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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형일 Aug 11. 2022

#7 굿바이~ <징크스의 연인>


수목드라마 <징크스의 연인>이 지난주 종영했어요. 수비커플과 함께한 지난 몇 개월은 개인적으로 많은 걸 경험하고 느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시청률이야 아쉽고, 이야기 측면에서도 서동시장보다 금화그룹의 이야기가 중심에 선 후반부가 아쉬웠지만, 저한테는 많은 걸 느끼고 품게 만든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16회 방송이 끝나고 괜히 기분이 멜랑꼴리하더라구요.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징크스의 연인> 초반 1~6회와 마지막 16회는 가끔씩 기분이 울적해지거나 울분에 찰 때 다시금 꺼내볼 것 같습니다. 


여기서 그냥 '굿바이'하면 너무 성의가 없으니, 개인적으로 <징크스의 연인>을 떠나보내면서 인상깊었던 두 가지 장면만 기록으로 남깁니다. 


우선 2회. 서동시장에서 슬비가 “영우”를 처음 만나는 장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장영우에게도 발달장애가 있는데, 영우의 별명은 똑딱이랍니다. 오후 4시만 되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빠짐없이 꽈배기를 먹으러 나타난다고 해서 똑딱이인데요. 꽈배기집 앞에서 영우가 슬비를 처음 만나 나누게 된 이야기는 제가 처음 <징크스의 연인>을 볼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었습니다. 


<2회 서동시장 꽈배기 가게 앞 장면 중> 

영우 : (약간 어눌한 말투로) 아저씨, 꽈배기 주세요. 

박사장 어~ 그래. 

영우 이건 바다 숲에 서식하는 해조류처럼 부드럽습니다.   

박사장 : 아아 그래~?  

영우 : 바다 숲 중 맹그로브숲은 빠르게 파괴되고 있는데, 맹그로브 손실로 인해 배출된 탄소량은 산림벌채로 인해 배출된 세계 총 탄소 배출량의 5분의 1을 차지합니다. 

슬비 : (영우를 보며 반가운 표정으로) 매년 7월 26일은 국제맹그로브 생태 보존의 날입   니다. 

영우 : (어라? 하며 바라보는) 맞습니다. 딩동댕. 

슬비 : 바다 숲의 해조류를 파괴하는 건 성게 떼의 습격 때문인데, 성게 떼가 해조류를 갉아먹는 걸 막으려면, 

영우 : (꽈배기 꿀꺽 삼키고) 성게를 잡아먹는 생태계 핵심종인 해달을 보호해야 합니다. 

슬비 : (웃으며) 맞습니다. 딩동댕. 

박사장 : 똑딱아, 너랑 말이 통하는 사람 생전 처음 본다, 그치? 

영우 : (무표정한 얼굴에 슬쩍 기분 좋은 웃음이 번지며, 남은 꽈배기 마저 먹는다)우리 집은 반찬가게와 가정식 백반 집을 합니다. 

슬비 : 가정식 백반? (그게 뭐지?) 백반? 먹는 거야? 

영우 :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보며) 아저씨 이 누나 좀 모자라나 봐요. 

슬비 : (새침한) 나 모자라는 거 아니고, 아직 적응 중이라 그래. 

영우 : 적응 중? 

슬비 : 응. 이쪽 세계에. 

영우 : 이쪽 세계? 그럼 저쪽 세계에서 왔습니까? 

슬비 : 응. 

영우 : 대단합니다. 이쪽 세계 음식 먹고 싶으면 우리 집 오세요. (가는)

슬비 : (영우가 마음에 든다, 웃으며) 응! 고마워! 


다음으로 인상깊었던 장면은 5회, 수비(수광&슬비) 커플이 부산에서 영우 할머니와 조우하던 장면이었어요. 영우할머니는 발달장애가 있는 손자가 조금 불편했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고, 어느 날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손자와의 인연이 아예 끊겨져 버렸는데요, 그런 할머니를 수비커플이 찾아간 거에요.  


<5회 영우할머니 식당 장면 중> 

영우할머니 : 영우 태어나면서부터 여서 다~같이 지내면서 장사도 같이 하고, 아도 같이 키우고 그랬다. 근데 영우가 자라면서 보니까는... 아가 좀 그런기라. 내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 걸 뭐라카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한마디 했더니만.. 고것들이 파르르 해서는 연까지 끊는다며 서울로 올라가삤다... 

수광 : 뭐라고... 하셨는데요? 

영우할머니 : 병신이라꼬... 근다고 몇 년을 연락을 안하고, 사람을 죄인 취급을 하노? 내사 마 손주가 그런 게 맘이 편하겠노?... 

수광 : 그럼 그냥 한마디만 하시면 돼요.  

영우할머니 : 뭐라꼬? 

수광 : 미안하다고요. 

영우할머니 :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 

수광 : 왜 굳이 말로 안하시는데요? 다른 말은 잘하시잖아요. 보니까 욕도 잘하시고, 상처 주는 말도 탁탁 잘하시는데, 왜 미안하단 말은 굳이 안하세요?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하시면 돼요.  

영우할머니 : 이기 어서 이런 재수없는 기 와가꼬! 

수광: 미안하다고 한번만 하시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할머니 요리, 영우한테 해주실 수 있어요.  영우가 그렇게 기다리는데, 그 말이 뭐 그렇게 대수에요.

영우할머니 : 새파랗게 젊은 기 어른을 가르칠라꼬! 나가라! 퍼뜩!  

슬비 : 할머니! 미안해. 미안해 100번. 하세요! 


막상 대사들을 옮겨놓고 보니 <징크스의 연인>은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100번”을 외치게 만드는 한여름밤의 동화같은 이야기를 꿈꿨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비커플을 중심으로 이 100번의 외침이 동화처럼 좀 더 예쁘게 몽글몽글하게 그려졌으면 참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지만, 이건 다음 프로젝트에서 꿈꿔보고, 다만 개인적으로 앞으로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이런 말을 자주 표현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몇 주전에 제가 애정하고 존경하는 목사님께서 설교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미안함을, 고마움을, 사랑함을 표현하는 것은 순진무구해 보이지만 혁명적 개념이다. 충족되지 않은 욕망과 강팍한 경쟁을 추동하는 사회에서 내 안의 충만함과 여유로움을 계발한 자만이 이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명까지는 모르겠지만, 삶이 강팍해지고 날카로워진다고 느껴지는 어느 날, 내 안의 충만함과 여유로움을 떠올리고 싶다면 <징크스의 연인>에서 건져낸 이 말을 자주 중얼거려 보려 합니다. 

그럼 슬비커플~~ 서동시장~ 징크스의 연인~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징크스의 연인> 끝나면 뭐하냐구요?

<귀못>, <폰:사라진 기억> 

그리고 <KBS드라마스페셜 2022>...

10월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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