성

#22.06.05 페르난도 바예호, 베르나르 베르베르

페르난도 바예호(22.5.30 ) 청부 살인자의 성모송변선(). 민음사

콜롬비아 메데인을 아는지. 죽는 일과 태어나는 일이 반복되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죽음은 또 다른 죽음을 불러오는 곳이란다.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 증오와 원한의 도시 메데인. 이 도시를 요모양으로 만든 주범자는 청부 살인자 시카리오, “위탁받아 살인하는 젊은 청년들”이다. .


<청부 살인자의 성모>는 코무나 출신이지만 오랫동안 콜롬비아를 떠나 있다가 귀국한 장년 남자 ‘나’가 십 대 중반의 시카리오 알렉시스와 함께 지내며 겪은 일들을 그린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마약 카르텔이 무너진 뒤 일거리가 없어진 알렉시스는 몸을 파는 일로 생계를 꾸리다가 ‘나’를 만나 연인 관계를 맺게 된다. 소설은 ‘나’의 독백으로 서술되는데, 속사포 랩을 닮은 문장들은 알렉시스와 같은 젊은이들이 무의미하게 저지르는 살인과 복수를 중계하듯 나열함으로써 폭력에 무감해진 현실을 고발한다.


코무나 출신이고 언어학자이자 작가라는 점에서 화자 ‘나’는 작가 자신을 닮았다. 고향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 늙은 몸으로 죽기 위해 돌아왔”노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화자가 보기에 조국 콜롬비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범죄가 잦은 나라였고, 메데인은 증오와 원한의 수도였”다. 그렇다는 사실의 가장 명백한 증거가 바로 그의 연인이자 실직한 시카리오인 소년 알렉시스다. 두 사람이 동거하는 아파트 이웃집 펑크족 젊은이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대해 화자가 “이 개자식을 죽여 버리고 싶어”라며 불평하자 알렉시스는 실제로 길에서 마주친 그의 이마에 총을 쏘아 살해한다.알렉시스는 이어 공원 입구에서 검문을 하던 군인 셋을 쏘아 죽이고,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몸이 부딪친 뒤 ‘호모’ 운운하며 욕설을 퍼부은 청년의 입에 총알을 박아 넣어 죽이며, 라디오 음악 소리를 줄여 달라는 부탁에 오히려 볼륨을 최대로 키운 택시 기사를 쏘아 죽인다. 불친절한 식당 종업원, 주먹다짐을 하던 열 살 어름의 아이들과 구경꾼들, 짐을 잔뜩 실은 마차를 끄는 말에게 채찍을 휘두르던 짐마차꾼 등이 희생자로 뒤를 잇는다. 알렉시스의 살인에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어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여섯을 한꺼번에 살해하기도 한다. “살아서 돌아다닌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알렉시스를 가리켜 화자는 “사악한 자기 종족을 파멸시키기 위해 메데인 위로 내려온 죽음의 천사”라 표현하는데, 살인과 죽음에 관한 화자의 태도는 알렉시스에 못지 않게 태연하고 냉담하다. “메데인에 사는 건 죽은 채 이 삶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여기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죄가 있고, 번식한다면 더 많은 죄가 있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만연한 살인과 폭력에 사람들은 단지 무감해질 뿐만 아니라, 은밀하게 타인의 죽음을 즐기며 그로부터 일그러진 행복감을 끄집어낸다. 살인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스스로 또 다른 희생자가 되지 않고자 고개를 숙이고 살인자의 눈을 피한다. 


알렉시스를 비롯한 시카리오들은 주일이면 착실하게 성당에 나가 성모에게 기도를 올린다. 청부 살인을 차질 없이 수행하게 해 달라는 것, 적들의 총알로부터 자신을 지켜 달라는 것이 기도의 내용이고, 어디까지나 ‘청부’ 살인인 만큼 신부들은 이들의 죄를 기꺼이 사해 주고 축복을 내린다. “콜롬비아 정부는 제일의 범죄자”이고, “이 땅에서 가톨릭교보다 더 천하고 부패한 것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정부와 종교에 대한 화자의 반감은 강렬하다. 그런데 절망과 분노로 불을 토하듯 뿜어내는 화자의 요설을 듣고 있다 보면 어느틈엔가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연민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고... (꼭 읽어야겠다~~)

(참고) 한겨레신문(2022,5,27). 분노의 요설로 고발하는 살인과 부패.


<책속으로>

인류가 살아가려면 신화와 거짓말이 필요해. 만약 누군가가 그대로 드러난 진실을 본다면, 아마도 스스로 자기 머리에 총을 쏴버릴 거야. (18쪽)

내 인생의 줄거리는 부조리한 책과 같아. 그러니까 먼저 나와야 할 것이 나중에 나오지. 이런 책을 쓴 사람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이미 쓰여 있었어. (23쪽)

콜롬비아에서는 당신이 다른 뺨을 갖다 대면, 다시 때려서 당신 눈을 빼내고 말 거야. 그리고 당신이 앞을 보지 못하면, 칼로 심장을 도려낼 거야. (111쪽)

메데인에 사는 건 죽은 채 이 삶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야. 내가 이 현실을 만들어 낸 게 아니라, 이 현실이 나를 만들어 내고 있어. (116쪽)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한 사람들을 만들고, 가난은 더 심한 가난을 만들어. 그리고 더 심한 가난이 있는 곳에 더 많은 살인자가 있고, 더 많은 살인자가 있는 곳에는 더 많은 사람이 죽어. 이것이 메데인의 법인데, 앞으로 전 지구를 지배하게 될 거야. 그러니 잘 적어놓도록 해. (125쪽)



베르나르 베르베르 (22.5.30). 행성전미연(). 열린책들

전쟁과 테러, 감염병 때문에 인구가 8분의 1로 줄어들고 황폐해진 세계. 시스템이 마비된 도시는 쓰레기와 쥐들로 뒤덮였다. 주인공 고양이 바스테트는 쥐들이 없는 세상을 찾아〈마지막 희망〉호를 타고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신세계로 향한다. 


그러나 뉴욕에 도착한 바스테트 일행을 맞이한 것은 알 카포네라는 우두머리가 이끄는 쥐 군단의 공격. 겨우 목숨을 부지한 바스테트의 눈에 고층 빌딩 꼭대기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보이고, 드론 한 대가 날아온다. 놀랍게도 뉴욕에는 약 4만 명의 인간이 쥐를 피해 2백여 개의 고층 빌딩에 숨어 살고 있었다. 그리고 프리덤 타워에는 102개 인간 집단을 대표하는 총회가 존재한다. 총회에서는 쥐를 없애기 위해 핵폭탄을 사용하자는 강경파가 대두하며 갈등이 심해진다. 바스테트는 103번째 대표 자격을 요구하지만 인간들은 고양이의 의견이라며 무시할 뿐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쥐 군단의 위협, 무작정 핵폭탄을 쏘려는 인간들, 로봇 고양이 카츠의 등장…… 


과연 바스테트는 상상력을 동원해 위기를 돌파하고 이 행성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나아가 그가 염원했던 서로 다른 생명체가 공존하고 연대하는 문명을 세울 수 있을까. <고양이>에서 <문명>을 거쳐 <행성>까지 이어져 온 대장정의 피날레.  


쥐떼에 맞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고양이들은 전쟁과 테러로 자기 파괴적 행위를 일삼는 인간을 능가한다. 인간이 살아남으려면 고양이와 손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우화는 교훈적이다.지구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일까? 인간이 만든 쓰레기 더미에서 나타난 쥐떼일까, 지구를 망가뜨린 데서 멈추지 않고 자기 파멸의 길로 돌진하는 인간일까? 힘의 대결에서 벗어나는 순간 폭력은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공존과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한 마리 고양이일까?


(참고) 한겨레신문 (2022.5,27). 지구의 주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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