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독의 역사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에 두창을 전했다면,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에 매독을 전했다. 콜럼버스 원정대의 유럽 귀환 직후인 149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매독이 확산되기 시작한다. 중요한 공간은 매음굴.왕실과 교회는 매춘의 원인으로 아메리카의 인디언을 지목했고, 혼외정사에 따른 신의 저주라 선포했다. 난잡한 성생활은 지탄의 대상이 됐고, 반대급부로 처녀성과 동정은 고귀한 것으로 추앙받았다. 일부일처제와 성적 금욕만이 매독의 유일한 예방책으로 여겨졌다(아시아경제,2018. 10. 23).
유일한 예방책이 제대로 먹힐 리가 없었다. 매독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20세기 초반까지 대부분의 유럽인이 걸린 전염병이었다. 얼마나 흔했는지 1928년 페니실린이 발견될 때까지 유럽에서 매독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험이 전무한 독실한 크리스천과 결혼해야 한다는 농담도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유럽 셀럽들은 매독에 걸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베토벤, 나폴레옹, 슈베르트, 플로베르, 히틀러, 콜럼버스 등등. 얼마나 흔했는지 매독에 걸린 모파상은 매독에 걸린 후 이른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매독에 걸렸다.... 나는 자랑스럽다. 제기랄, 부르주아와 함께 지옥에나 가라지. 할렐루야, 나는 매독에 걸렸다. 이제 더 이상은 매독에 걸릴까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Hayden, 2003/2004).
매독(Syphilis)은 스피로헤테과에 속하는 트레포네마 팔리둠(Treponema pallidum)이라는 박테리아에 의해 유발된다. 항문, 요도, 질, 입 즉 성적접촉이 이루어질 수 있는 모든 부위의 점막을 통해 체내로 침투한다. 감염 후 약 3주가 지나면 작은 부스럼이 매독이 침투한 부위에 나타난다. 보통 아프지 않고 이후 사라진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이유다. 그러나 부스럼이 사라지고 나서 5~12주가 지나면 발열이나 발진이 나타나는데, 이때부터 매독이 온몸에 퍼져 피부, 림프샘, 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매독이 악명 높은 이유는 높은 감염률과 더불어 합병증의 위협이 크기 때문이다. 대동맥, 뇌까지 감염시켜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매독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23%가 사망하거나 영구 신체 손상이 생기고, 13%는 심장 손상, 10%는 뇌와 척수손상이 올 수 있다고 한다(하이닥, 2019, 5, 12). 실제로 매독에 걸린 환자들중 상당수는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수시로 난동을 부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렸으며 악의에 가득 차 있었다. 베토벤이 그랬고 보들레르가 그랬으며 니체가 그랬다.
매독균이 인간의 천재성과 창의성을 극대화시키는 놀라운 촉매라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기도 했다. 가령 20세기 초 시인 마르크 라 마르슈는 매독(syphilis)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매독이여 너는 위대한 중개자가 아니냐, 인간을 천재성과 이어주는 강력한 사유의 원천이자 예술과 학문의 씨앗을 전달하고 매혹적인 언행에 영감을 주는.”...(Wright, 2017/2017, p. 114). 병을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자유나, 그렇다고 끔찍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천재적인 이야기를 쏟아낸 니체는 매독균 때문에 정신질환이 생겨 병원에 갇힌 채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매독이라는 병은 문란한 성생활, 문란함에 대한 신의 징벌, 엄숙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쉽게 담론화되지도 못했다. 그저 사람들은 무서워하고 은폐하고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매독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꺼려져, 이탈리아에선 ‘프랑스 병’, 프랑스에선 ‘이탈리아 병’, 러시아에선 ‘폴란드 병’, 네덜란드에선 ‘스페인 병’.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국가의 이름으로 불렸다. 얼마나 저주했는지 미국에서는 1906년이 되어서야 <레이디스 홈 저널>이라는 언론에서 처음으로 매독을 다뤘는데 그 결과는 비참했다. 7만 5천명의 구독자를 잃었다(Wright, 2017/2017, p. 124).
저주 받은 놈, 짐승만도 못한 놈, 섹스에 미친 놈 등등의 꼬리표가 붙으면서 본능적으로 은폐의 매커니즘이 작동한다. 사람들은 축소, 은폐를 위해 더 많은 거짓말을 쏟아냈고 더 많은 희생양을 만들었다. 매독의 확산 초기 인디언들을 저주했고, 유럽 국가들은 서로 다른 나라와 종교를 비난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신의 저주로 둔갑하면서 처녀성과 동정이 추앙받았고, 각 분야의 셀럽들에게서 매독의 그림자를 지워나가기 위한 시도도 거듭됐다(Hayden, 2003/2004).
“나는 매독 진단을 받았다.”
이 말을 꺼내는 게 결코 쉽지 않았던 분위기였던 거다.
이 분위기를 이용한 나쁜 과학자도 있었다. 1932년 미국 앨리배마주의 작은 중소도시 터스키기. 공공보건서비스청은 치료받지 않은 매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확인하는 연구를 시작한다. 일명 ‘매독의 자연사 연구’. 매독 환자 399명과 건강한 사람 201명을 실험집단과 대조집단으로 나누어 무려 40년 동안 추적 관찰한다.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터스키기의 가난한 흑인 남성들. 정부에서 파견된 의사들은 매독에 걸린 흑인들에게 ‘당신은 지금 나쁜 피(bad blood)라는 병에 걸렸으니 치료해주겠다’면서 아스피린과 철분제를 약이라 나눠준다. 환자들에게 병명도 제대로 일러주지 않았고, 치료 효과를 보는 연구라 속였다. 근처 병원에는 공문을 보내 실험에 참여한 흑인들은 치료를 말고 그냥 돌려보낼 것을 요구한다.
1943년 실험이 진행되는 과정에 페니실린이라는 치료제가 개발되었지만 연구를 맡은 공무원과 의사들은 환자들을 치료하지 않고 계속 관찰하기로 결정한다. 세상에 이 실험이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72년 여름이었다. 내부 고발자에 의해 언론에 알려졌고, 실험은 중단된다. 그 사이에 실험에 참여한 환자들 중 28명이 매독 때문에 사망했고, 100명이 매독과 관련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배우자들 중에서도 40명이 매독에 감염되었고, 19명의 아이들이 선천성 매독을 지닌 채로 태어났다(중앙일보. 2019, 5, 29)
극악무도한 실험이었지만, 이 실험이 무려 40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매독을 둘러싼 무지와 은폐의 문화가 저변에 넓고 깊게 퍼져있었기 때문일 테다. 어떤 질병에 대해 침묵과 모욕 캠페인이 용인될 때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수십년 동안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실험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식적 사과는 1972년부터 또 25년이 지난 1997년, 클린턴 대통령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다. 이 기나긴 침묵의 시간 역시 매독, 매독에 걸린 자에 대한 침묵과 모욕의 프레임이 크게 작동했을 것이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것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다. 이 무시와 모욕을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일까? 구별짓기, 나는 너희랑 달라라는 안도감, 책임의 전가 등등. 전염병과 분투하고, 공존의 방법을 연마하는 데에는 1%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매독에 걸리면 코가 문드러진다고 한다. 그런데 단지 코가 문드러진다고 삶이 몰락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고립되고, 도움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짐으로써 인생은 파괴되는 것이다.
1818년 영국 런던. <블랙우즈 에든버러 매거진 Blackwood's edinburgh magazine>에 코없는 사람들의 모임 no nose'd club이라는 독특한 클럽이 소개된다. 클럽에 들어가면 처음 서로 거울을 보는 듯한 모습에 익숙지 않은 부끄러움과 묘한 혼란의 감정을 느끼며 서로를 응시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그 안에 웃음과 유머가 있다. 매독 환자가 비인간적이지 않게 그려진 최초의 기록이다(Wright, 2017/2017, p. 127~129).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 필요한 것은 “클럽”인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해지는 커뮤니티, 가장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은 공동체가 힘을 합쳐 전염병에 감염되고, 전염병에 감염될 확률이 가장 높은 약한 구성원을 돌보는 것이다. 코없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한 회원은 바로 거기에서 질병에 대한 수치심에서 해방되고 새로운 친구들을 얻는다. 수치심으로부터의 해방, 고립으로부터의 탈출. 수치심과 고립은 질병과의 전쟁에서 물리쳐할 가장 큰 적이므로 이는 대단한 일이다. 침묵하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퍼지고, 이 목소리에 사회가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치료법을 찾기 위한 간절함은 좀 더 강렬해지는 것 아닐까? 쪽팔리고 침묵하면 바이러스에 지는 거다.
<참고문헌>
Hayden, D. (2003). Pox: Genius, Madness, And The Mysteries Of Syphilis. 이종길 역(2004). <매독>. 서울: 길산.
Wright, J. (2017). Get Well Soon: History's Worst Plagues and the Heroes Who Fought Them. 이규원 역(2017).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서울: 산처럼.
중앙일보 (2019, 5, 29). [임재준의 의학노트] 터스키기 연구와 클린턴의 사과.
아시아경제 (2018. 10. 23). ‘사라진 질병’이 돌아왔다, 매독의 사회학.
하이닥(2019, 5, 2). [궁금한 이야기: 성(性)] 매독 양성 판정 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