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의 유럽 가래톳페스트가 맹위를 떨쳤다. 전 인구의 3분의 1에서 절반이 죽었다. 사망자만 유럽에서 2500만 명 이상. 역병을 전파한 매개체는 벼룩. 과정은 이랬다. 벼룩이 쥐의 피를 빨아 먹는다. 이때 예르시니아페스티스(Yersinia pestis)라 불리는 박테리아가 쥐에서 벼룩으로 이동한다. 이 벼룩을 쥐가 인간의 거주지로 이동시키고, 쥐가 죽으면 벼룩은 인간을 비롯한 다른 숙주로 갈아탄다. 인간에 올라탄 박테리아를 긁거나 문지르면 상처 안으로 더 깊게 들어간다. 이후 박테리아는 림프계로 들어가고, 그것의 결과로서 겨드랑이, 생식기, 목부분 등에 부스럼처럼 보이는 가래톳이 나타난다. 그 결과는? 최초 증상이 나타난 뒤 4일 내로 죽음.
가래톳페스트는 중앙아시아의 평원지대에서 시작해 실크로드와 몽골제국의 이동 경로를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했다. 유목의 공간에서 시작했지만 직격탄을 맞은 것은 정주의 공간, 도시의 공간, 농경의 공간 유럽이었다. 너무 많은 이웃들이 죽어나가자 곳곳에 두려움과 공포심이 깊게 새겨졌다. 두려움과 공포심이 커져 나가자 터무니없어 보이는 예방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모두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시의 치료법. 시궁창 안에 살기, 에메랄드 부숴먹기, 계란, 과일, 채소 먹기, 병든 사람 쳐다보지 않기, 생양파를 잘게 썰어 집안 곳곳에 두기, 오줌/고름 마시기, 문에 십자가 새기기, 자신을 채찍질하여 신에게 용서 구하기 등등
대부분의 예방법은 어림도 없었다. 그러자 누군가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미쳐가기 시작했다. 유대인이 우물에 역병을 풀며 돌아다닌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1349년 마인츠에서만 하루 6천 명의 유대인이 살행당하는 등 총 2만 명 이상이 학살되었다(Wright, 2017, p. 46). 상황이 좋아지지 않자 이번에는 마녀였다. 마녀라 낙인찍힌 자들을 잡아다 산채로 불태웠다. 종교적 광신자도 거리에 넘쳤다. ‘겁에 질린 채 살면 죽는다’는 모토를 내세우며 무덤을 파고 다니는 집단이 있는 가하면,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가두 행진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너를 강간할 거라고 위협하는 사람도 넘쳐 흘렀다(같은 책, p. 47). 개들이 시체를 물고 다니고, 타버린 유대인의 시체가 즐비한 거리, 분명 그곳은 지옥이었다. 그 지옥의 거리에서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사랑하는 이 옆에서 함께 죽을 것인가? 사랑하는 이를 혼자 죽게 내버려두고 자신은 도망칠 것인가?(같은 책, p. 49)
공포는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을 적으로 만들고, 스스로 자발적 고립으로 이어졌다. 아버지는 아이를, 아내는 남편을, 형제를 형제를 버렸다. 이 질병이 전염이 숨과 시각을 통해 발생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든 그들은 곧 죽었다(P. 49).
지옥 같은 시대에도 누군가를 보살피는 사람들은 있었다. 의사들이 있었고 이타주의자들도 있었다. 당시 의사들은 지면까지 닿을만큼 길고 긴 검은 옷을 입었고, 새가 역병의 악마를 쫓아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새 모양 가면을 쓰고 환자를 만났다. 이것은 의외의 효과가 있었다. 길고 긴 검은 옷 덕분에 벼룩에 물릴 일이 없었고, 유리 눈이 달린 새 모양 가면은 환자가 기침할 때 나오는 비말을 차단했다(같은 책, p. 52).
실제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가레톳페스트와 맞서 싸운 최초의 인물은 우리에게는 세계의 종말을 예측한 예언가로 잘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였다. 의사였던 그가 페스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가족의 상실이었다. 첫 번째 부인과 두 딸을 페스트로 잃은 것이다. 그의 제안은 일정부분 효력이 있었다. 거리의 시체 치우기. 더러워진 리넨 버리기. 죽은 환자가 썼던 시트나 의류 태우기, 물을 끓여 마시고 목욕 하기, 신선한 공기 마시기 비타민 c가 풍부한 마법의 약 먹기 등등은 청결을 중요시한 노스트라다무스가 제안한 예방법이었고, 이것만으로도 가레톳페스트의 유행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유는 심플했다. 청결은 쥐와 벼룩이 가장 싫어하는 것.
실제로 전염병의 확산에 있어 청결은 중요한 문제였다. 우리 스스로 내 주변을 청결하게 할 수 있다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전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레톳페스트는 인류의 가장 무서운 적 중 하나였지만, 16세기에 비누로, 20세기에는 항생제로 완전히 물리쳤다. 페스트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코로나 19 역시 언젠가는 인류가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지난한 시간을 버텨내야 하고, 그 사이에 많은 인류가 타격을 받는다는 것, 그 사이에 누군가는 누군가를 비난하고, 누군가는 미쳐가고, 누군가는 고립된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다보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어떻게 전염병 앞에서 우리는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한편 페스트가 유행하던 시기, 유럽의 한 편에서는 기괴한 풍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단체로 춤을 추기 시작한 거다. 이러한 조증은 남자, 여자,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으며, 탈진해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었다. 시작은 1518년 독일과 프랑스 접경 지대 스트라스부크. 프라우 트로페아라는 여성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묘한 풍경이었다. 춤을 출만큼 즐거운 일이 1도 없던 시절이었다. 오히려 그 시절은 역병, 기근, 전쟁 3종 세트가 이어지면서 비통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던 시간이었다. 역사가 존 윌러는 <무도광: 놀라운 질병의 기묘한 실화 (the dancing plague: the strange of an extraordinary illness)>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너무나 비참한 시대였기 때문에 거의 모든 계급의 사람이 견딜 수 없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기회만 있으면 술을 마시고 춤을 췄다(같은 책, p. 65).”
그랬다. 프라우 트로페아가 춤을 추기 시작한 3일째 날, 신발에 피가 배어났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춤을 췄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즐거움이 아닌 공포를 느꼈지만 이상하게도 곧 수십 명의 마을 사람이 그녀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의 정신착란 상태였고, 극도의 피로와 피부가 벗겨지고 부어오르고 피가 흐르는 발의 극심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춤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당시 당국은 여러 조치를 취했다. 처음에는 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밤낮으로 원없이 춤을 추면 회복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좀 더 춤을 잘 출 수 있도록 홀을 마련해주었고, 음악가들과 전문 무용수를 고용했다. 한편 마을의 댄스홀은 폐쇄하고 결혼식 같은 예외적 행사를 제외하고는 춤을 원천적으로 금지시켰다. 주변에서 춤을 춘다는 행위가 춤추는 사람들의 멈춤을 더 어렵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당시 이 마을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는 것과 관련된 일은 모든지 했다.
병세가 심한 사람들은 성 비투스의 성지로 보내졌다. 스트라스부루에서 30마일 떨어진 성비투스 성당 앞에서 사람들은 춤을 추며 쓰러졌다. 사제들이 춤을 추는 사람들 옆에서 미사를 올렸고, 이들에게 작은 십자가와 빨간구두가 주어졌다.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가 여기서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곳에 도착한 많은 환자들이 묘하게도 춤을 멈췄다.
스트라스부르의 춤 전염은 한 달 정도 지속되었다고 한다.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명확하지 않다. 다만 공동체의 배려와 지원, 우정의 힘으로 치유된 것은 분명하다. 주변 사람들이, 사회가, 국가가 나의 쾌유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질병에서 회복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을 거다. 그러나 이런 보살핌과 배려가 독이 되진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그 보살핌과 우정과 연대 때문에 춤 전염은 한 달 만에 멈춘지도 모르겠다.
우애의 공동체. 전염병의 시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 우리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는 방편.
<참고문헌>
Wright, J. (2017). Get Well Soon: History's Worst Plagues and the Heroes Who Fought Them. 이규원 역(2017).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서울: 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