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 포르투갈, 일단 떠나보기로 했다.

by 오윤
고도로 다듬어진 삶을 살기. 이상의 전원에서 책을 읽고 몽상에 잠기며, 그리고 글쓰기를 생각하며 권태에 근접할 정도로 그토록 느린 삶. 하지만 정말로 권태로워지지는 않도록 충분히 숙고된 삶.
(Fernando Pessoa, 1999/2014, p. 13)


코로나 19로 한적한 거리. 의도치 않게 우리는 서로로부터 격리되어 있고, 이 시간 나는 의도치 않았지만 포르투칼의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의 두터운 책을 읽고 있다. 권태에 근접할 정도로 그토록 느린 삶, 하지만 정말로 권태로워지지는 않도록 충분히 숙고된 삶을 다짐하면서 말이다. 지난 두 달, 천천히 천천히 그의 글들을 읽었고, 느리게 느리게 지난 여름 포르투칼에서의 기억을 글로 환원시켜나갔다.


2019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의욕적으로 마주친 일들을 해나갔던 것 같다. 새로울 것은 없었다. 나는 여러 일들이 있을 때마다 가급적 그 자극을 즐기는 편이다. 이게 내게 어떤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낼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희망적인 미래란 없는 거니깐. 그냥 그 순간에 처리해야 할 일들, 순간의 자극들을 피할 수 없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겨야겠다고 마음먹을 뿐이었다. 그러니깐, 나는 매사에 희망적이지는 않지만 긍정적이고, 어떤 자극이 왔을 때 그것을 내게 맞는 페이스로,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추구해가면서 1센티라도 내 몸과 마음이 커지면 그걸로 충분한 인간되겠다.


그런데 작년 여름, 내 삶에 게임을 거는 자극들이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 폭발했고, 뭔가 인생이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자주 한숨을 쉬고, 절망과 분노에 빠졌다.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은 단순했다. 자신의 일상을 잘사는 것. 그런데 일상을 잘 사는 건 뭘까? 그해 여름 질문은 이거였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세상 끝”을 떠올렸다.


세상의 끝 포르투칼.


왠지 모르게 끌리는 공간이 있다. 내게 포르투칼이 그랬다. 포르투칼하면 떠오르는 단어들. “세상의 끝”, “퇴락한 변방”, “쓸쓸한 파두”, “떠나간 첫사랑”,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 “사우다드”, 나는 이런 단어들을 애정했고, 삶이 뒤죽박죽이던 지난 여름, 이런 정서를 머금은 포르투칼을 검색하고, 상상하다보면 적지 않은 위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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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페소아도 포르투칼을 검색하다 만나게 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내의 검색질로 알게 된 작가였다. 그는 리스본을 애정하고, 평생 그곳에서 일을 하고 글을 쓴다. 글에 담긴 정서는 이렇다.


“나는 도시의 거리에 고인 긴 여름 저녁의 고요를 사랑한다. 특히 그것이 한낮의 소란스러움과 가장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장소를 선호한다. 아르세날 거리와 알판데가 거리, 그리고 알판데가 거리의 끝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모든 슬픔의 거리들. 고요하고 긴 항구의 길이 중단되는 지점, 여름날 저녁, 미로와 같은 고독의 도시를 헤맬 때면 침울에 잠긴 거리들이 나를 위로한다(같은 책. p. 28)”


그의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읽다보면 어떤 면에서는 동료의식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쓸쓸함과 도달할 수 없는 그리움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그리고 이 정서에 깊이 공감하는 나를 만난다. 그리고 그해 여름, 나는 뒤죽박죽이던 일상을 일단 개수통에 남겨둔 채 리스본행 비행기에 탑승하기로 결심했다. 세상 끝에 어떤 답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단 떠나보기로 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 짧지 않은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참고문헌>

Pessoa, F. (1999). The Book of Disquiet. 배수아(2014). 불안의 서. 통영: 봄날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