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그건 단연코 그에게 있다. (Fernando Pessoa, 1999/2014, p. 308)
나자레의 한 에어비앤비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전 세계 서퍼들이 모인다는 나자레의 파도는 굉장했다. “와 바다다!”하고 뛰어 들어가면 열 발자국도 가기 전에 거대한 파도와 마주해야 한다. 대부분 거기서 파도에 밀려 열 발자국 후퇴다. 파도에 익숙해지면 그 다음 문제는 대서양의 차가움이다. 물이 굉장히 차갑다. 이 차가움에 익숙해지려면 하나, 둘, 셋, 곰을 한 이백 마리까지는 물 속에서 세어야 한다. 춥더라도 버티는 것, 이게 어떤 낯선 세계와 접속하는 첫 번째 관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파도, 외부에서 오는 파도가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정면으로 응시해야 물을 덜 먹는다. 딴눈을 팔거나 외면하면 어느 순간 파도에 휩쓸려 꼬르륵 해변에 내동댕이 쳐진다. 나자레는 이 단순한 진실을 거대한 파도와 광활한 해변을 무대로 가르쳐준다.
이 마을은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구분되어 있다. 마을을 잇는 트램이 있고, 두 마을의 경계선은 빌딩 높이 50층 정도 되어 보이는 가파른 절벽이다. 우리가 묵은 에이비엔비는 아랫마을 해변가 바로 앞에 있다. 아랫마을에서 잠을 자고 술을 마시고 수영을 하며 가끔 윗마을을 쳐다본다.
윗마을의 끄트머리에는 등대가 있다. 새벽에 눈을 뜨니 윗마을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등대 불빛이 전부다. 대서양을 항해하는 어선, 탐험선이 다시 육지로 돌아올 때 의지하는 등대를 새삼스레 쳐다보면서 하나의 불빛으로 존재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 좀 생각해본다. 누군가에게 등대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 이런 상투적인 그러나 중요한 마음이 나자레 저 높은 곳의 등대를 보며 아주 엷게 새겨지는 거다.
포르투갈에 있으면서 놀랍게도 꿈을 꾸면 그 세계의 배경은 자주 서울이였다. 꿈은 묘하다. 불가해하고 정복 불가능하다. 서울에서 탈출하여 포르투갈에 왔더니 웬걸, 탈출하고자 했던 서울이 꿈에 호출되는 거다. 서울에 있을 때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다. 아마도 나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내 무의식의 많은 영역이 서울에 정박해 있나보다. 나의 꿈은 강호를 오가는 무림고수는 커녕 고작 여의나루나 오가는 뱃사공 정도 되는 것 같다. 꿈 속에서 나는 때로 화를 내고, 실망을 하고 소리를 지르지만, 또 그만큼 거기를 애정하고,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
좋아는 하지만, 그 좋아함 때문에 무의식 저편에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것을 보면 내가 지금 거기에 과도하게 종속되어 있구나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잠에서 깨 저 멀리 반짝이는 나자레의 등대를 보며 꿈 속 세계를 어루만진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아무것에도 굴복하지 않기.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은 진부함을 의미한다. 믿음, 이상, 여인, 직업. 이것들은 전부 감옥과 사슬을 의미한다. 존재란 자유롭게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뭔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자마자 그것은 사람들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끈이 된다. 절대 끈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 타인들로부터는 물론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절정의 희열 없이 관조하여야 한다. 결론 없이 사고하며 신에게 구속받지 않아야 한다. .. 우리의 평안을 산책시키고 기꺼이 자발적으로 모든 소망의 의미를 잊는다. (같은 책, p. 412)" .
어제 밤 나자레는 불금의 공간이었다. <2019 나자레 비치사커대회>가 열렸고, 여기서 사커는 축구가 아니라 핸드볼이었다. 정말 많은 젊은 친구들이 모래사장에서 핸드볼을 즐겼고 그 모습이 내겐 굉장히 새로우면서도 익숙했다. 새로운 건 종목 때문이었다. 핸드볼을 던지고 받는 사람을 구경한 것은 88년도 서울올림픽이 거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한강고수부지에서도, 어느 작은 동네 고등학교에서도 핸드볼 하는 친구를 경험한 기억이 없다. 그러나 나자레 모래사장을 뛰어 다니며 끊임없이 패스와 슛동작을 반복 연습하는 친구들은 너무도 친숙했다. 이 친구들을 보면서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종소리와 함께,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와 함께 우리는 농구공을 들고 농구장으로 뛰어갔고, 주말이면 나자레의 해변가 정도는 안 되지만 우리의 세느강이라 불리는 오산천 앞에서 저물어가는 태양을 배경으로 저 높은 곳을 향해 농구공을 쏘아올리곤 했다. 정말 잘 하고 싶었지만, 농구는 잘 되지 않았고, 수능은 실패하더라도 슛은 성공시키고 싶었으며, 그때는 지루하거나 공허할 틈이 없었다. 나자레는 그렇게 수십년 전 그 시절의 사람들, 공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나자레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으로 먹은 조개 해물밥과 조개요리는 어릴 적 그녀와 찾았던 무의도의 한 조개구이 집을 떠올리게 한다. 요리를 하는 쉐프도 음식을 나르는 웨이터도 유쾌하기 그지 없다.
“올라~~ 잘 왔어. 친구들.”
“우리 너무 배가 고픈데, 추천 좀 해줄래?”
“나자레에는 언제 왔어?”
“방금 도착한 거야.”
“그래? 그럼 조개 요리지.”
“조개 해물밥과 조개찜, 그리고 화이트와인 한병. 어때?”
“좋아. 화이트와인은 뭐가 좋을까? ”
“오늘 날씨와 나자레와 조개요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주지. 가성비도 좋아.:
그러면서 “Casal Garcia White”라 적힌 와인을 멋들어지게 세팅해준다. 한잔씩을 따라주며 묻는다.
“어때?”
뭐라고 대답하겠나, 좋다고 하지. 그런데 정말 좋았다.
화이트와인을 홀짝 거리는데 뒤편에서는 평생 이곳을 떠난 적 없어 보이는 요리사와 웨이터들이 방실방실 웃으며 요리를 하고, 요리를 전한다.
“평생 이곳을 떠난 적 없는 요리사, 그가 나를 향해서 조리대 너머로 몸을 숙일 때, 그의 미소는 커다랗고 엄숙하며 만족감 넘치는 행복으로 충만하다. 그는 조금의 꾸밈도 없다. 그가 자신을 꾸며야할 이유도 전혀 없다. 그가 행복하다면, 그건 그가 정말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진실은 그에게도 나에게도 있지 않다. 어차피 진실은 그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은, 그건 단연코 그에게 있다. (p. 307~308)"
그리고 단연코 그녀의 옆에 있던 우리에게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이 바로 옆에 있었다.
<참고문헌>
Pessoa, F. (1999). The Book of Disquiet. 배수아(2014). 불안의 서. 통영: 봄날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