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의 역사
한센병. 소위 나병은 신약 성서의 전통 안에서 예수의 삶, 십자가의 상징과 만난다. 신의 저주, 배척하고 격리해야 할 절대 부정이던 구약 시대의 나병은 예수가 그들 환자들 속으로 들어가 아픈 손을 잡고 치유한 이래 가장 숭고한 소명이 되었다. 이후 예수의 삶을 닮고자 한 수많은 수도사들과 신부들이, 예수를 알지 못하지만 예수의 삶을 살아낸 곳곳의 작은 예수들이, 나병의 정체나 원인을 알기 전부터 이들을 도왔다. 가장 가깝게는 <울지마 톤즈>로 잘 알려진 고 이태석 신부님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동네 성당에서 하와이의 몰로카이 섬에서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들과 산 벨기에 선교사 다미앵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모로카(MOLOKAI)> 를 보고 다미앵 신부와 같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어릴 때 누구와, 무엇을 접속하느냐는 그래서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이태석 신부는 1987년 부산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가톨릭 신부가 되는 뜻을 품었다. 마치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슈바이처 안정원을 보는 것 같다. 의사지만 신부가 되고 싶던 사람. 아프리카로 떠난 결정적 계기는 1999년 선교활동이었다. 남수단 톤즈에서 가난과 기아, 질병 등으로 도탄에 빠진 마을의 참상을 보게 되고, 그곳에 삶의 울타리를 치기로 결심한다. 병실 12개짜리 병원을 짓고 진료소를 만들었다.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돌보며 인근 80여개 마을의 순회진료와 예방접종도 했다. 학교를 만들고, 초,중,고교 11년 과정을 꾸려 수학과 음악도 가르쳤다. 기숙사도 짓고 톤즈 브라스 밴드도 만들었다.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이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나환자(한센인)들의 신비스러운 힘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
- 이태석, 『친구가 되어주실래요』 中
이태석 신부님은 2008년 11월 한국에 잠시 입국하였을 때, 대장암 4기를 진단받아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고, 암투병 끝에 2010년 1월 선종한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톤즈에 남긴 선한 손길은 그의 제자들에게 이어진다. 그 이야기는 금년 여름 개봉한 <울지마 톤즈>의 후속편 <부활>에 담겨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 영화는 선종 후 10년, 그의 제자들이 이태석 신부님이 꿈꾸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부활의 시공을 추적한다.
<부활>의 이야기를 보면서 코로나 19시대 필요한 연결 고리 중 하나가 이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다미앵 신부 - 이태석 신부 - 그의 제자들로 이어지는 선한 연결 고리가 곳곳에서 구성되는 것,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상처받는 존재가 많아지는 국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선배와 후배,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 거다. 아울러 가난해도 소박한 옹산도 떠올랐다. 세상에서 네가 제일 예쁘고, 제일 세고, 제일 강하고, 제일 훌륭하고, 제일 장하다고 우쭈우쭈하면서 수많은 삶의 얄궂은 고비들을 넘어서는 서로를, 매일 기적을 쓰고 있는 서로를 응원하는 동백이의 마을이 떠오르는 거다. 그런 마을도, 그런 관계도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장면이라 말하면 반박의 여지가 별로 없지만, 일단 내 스스로가 그런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근력을 키워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결국 최고의 시나리오는 공동체가 힘을 합쳐 환자를 돕는 것이다. 다정하게 돌보고, 아픈 손을 맞잡고,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일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일이야말로 제도와 시스템과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이라 말하겠지만, 그 무겁고 관료적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움직이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의 작지만 큰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태석 신부의 삶에게 작지칸 큰 영향을 미친 다미앵 신부(1840-1889),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 역시 신앙에 인도되어 하와이 몰로카이섬의 나환자들과 함께 살기를 선택한다. 당시 하와이는 영국 영향력 하의 입헌군주국이었는데, 왕실은 나병 환자의 격리수용법을 제정, 무인도인 몰로카이 섬으로 환자들을 사실상 추방한다. 1873년 5월, 다미엥은 주교의 허락을 받아 몰로카이 섬에 들어가 집을 짓고 간병하며 함께 생활했다. 그의 활동은 헌신적이었고, 그의 발자취, 손놀림, 행보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무겁던 왕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움직임을 지지하는 제도와 시스템이 구축되기 시작하고, 정부와 주민들의 노력이 더해진 거다.
나병. 우리에게 그냥 소록도를 연상시키는 나병은 나균에 의해 발병하는 세균성 질환이다. 이 질환을 처음 발견한 1873년 노르웨이 의사의 이름을 빌려 한센병이라 불리기도 한다. 나균은 열린 상처나 콧속 점막을 통해 체내에 침입한다. 나환자와 지속적이고 밀접한 접촉을 해야만 감염될 수 있는데 현저한 특징은 촉각의 상실이다. 사라진 손가락, 손, 혹은 발. 세균은 근육을 약화시켜 기형을 초래한다(p. 175).
사람이 괴물 취급을 받으면 괴물이 된다. 한센병에 걸린 환자들이 그랬다. 괴물 취급을 받고 괴물처럼 행동하던 한센병 환자에게 터벅 터벅 걸어들어간 다미앵 신부. 그는 때론 “무덤 속 시체처럼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환자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코를 막기도 했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한다. 오랫동안 버려졌다고 느낀 한센병 환자들에게 다시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것은 분명 신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매일 한센병 환자들과 어울려 저녁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담뱃대를 공유한다. 식사 시간은 밤과 낮 사이의 평화로운 시간이라 불렸다(Wright, 2017/2017, p.186).
한센병은 전염성이 강하진 않지만(3종 전염병) 병원균으로 전염되는 질병이다. 섬에 들어가 12년을 보낸 1885년 한센병에 감염됐고 4년 후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건물을 짓고 친구를 돌보고 아이들을 위해 인형을 조각하며 활동적으로 살았다. 조용히 체념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삶을 마무리한다(Wright, 2017/2017, p. 187)
다미앵을 추모하여 몰로카이섬에 건립된 동상 받침대에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인간은 이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질 수 없다”고 새겨져 있다. 그의 죽음 이후 누군가는 그를 비난하고 폄하하기 시작했다. 호놀룰루의 한 개신교 목사가 미국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다미앵이 원래 지저분한 사람이고 부주의해서 병에 감염됐고, 국가보건국이 한 일이 그의 봉사로 과장됐다”고 썼다. 근거 없는 가짜뉴스가 대부분이지만 어쩌면 그는 고집세고, 원칙주의자이고, 조심성이 없고, 게을렀을지도 모른다. 인간이기에 가지는 인간적 결점이 넘치고 넘쳤을 테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그는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처럼, 우리처럼, 인간적인, 인간적인 누군가가 숭고하고 헌신적인 삶을 펼쳐내기 위해 애쓸 때, 바로 그 이유에서 이 사람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다(Wright, 2017/2017, p. 189). 우리는 신이 아니다. 그의 행보는 이태석 신부에게 이어지고, 또 그의 제자들에게 이어진다. 선한 영향력의 진화. 이 진화의 계열에 들어가는 첫 번째 단추는 뭐 거창한 게 아니라 주변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작은 용기 정도다. 말은 쉽지만 삶에 장착하기는 만만치 않은 용기. 코로나 19시대, 이 용기를 나의 것으로 삼고, 응원하는 삶을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한국의 다미앵신부, 오동찬 의사. 그는 20년 넘게 소록도의 보건의료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삶을 읽다보면 괜히 용기가 생기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 이야기를 발견한 것은 경향신문에서 기획한 [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 10편 공공의료의 모범, 소록도]에서다. 다미앵, 이태석, 오동찬 선생님들의 이야기들이 단순 미담을 넘어 코로나 19 시대에 우리가 건져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쉽지 않겠지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6212106145
<참고문헌>
Wright, J. (2017). Get Well Soon: History's Worst Plagues and the Heroes Who Fought Them. 이규원 역(2017).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서울: 산처럼.
경향신문 (2013, 6, 21). [우석훈, 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 (10) 공공의료의 모범, 소록도.
이태석 (2013).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서울: 생활성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