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오래된 거리들의 뒤엉킴, 어느 보통날. 포르투

by 오윤
나는 인생을, 마치 줄거리 없이 오직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연출된 연극인 양 바라본다. 어떤 요소가 결여된 무용,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구름 속에서 스스로 색을 바꾸는 달빛, 도시의 여러 구역에서 우연의 경로에 의해 그려지는 오래된 거리들의 뒤엉킴. (Fernando Pessoa, 1999/2014, p. 342)


오후 5시, 랠루서점 옆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펼쳐진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있다. 포르투에서의 이튿날, 바람은 시원하고 햇볕은 따사롭다. 하지만 이 이상한 기운은 뭐지? 그러니깐 그녀가 지금 기분이 안 좋은 거다.

시작은 좋았다.

<Leitaria da Quinta do Paço> 에클레르가 유명한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과 달콤한 에클레르로 하루를 시작한다. 에클레르는 프랑스어로 번개란 뜻이다. 길쭉한 모양의 달콤한 슈, 페이스트리에 크림을 넣고 그 위에 초콜릿을 바른다. 맛있지 않을 수 없다.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고 해서 번개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쌉쌀한 커피와 기막히게 잘 어울리는 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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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일아~ 여기 어떻게 알았어?’

그랬다. 시작은 좋았다.

에클레르 한 스푼씩 하고 버스를 타고 봄수세스 시장(Mercado Bom Sucesso)을 찾아갈 때도 좋았다. 기분이 좋았던지 그녀는 시장에서 내게 가방 하나를 사줬고, 가방을 메고 도루강까지 걸어 내려오는 길, 강을 따라 히베이라까지 걸어가는 강변 길도 좋았다. 전차, 페소아, 테라스의 빨래, 아줄레주, 언덕. 강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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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모든 게 완벽해.


월요일 아침의 강변길은 일요일 오후의 분주함을 잊고 있었다. 분주함이 흩어진 자리에 남은 월요일 오전의 여유로움. 오래된 항구에 앉아 커피 한잔을 홀짝 거리며 신이 내린 태양, 바람, 하늘 3종 선물세트를 즐긴다. 서울에 돌아가면 아마도 나는 지금 이 시간과 공간이 부여한 느낌을 까마득하게 잊고 지낼 거다. 가끔 꺼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설사 그럴 만한 이유가 없다 해도 말이다.


문제는 욕심이었다. 포르투갈에서 보낼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 때문일까? 좀 더 많이 보고, 좀 더 많이 느끼고 싶은 욕망에 과도하게 많이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도루강을 따라 히베이라로 가는 길 그녀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힘들다. 배고프지 않아? 이 즈음에서 점심 먹는 게 어때?

주변에는 아기자기한 작은 음식점이 즐비했다. 그 중 하나에서 점심을 먹으면 됐다. 그러나 나에겐 여행책자에서 본 추천 맛집이 있었다.

<Flor do Congregu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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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무엇을 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슬로우푸드, 어두운 조명, 고풍스런 벽돌, 절제된 식사, 그곳을 소개하는 여행책자에 자주 등장하는 언어와 사진에 마음이 팔렸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멋진 가게가 있대. 거기로 가자.”


힘들다는 그녀에게 좀 더 가보자면서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가고 싶은 가게, 도달하고 싶은 목표가 있었고, 목표가 서자 여행은 예술이 아니라 삶이 되었다. 목적과 목표와 의지가 넘치는 삶은 피곤하고 흉했다. 도루강을 뒤로 한 채 히베이라 지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상빈또역 뒷골목까지 걷고 걸었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이미 꽤 긴 시간을 걸은 상황이었고, 점심 무렵 곳곳에서 쏟아진 사람들로 히베이라 지구는 북적거렸다. 그 사이 태양은 뜨거워졌으며, 모든 것이 어우러져 피로가 몰려왔다. 그녀의 표정 속에 ‘참고 있어’라는 마음이 진하게 새겨져 있었다.


식당은 작았고, 그곳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작은 식당에 앉아 메뉴판을 보는데 마음 속에서 무게감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여기서 메뉴가 꽝이면 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찡그러질 것이다.’

문제는 부담감만큼 메뉴판도 복잡하기 그지없다는 것.

두터웠고, 두터움 사이로 통행이 불가능한 균열이 존재했다. 콤폴라라 부르고 싶은 웨이터 아저씨가 와서 간단히 메뉴들을 소개하고, 추천메뉴들을 소개했지만 이 메뉴들이라는 건 대략 이런 거였다.

‘이것은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소곱창이고, 이것은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족발이지. 절인 정어리도 맛있고, 베지테리안이면 이 야채 수프도 추천할만해.“

그녀가 죄다 싫어하는 메뉴들이었다.

‘소곱창이 왠말이냐구, 족발이 왠말이냐구, 내가 그걸 먹으러 여기까지 온 거냐구!’

그녀의 인상 속에 이런 마음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웨이터가 돌아간 후 나는 메뉴판을 옆에 두고 한줄 한 줄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아 이건 햄을 말하는 거구나, 아 이건 송아지고기를 의미하는 거구, 이것은 송로버섯을 겻들인 감자절임을 의미하는 거구나.

“뭐해?”

“어~~ 뭘 시켜야하는지 검색해 보는 거야.”

작은 한숨 소리가 세어져 나온다. 그냥 도루강 근처에서 먹어야 했다.


다행히도 음식은 맛있었고, 함께 겻들인 와인도 괜찮았다. 그러나 늦은 점심과 와인 몇 잔, 그리고 오전의 과도한 산책으로 우리는 피곤해졌고, 그녀가 일단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다. 돌아오는 길, 그녀가 뚱하게 물었다.

“거기 한국인만 노리는 전문 식당 같아. 아니 어떻게 손님이 죄다 한국인 여행객이야?”

그랬다. 구석진 동네, 작은 식당, 작정하고 찾지 않으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식당에서 우리는 포르투갈에 도착해 가장 많은 한국인을 만났다. 한 팀은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20대 남녀들 같았고, 한 팀은 연인사이, 한 팀은 친구 사이 같았다.


‘어이 친구들, 이 구석진 포르투의 한 가게에서 당신들을 만나니 기쁘기 그지 없군.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나?’

이런 질문을 하기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어색했다. 그러니깐 이런 감정들, 가장 포르투적인 어떤 식당을 찾아 열심히 찾자왔더니, 뭐야, 전부 한국인인 거야? 너도? 너도? 젠장....목표의 무료함. 목표의 헛헛함, 목표의 밋밋함. 그리고 그녀의 짜증스런 말투.


식당을 나와 히베이라 지구를 걷는다. 그녀의 재잘거림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그녀가 벤치에 앉는다. 다리를 주무른다.

그랬다.


문제는 욕심이었고, 문제는 체력이었다. 욕심이 커지고, 체력이 떨어지니 관계에도 문제가 생겼다.

이때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눈앞에 그녀가 애정 하는 젤라또 아이스크림 집이 보인다.

‘잠깐만 기다려봐. 아이스크림 사올게.’

한참을 기다려 아이스크림 두 개를 들고 왔더니 그녀가 짜증을 낸다.

‘왜 두 개나 사와? 그리고 사오려면 초콜릿을 사와야지...’

좀 마음이 울컥한다. 포루투의 바람? 하늘? 평화?


개뿔,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녀가 잘못한 것은 없다. 그래도 기분은 안 좋다. 이게 모두 체력 때문이라고 우겨본다. 아이스크림을 오물거리며 주변을 본다. 앞 테이블엔 스페인에서 온 듯한 할머니, 손자, 엄마, 아빠가 젤라또를 먹으며 셀카 놀이에 빠져 있다. 오른쪽 테이블에는 왠지 멕시코에서 왔을 버반 가족이 있고, 그녀는 론리 플래닛을 보며 포르투 역사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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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해질녁 풍경을 오랫동안 구경한다. 옥탑방 창문 사이로 수많은 새들이 가깝고 멀리 보인다. 옥탑 방 주변을, 옆집 지붕 위를, 도로우강 위를, 노을진 붉은 하늘을 난다. 나에게는 이 전체 풍경이 신선하고 새롭지만 동시에 한없이 오래되고 낡았다는 느낌도 든다. 구체적인 삶의 세계를 지탱하는 무의식의 세계, 하늘이 세계, 신의 세계라는 느낌도 든다.


얼마나 다락방에 앉아있었을까? 그녀의 지친 몸과 마음의 충전이 끝난듯 싶다.

“형일아 나가자. 저녁 먹어야지”

시계를 보니 저녁 9시 30분이다. 가디건을 걸치고 저녁을 먹으로 나간다. 카르모 성당 주변에 자리한 작은 바들은 수많은 목소리와 음악으로 가득하다. 그 사이 한 야외 테라스에 앉아 프란세지나와 맥주 두 잔을 시킨다. 프란세지나는 식빵 사이에 소시지, 치즈, 고기 등을 두텁게 끼워놓고, 특제 토마토 소스를 듬뿍 얹어 만든 포르투식 샌드위치인데 맥주 한 잔의 안주로 딱 좋다.

“어때?”

“맛있는데. 별로 느끼하지 않아.”

“그치, 나도 딱 좋아.”

“건배”

“건배”


오늘 하루도 먹고 마시고 다투고 웃으며 그렇게 저물고 있다. 골이 띵할 정도로 차가운 맥주다. 시원한 포르투의 저녁, 동양 끝에서 온 오래된 연인, 테이블 위의 맥주와 토마토 소스가 듬북 엊어진 샌드위치, 흐르는 음악, 들뜬 목소리들, 그저 그런 인생들의 또 하루가 이렇게 가고 있다.



<참고문헌>

Pessoa, F. (1999). The Book of Disquiet. 배수아(2014). 불안의 서. 통영: 봄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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