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들은 마음껏 찢어발기고 파괴했다. 그들이 속한 시대는 아직 견고한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파괴와 그 결과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지금 세상은 오직 바보들, 자아도취자들, 책동가들이 쥐고 있다. ... 사고 능력의 부재, 도덕심의 부재 그리고 과잉 흥분 상태. (Fernando Pessoa, 1999/2014, p. 316)
신트라를 떠나 리스보아로 가는 기차 안이다. 리스보아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오비두스로 갈 예정이다. 지금 시간이 오후 4시이니 저녁 6시 정도에는 오비두스에 도착할 거다. 포르투칼에 도착한 후 가장 더운 날이다. 여름은 여름이었네, 일주일만에 느끼는 계절 감각이다.
오전에 조르바가 운영하는 골동품 가게에 여행가방을 맡긴 후 페나성과 무어성을 다녀왔다. 페나성은 여행 책에 요렇게 쓰여져 있다.
“유치찬란한 알록달록한 성. 기묘한 정신세계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 신트라 도심 뒤의 신트라산 꼭대기 바위에 기대듯 아슬아슬하게 건설되었다. 날씨가 좋으면 성에서 바다는 물론 리스보아도 볼 수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며 포르투갈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페나성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을 아슬아슬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성 정상에 서면 왠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아마 이성에 살던 성주들이 아래 것들이 사는 동네를 바라볼 때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성이 기막히게 웅장하거나 예쁜 것은 아닌데,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손짓을 하며 알록달록한 색깔로 도배를 했다. 이 성을 지은 성주의 정신세계는 평균에서 한참 벗어난 건 분명하다. 이 괴짜의 정신세계를 구경하기 위해 페나성으로 가는 버스는 승객들로 꽉꽉 찼고, 페나성은 입구부터 수백 미터의 인간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줄이냐?’고 물으니 페나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는 줄이라고 한다.
바로 패스했다. 내부 탐험을 가뿐히 포기하고 페나성 외부와 페나 공원을 산책한다. 페나성에서 보는 전경은 웅장하고 아름답다. 태양은 뜨겁지만 공원 안 수백 년은 족히 그 자리에 있었을 나무들이 빚어내는 그늘은 시원하다. 여행책자를 보면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 곳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내가 고작 내뿜는 이야기는 “와~”, “요것 봐봐”, “이쁘네” 등등 상투적인 감탄사와 형용사가 고작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라 해도, 포르투갈의 7대 불가사의라 해도, 그 공간의 이야기, 상상, 색깔, 냄새는 내 감각을 넘어서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내 감각이라는 건 상투적이고 보편적이기 그지 없다. 그러니깐 여행이라는 것은 어쩌면 빈약한 내 상상력과 감성을 확인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럴 때는 그냥 사진이나 열심히 찍어 놓는 거다.
“와~ 이쁘네~”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말이다.
페나 공원을 나와 향한 곳은 공원 밑자락에 자리 잡은 무어성이었다. 지난 며칠 신트라의 해질녁에 가장 강력한 인상으로 남았던 곳이다. 10세기 전후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의 땅이었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 오후 뜨거운 볕 아래 서 있는 무어성. 여기서는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왜 이 높은 산에 왜 저렇게 높은 돌성을 쌓아야만 했을까? 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왜 무어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의 높은 산에 돌을 운반하고, 돌을 쌓는 작업을 극단적인 수준까지 밀고 나간 것일까? 삶을 극단으로 몰고 간다는 것은 최대치에 이르도록 산다는 것이다. 이들의 삶을 최대치로 극단으로 이끌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무어성은 철두철미 반근대적이다. 중세적 시간을 음미하게 된다. 근대의 속도에 맞서는 멈춤, 침묵, 묵상을 따르게 만드는 공간이다. 8세기에서 11세기, 그 시절 유라시아의 주도권은 무슬림에 있었다. 어느 정도의 주도권이었냐 서유라시아의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니라 바그다드로 향했다. 영성의 중심 또한 메카였고, 예루살렘마저 무슬림의 땅이었다. 북아프리카의 무슬림이 남유럽으로 북상한 것은 8세기였다. 이들은 이베리아에 새로운 문명을 일구었고, 그렇게 북진하면서 리스보아에 도착한 것은 711년이었다. 무어인은 이곳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었다. 화려하고 역동적이며 공생의 힘이 있었던 시대였다. 그게 유목민의 특징이기도 했다.
이슬람과 기독교, 무어인과 유럽인이 대립하기 시작한 것은 11세기부터다.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었다. 이 시간을 서구의 역사는 기독교의 재정복,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이라 적는다. 적절치 못한 진술이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 이병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이병한, 2019, 유라시아 견문 3).
“복합계가 단순계로 재편되었다. 다종교의 공존을 허용하는 다문화사회에서 이단 심문과 마녀사냥의 삭풍이 몰아치는 전체주의 사회로 변질된다. 무슬림은 추방되고 개종을 거부하는 유대교들이 재차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이슬람적 유럽이 꽃피었던 초기 근대가 말소되고 기독교가 유일사상으로 군림하는 암흑기가 도래한다.... (이병안, 2019, p. 37)”
무어성을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던 뜨거운 여름 낮의 한 찰나를 떠올리며 유럽과 아랍, 서구와 중동이 이어져있던 시간을 기억해본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던 유목의 시대, 공존과 평화의 시대를 상상해본다. 승자에 의해 쓰 여진 유럽발 역사 교과서 너머의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우리 어디서 내려?”
잠에서 깬 그녀가 묻는다. 고개를 든다. 리스보아, 무어인, 십자군전쟁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찾아보는 사이 기차는 어느새 리스보아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 구글맵을 킨다. 빨간색 점이 리스보아 남동쪽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그러니깐 서울로 치자면 강동지역으로 내려가는데, 우리가 지금 가야 하는 곳은 반대다. 내려야할 때를 놓쳤다. 아니 기차를 잘못 탄 것 같기도 하다. 서울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하는데 수서로 가는 기차를 탄 느낌이라고 할까?
“일단 내리자.”
여기가 어디인지 잘 알지도 못하지만 구글맵에서 깜박이는 빨간 점이 이야기하는 것은 명확했다.
“점점 멀어지고 있어.”
오비두스에 잘 도착할 수 있을까?
<참고문헌>
Pessoa, F. (1999). The Book of Disquiet. 배수아(2014). 불안의 서. 통영: 봄날의 책.
이병한 (2019). <유라시아 견문 3>. 파주: 서해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