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창의 질병사 -
14세기부터 17세기 유럽 각국이 흑사병(페스트)으로 끔찍한 시기를 거쳤다면, 같은 시기 대서양 너머 아메리카 대륙은 두창(천연두)이라는 전염병으로 아스테카와 잉카라는 문명 자체가 사라졌다. 스페인 출신의 정복자 몇 백명으로 구성된 군대가 잉카제국의 군대 수만 명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렸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 개입했다는 더 허무맹랑한 이야기보다 잉카와 아스테카 제국의 멸망을 좀 더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이 바로 두창이라는 전염병이다.
아마도 대서양을 건너 온 유럽인 중 누군가가 아메리카 대륙에 두창을 들여왔을 것이다. 두창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약 40도까지 열이 나고 구토가 나기 시작한다. 그 후 온 몸에 발진이 생기고, 평균적으로 전체 환자의 30퍼센트가 죽는다. 잉카제국의 황제 와이나 카파크는 두창에 걸려 1527년에 죽었다. 그가 가장 신임하는 장군들 전원과 가족 대부분도 죽었다. 만일 와이나 카파크가 살아 있었다면 잉카 제국이 역병으로 피해를 입었을지언정 스페인 원정대는 결코 승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용맹했고 민중들에게 대단한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Wright, 2017/2017, p. 90).
두창은 당시 아메리카의 또다른 위대한 제국이며 현재의 멕시코에 위치한 아스테카도 괴롭혔다. 두창에 감염된 군인이 전투 중에 죽었고, 그의 시체가 아스테카에게 넘어갔다. 1520년 9월 주민들에게 극심한 기침과 타는 듯 고통스런 부스럼이 나타났다. 역병이 돌기 전 아스테카의 도시 인구는 약 1만 5천 명으로 추정되지만 1580년에는 4퍼센트에 해당하는 600명밖에 남지 않았다(Wright, 2017/2017, p. 91~95). 맙소사. 거의 전멸이었던 거다.
유럽에서 두창이 넘어온 이후 아메리카 대륙은 적어도 그곳을 근거지로 삼고 있던 이들에게는 지옥이었다. 아스테카든 잉카든 희망이 없었다. 죽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에 대해 잉카의 파차쿠티얌키 살카마이와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다. “이틀 안에 미이크나카마이타 장군을 비롯한 수많은 명장이 죽었고, 그들의 얼굴은 온통 타오르는 듯한 딱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을 본 잉카인은 돌집을 준비시켜 스스로 고립했다. 그리고 거기서 죽었다”(Wright, 2017/2017, p. 96).
두창의 영향은 중남미 대륙의 모든 문명을 파괴할 만큼 가히 파괴적이었다. 배를 타고 대서양을 넘던 스페인 함선의 함장도, 라마를 기르며 고유의 문명을 살아내던 잉카인도 상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왜 이렇게 파괴적이었을까? 수천 년의 역사 속에 단 한 번도 유사한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험치가 없었고, 대응할만한 면역이 없었던 거다.
아메리카에 당도하기 이전 유라시아 대륙에 넓게 퍼졌던 두창 역시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가령 유럽에서만 18세기가 되어서도 약 40만 명이 두창으로 죽었다고 한다. 대부분은 면역이 없는 어린이였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1145년에 숨진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 천연두를 앓은 흔적이 발견되고, 기원전 430년 그리스 아테네에 대역병이 발생해 전체 인구의 30%가 사망했는데 이 역시 두창(천연두)으로 추정된다(이코노미스트, 2020, 4, 20). 좀 더 가깝게는 조선왕조 500년이 두창과 함께한 시절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나 넓게 퍼졌는지 질병 자체가 고귀한 신으로 받들어져 호구마마, 호구별성 등 무속의 신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했다. 최근 병자호란 연구에 있어서는 청 태종(홍타이지)이 조선에서의 두창 유행으로 전쟁의 조기 종결을 서둘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구범진, 2019).
두창은 아메리카로 이동 전 종족, 인류, 지역을 망라하며 유라시아 대륙 전반에 퍼진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그래서일까?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킹덤>의 소재 역시 조선시대 두창의 창궐이다. 두창에 걸려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조선을 배경으로 한 생지옥 드라마. 중요한 것은 생지옥이긴 하지만, 그곳에서 삶은 이어지고, 조선의 명맥도 이어지고, 시리즈도 지속된다는 거다. 그리고 누구나 예상하겠지만 킹덤 시리즈의 결말 역시 결국은 인류가 이겼다로 귀결될 거다. 두창의 창궐은 분명 무시무시하지만 유라시아 문명사에서 문명 자체를 사라지게 하지는 않았고, 큰 시간의 흐름에서 보면 인류가 두창을 이겼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텐데 무엇보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면역이 생겼고, 면역력이 어느 정도 유전될 수 있었으며, 선조로부터 이어지는 지혜로 두창의 창궐 시기에 국가, 개인, 공동체, 의료시스템, 과학이 해야 할 일이 전수되었기 때문일 테다. 가령 조선 후기의 명의 허준은 <신찬벽온방>에서 ‘운기의 부조화’, ‘위로받지 못한 영혼(여귀·려鬼)’, ‘청결하지 못한 환경’, ‘청렴하지 않은 정치’ 등을 전염병 창궐의 원인으로 꼽았고(경향신문, 2020, 5, 10), 실제로 두창이 창궐하면 정치, 사회, 가정을 정갈하게 하는 움직임이 강화됐다. 과학적으로 명확한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문명이 지속된 이유다.
유라시아 대륙과 달리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호모사피엔스에게는 그럴 여유도, 그럴 힘도 없었다. 일단 면역력을 가지기엔 아메리카 대륙의 인간들에게는 너무도 이질적인 바이러스였다. 두창은 유라시아의 가축 - 소, 말, 양 -에서 발생하여 이종 간 감염으로 인간에게 퍼졌다고 여겨진다. 유라시아인들은 그런 동물과의 접촉이 많았지만, 잉카인과 아스테카인에게는 그런 가축들이 생경하기 그지 없었다. 접촉할 일이 없었던 거다. 이에 대해 총‧균‧쇠의 저자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잉카인은 라마를 길렀지만 라마는 유럽의 소나 양과는 다르다. 젖을 제공하지도 않고 큰 무리를 짓지도 않으며 인간과 가까운 외양간이나 오두막에 살지도 않는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가축화된 라마와 보낸 시간이 유럽인이 소와 보낸 시간만큼 도움이 되지 못한 이유다(Diamond, 1998/2005).”
두창 바이러스는 감염이 되면 일단 기도로 들어간다. 일주일쯤 지나면 감염자는 오한과 발열, 끔찍한 통증을 겪는다. 붉은 반점이 입 안에 생기고, 이어서 얼굴, 다음에는 몸 전체로 번진다. 반점에는 고름이 차고 찌르는 듯이 아프다. 이 바이러스는 면역력이 없는 새 집단에 유입될 때마다 그 집단을 황폐화시켰다. 기원전 430년 천연두가 아테네를 휩쓸면서 아테네 군대의 4분의 1이 사망했고, 중세시대 십자군 전사들로 유럽에 유입된 이후 유럽 전체를 초토화시켰는데, 한 세기마다 5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슬란드의 경우 1241년 천연두가 바다를 건너 들어왔는데 섬의 주민 7만 명 중 2만 명이 사망했다(Wright, 2017/2017, p. 126).
그 무서운 두창이 콜럼버스가 탄 배를 타고 아메리카에 당도했을 때 유럽인들은 의도하지 않게 가장 강력한 생물학적 무기를 탑재한 상황이었다. 두창으로부터 깨끗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말 그대로 떼죽음을 당했다. 스페인 함대가 중앙아메리카에 도착한 1500년대, 한 세기만에 원주민의 90퍼센트 이상이 죽었다고 추정되니 말이다.
전 세계적인 규모로 창궐한 두창 바이러스는 인류의 공통된 화두였다. 그래서 그것을 물리친 과정 역시 그야말로 <왕좌의 게임> 스케일이다. 기록으로 남겨진 가장 효과적 방법은 서기 900년경 중국에서 처음 나왔다. 의사들은 천연두 환자의 고름 딱지를 건강한 사람의 피부에 문질러 생채기를 내곤 했다. 마마 접종이라 불린 이 과정은 의도치 않게 면역의 효과가 있었다. 일단 고름물집 딱지가 떨어지면 천연두에 면역이 된 거다(Wright, 2017/2017, p. 126). 마마접종은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고 교역로를 따라 서쪽으로도 전파되어 1600년대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도 실시되었다.
유럽에서 마마접종의 확산은 종교적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역병에서 누가 살아남을지는 오직 신에게 맡겨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이런 반발과 의구심에 맞서 의사들은 공개 실험을 하기도 했다. 가령 보스턴의 의사 잡디엘 보일스턴은 천연두가 유행하던 1721년 수백 명에게 공개 접종을 했다. 접종을 받은 사람은 훨씬 더 많이 살아남았다. 바이러스가 뭔지, 면역세포가 어떻게 바이러스와 싸우는지를 알지 못하던 시절이기에 왜 효과가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마마접종과 더불어 좀 더 안전한 백신 개발도 진행됐다. 1700년대 말,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 저 푸른 농가에서 소젖을 짜는 여성은 절대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는 풍문을 듣고, 제너는 소젖, 여성의 손이 어떤 보호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그는 소 젖을 짜는 한 여성의 손에서 고름을 채취하여 한 소년의 팔에 접종했다. 그것을 백신 접종이라 했다. 젖 짜는 여성을 둘러싼 풍문이 의학적 혁명으로 진화하는 순간이었다.
백신이 흔해지자 두창의 위세는 점점 약해졌고, 1965년 세계보건기구는 집중 두창(천연두) 박멸 프로그램 (intensified smallpox eradication programme)을 시작했다. 감염자를 격리시키고 주변 마을과 도시 주민들에게 백신을 접종했다. 과거의 두창은 산불처럼 퍼지곤 하지만 백신 접종이라는 방화선에 막혀 곧 꺼지곤 했다. 수천년 간 인류를 괴롭힌 두창바이러스가 사라진 것은 1977년이었다. 1977년 에티오피아에서 발병한 사례를 끝으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것을 과학의 승리, 인류의 승리라 표현했다(Zimmer, 2012/2013, p. 131).
그렇다. 그것은 분명 승리였다. 그러나 그 사이 인류가 감내해야 했던 희생, 눈물, 죽음의 두께는 만만치 않았다. 인류의 미래, 눈물과 죽음과 공포의 두께를 최소화하는데 필요한 것은 예방, 준비, 항체라 불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바이러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세상에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약화된 바이러스로 트레이닝을 한 후 본 게임에서 맞서 싸울 항체를 생산하도록 하는 것, 새로운 바이러스의 침입에 대응하는 내 안의 면역력을 높여나가는 것, 개인, 사회, 국가적으로 바이러스로부터 발혈할 질병을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즉각적으로 대비해내는 것. 이걸 해내지 못하면 미래 어느 시대에는 아무 것도 아닌 바이러스성 전염병 때문에 여러 제국이, 국가가, 공동체가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는 거다. 그래서 바이러스의 시대, 필요한 것은 나, 우리, 공동체의 힘을 키워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Wright, J. (2017). Get Well Soon: History's Worst Plagues and the Heroes Who Fought Them. 이규원 역(2017).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서울: 산처럼.
Diamond, J. (1998). Guns, Germs, and Steel. ,김진준 역(2005). <총,균,쇠>. 서울: 문학사상.
Zimmer. C. (2012). A Planet of Viruses. 이한음 역(2013). <바이러스 행성>. 서울: 위즈덤하우스
경향신문 (2020, 5, 10). "오장을 칼로 쪼개는 아픔"…전염병의 참상에 맞선 조선의 분투.
구범진 (2019).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서울: 까치.
이코노미스트 (2020, 4, 20). [‘역사 속 전염병’의 교훈] 바이러스의 공격, 더 집요한 인간의 항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