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어제와 다른 세계로의 초대, 히베이라 지구.

by 오윤
오늘이 남기는 것, 어제가 남긴 것, 그리고 내일이 남길 것, 도저히 진정시킬 수 없는 무한한 욕구, 항상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으로 있고자 하는 욕구 (Fernando Pessoa, 1999/2014, p. 575)


일요일 오후, 우리는 여행 가방을 끌며 포르투의 골목 골목을 지나고 있다. 상벤투역에 내려 3일간 묵게 될 에어비앤비를 찾아가는 중이다. 기차가 멈춘 상벤투역에서 숙소가 위치한 카르모 성당까지, 포르투 관광 책자를 보면 가장 핫한 공간으로 이야기되는 히베이라 지구를 관통하는 길이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유네스코 역사 지구로 지정되었다는 이곳은 인파로 뜨겁다. 구글맵을 켜놓은 채 뚜벅뚜벅 걷는 거리, 내 눈에 이 거리는 뜨겁고 분주하며 그 사이사이에 한 여름밤의 나른한 꿈이 자리 잡고 있다.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고 분석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포르투의 한 사물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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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뜨거운 거리 위에 사람 동물이 많다. 대부분이 여행객들이다. 스쳐지나가는 여행객들을 구경하고, 나 역시 관찰당하면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거리라는 게 묘한 안정감을 준다. 모두가 타인이고, 그 누구도 서로를 알지 못한다. 여행의 매력 중 하나는 이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든지 타인을 깊숙이 알게 되면 그 안에서 내 안의 치부, 숙적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빚어내는 감정들, 슬픔, 서운함, 시기심, 수치심, 아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행은 모두가 마음 속 깊숙이 숨겨든 비밀들, 영혼이 악마에 속한 바로 그 지점을 숨기고, 서로가 서로의 악마성을 의식하지 못하면서 자주 삶의 위대함과 행복을 느끼게 한다. 존재하지 않는 위대함과 존재할 수 없는 행복 사이의 유쾌한 중간을 점유하게 하는 게 여행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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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의 거리를 걷다보면 많은 성당들을 만나게 된다. 성당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이야기되지만, 각각의 성당은 독특한 느낌을 빚어내고, 그 안에 기거하는 신의 모습 역시 다르다. 이처럼 다양한 신들을 가진 사람들은 일상에서 무료함이나 공허함을 느낄 여유가 없을 것 같다. 믿고, 노래하고, 기도하기도 부족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신이 기거하는 동네에서는 굳이 많은 부의 축적이나 소유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한다. 성당의 문을 열고 살짝 미사에 참여해본다. 미사가 2/3정도 진행된 후 헌금 주머니가 의자 사이사이로 전달될 때, 그 주머니에 쌓이는 것은 우리로 치면 100원, 500원 동전들이다. 이들은 참 가난하구나, 이런 생각보다 이들은 소유보다 다른 종류의 매혹을 좋아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예쁜 작은 돌’ 아줄레주나 타인을 향한 미소, 도루강의 석양, 한 편의 시, 한 잔의 와인, 그리고 하늘, 바람, 우주, 이런 것들. 물론 이런 의미는 내가 포르투의 골목을 걸으며 만들어낸 상상이다. 이런 상상이 즐겁다. 즐거움은 포르투라는 공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만나는 내 내면이 빚어내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이런 상상과 꿈과 내면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관찰하는 일은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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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3일 동안 머물 숙소는 카르모 성당이 눈앞에 보이는 작은 다락방이었다. 카르모 성당만 보이는게 아니라 고즈넉한 히베이라 지구와 도루강을 키높이 아저씨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다락방. 포르투를 조망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이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는데, 커리어를 들고 오르막길과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일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다락방은 꿈꾸던 공간만은 아니었다. 일단 좁았다. 그리고 거기는 인간의 땅이 아니라 새의 땅이었다. 다락방 통창을 경계로 새와 인간이 눈싸움을 하는 곳. 더워도 창문을 활짝 열수 없는 것은 가까이서 마주하는 수많은 새들의 눈빛은 매섭고 부리는 날카로웠다. 저 새들이 우리의 다락방 안으로 침입한다면? 우리가 다시 인간의 땅으로 복귀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야~ 너 저리가. 왜 자꾸 우리 창문 앞에서 노는 거야?”

“야~ 저기 가서 싸워. 여긴 우리 집이라구!!”

“밥을 왜 여기서 먹는거야? 너 저기로 안가!”

그녀가 창문을 잡고 새와 기싸움 중이다. 내일 즈음이면 새로 변신할 기세다. 그녀가 새몰이를 할 때 난 다락방의 고독함을 느낀다. 이 고도에, 이 높이에 숨을 쉬는 호모사피엔스는 그녀와 내가 유일하다. 마치 무인도에 유폐된 느낌이다. 이리저리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밑으로 보이는 히베이라 지구의 집들은 대부분 비어 있다. 아무도 살지 않은 집, 그 집 위에 새들이 터를 잡고 있다. 정지 상태라기보다는 진공 상태의 적막. 그 적막 위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새들이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하늘이 조금씩 조금씩 붉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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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한 거리를 지나 인적이 드문 광장의 작은 벤치에 앉아있던 시간을 떠올린다. 작은 광장을 지나 인적이 사라진 다락방에 앉아있던 시간을 떠올린다. 이 시간들을 나는 사랑한다. 아득히 들려오는 소란스러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의 적막함, 그 적막함 사이로 둥지를 튼 수많은 새들의 움직임, 눈빛, 소리, 저 멀리 흐르는 푸른 강, 붉어지는 하늘, 낡은 지붕들. 폐가와 공터와 사물들. 이곳은 도시 한가운데에 숨겨진 시골이다. 이 시골의 석양과 여명을 사랑하도록 하자.

뭔가 이 다락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에는 미학적 요소가 깃들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새들과 기싸움을 하며, 하염없이 지는 해를 바라보고, 날아오르는 새들을 바라보고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분명 예술적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배가 고프다.

“오늘 저녁은 뭐먹을까?”



<참고문헌>

Pessoa, F. (1999). The Book of Disquiet. 배수아(2014). 불안의 서. 통영: 봄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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