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코로나19,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시대에..

장티푸스 메리를 기억하며...

by 오윤

1907년 미국의 아일랜드 이민자 메리 맬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여성 이민자라는 명찰을 달고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차별, 적대, 비웃음, 배제, 그 두터운 벽을 배경으로 메리 맬런은 뉴욕에서 요리사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장 잘 만드는 요리는 아이스크림. 당시 미국 상류층에서 아이스크림의 인기는 대단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복숭아와 라즈베리 소스를 결들인 피치 멜바라는 디저트 아이스크림, 그녀의 필살기였다. 문제는 그녀가 장티푸스의 무증상 보균자라는 것. 여기서 유념해서 볼 단어는 무증상. 그녀의 몸에는 장티푸스균이 바글거렸지만 본인은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다보니 그녀가 장티푸스 보균자라는 것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균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인간보다 이동이 쉬웠다. 그녀의 몸에서 나온 균은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타고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곤 했다(Wright, 2017/2017, p. 194~195).


11-1 장티푸스 메리(한겨레신문).jpg 출처: 한겨레신문


전파력은 대단했다. 1900년부터 1906년까지 그녀를 고용한 가족들은 장티푸스로 고생을 했고, 그러나 그녀가 슈퍼 전파자라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왜? 고용주와 가족들이 픽픽 쓰러져가도 그녀는 너무도 튼튼하니깐.. 오히려 그녀의 성실함과 실력은 그녀를 고용했던 스카이캐슬의 언니 오빠들에게 입소문이 나 원하면 어디든 취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1906년, 미국의 휴양지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한 상류층 별장. 가족과 하인들 6명이 집단으로 장티푸스에 걸린다. 예상하겠지만 이 별장의 셰프가 메리 맬런이었다. 메리 맬런은 장티푸스가 번지기 전 3주 전부터 이 집안에서 일을 시작하여, 장티푸스가 시작되고 약 3주 후에 떠난다. 아무도 그녀를 전파자라 상상하지 못할 때 그녀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사람이 있다. 위생 공학자 조지 소퍼.


롱아일랜드는 장티푸스가 흔하지 않은 최상류층이 살던 동네였고, 자신의 별장에서 장티푸스 전염병이 발생한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주인이 당대 최고의 위생 공학자 조지 소퍼를 고용한다. 조지 소퍼는 우물물부터 시작하여 수도관, 화장실 등 이런저런 가능성들을 모두 조사한다. 어떤 곳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물리적 공간에서 이유를 찾을 수 없던 소퍼는 가족들에게 장티푸스가 발병하기 전후로 달라진 게 무엇인지를 묻고 묻는다. 그러다 누군가 무심코, “아 맞다. 요리사를 바꿨어요.”라 말했고, 소퍼는 곧장 그 요리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조사는 어렵지 않았다. 메리가 그동안 일했던 모든 곳들에 연락을 해본 소퍼는 메리가 지나간 곳마다 장티푸스가 유행이었음을 발견한다(Bartoletti, 2017/2018).


그 다음부터는 “메리 찾기 대 프로젝트”

1997년 조지 소퍼는 미국 의학 저널에 메리가 장티푸스의 무증상 보균자이며, 그녀를 하루라도 빨리 찾아 확인하고,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를 찾은 곳은 파크 애비뉴에 있는 가정집, 이미 그 집안의 사람들도 장티푸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세탁부는 병원에 실려가 있었고, 외동딸은 위독한 상태였다. 조지 소포는 메리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략 이런 대화 아니었을까? “너는 모르겠지만 네 안에 장티푸스균이 있고, 그게 주변 사람들들 죄다 아프고 죽게 한다. 확인해봐야 하니깐 검사를 해보자.”


11-2 장티푸스 메리 (연합뉴스).jpg 출처: 연합뉴스

누군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황당하기 그지 없을 거다. 자신은 건강한데, 자신을 확산자라 이야기하고, 살인자로 몰고 있느니 말이다. 그의 말에 분노한 메리는 포크를 들고 덤볐고, 소퍼는 깜짝 놀라 달아난다. 다음 번에는 의사를 대동하여 방문하지만 문전박대를 당한다. 결국 소퍼는 보건당국과 경찰을 동원해 메리를 체포한다. 병원에 끌려간 맬런은 법원의 명령서 없이 소변과 대변, 혈액 표본을 채취당했다. 그렇게 그녀가 장티푸스 보균자임이 확인됐다.


이제부터 메리의 불행이 시작된다. 1900년대 초반 한해만 미국 전역에서 장티푸스로 약 3만 명이 사망해 국가 위기라는 말이 나올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의 이성은 작동하지 않았다. 황색저널리즘으로 유명한 언론사 <뉴욕 아메리칸>은 메리 사건을 처음 보도하며 “인간 장티푸스균”이란 선정적인 제목을 썼다. 몇 달 후엔 맬런을 마녀처럼 묘사한 삽화와 함께 실명을 공개한 큼지막한 기사를 내보내 80만부를 팔아치웠다. 체포 과정이 낱낱이 언론에 보도되고, 판매 부수에 급급한 언론에서 메리는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 '장티푸스 메리' 등의 별명을 얻는다. 본명과 사진이 공개되고, 해골을 프라이팬에 넣는 삽화로 희화화된다. 모든 사람이 그녀를 구경거리로 여겼고, 그 사이 그녀는 뉴욕시 이스트강의 작은 섬, 노스브라더섬에 있는 리버사이드병원의 시설에 격리된다.


11-3 a메리 사진(theconversation.com).jpg 출처: theconversation.com

사실 이 격리는 이상한 거였다. <뉴욕 아메리칸>의 기자들은 이 이상함에 대해 이런 기사를 썼다.

“메리 맬런은 평생 구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부도덕하거나 사악한 행위로 기소된 적도, 법정에 세워진 적도 없다.”

그렇다. 그녀는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부도덕하거나 사악한 행위를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평생 구속될 거라니?


안전보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의 문화사적 흐름에서 이 전제에 불편함을 느낀 언론과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중의 항의. 대중은 매리편을 들었다. 일부의 안전보다 모두의 자유를 중히 여긴 미국 역사상의 한 예다. 메리는 소송을 걸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1910년 새 보건국장이 된 래덜리는 메리를 풀어준다. “자신이 조심해야 할 것을 충분히 배울 만큼 오래 갇혀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더 이상 요리사로 일하지 않는다. 둘째, 손을 잘 씻고 위생을 잘 지킨다.

그러면서 정부는 메리의 생계를 위해 세탁부로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준다. 이 조치가 성공적이었을까? 결론은 비극적이다. 세탁부로 일하는 것은 메리에게는 적합하지 않았다. 보건당국이 시키니깐 하긴 하지만 우선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았고, 급여도 요리사로 일할 때보다 훨씬 적었다. 결국 메리는 이름을 바꾸고, 직장을 바꾸면서 요리사로서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1912년 메리는 ‘미시즈 브라운’이라는 가명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가는 곳마다 장티투스가 발병했다. 뉴욕시 당국은 그녀를 추적하기 시작했지만, ‘미시즈 브라운’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녀가 붙잡힌 것은 1915년 어느날, 슬로운 여성 병원에서였다. 이 병원은 면역계가 취약한 아기들이 많은 곳이었고, 이 병원에서 25명의 사람들이 장티푸스에 걸렸고 2명이 사망했다. 결과적으로 극악무도한 짓이었고, 메리는 또다시 격리되었다(Wright, 2017/2017, p. 204). 그 뒤 69살에 뇌졸중으로 사망할 때까지 23년 동안 그녀는 병원이 있는 섬을 나오지 못한다.


11-4 메리사진(national geographic).jpg 출처: national geographic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에 대해 라이트는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정부와 개인,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당국이 보균자를 단지 질병의 운반계가 아닌 개개인으로 볼 것이라는 믿음, 정부도 보균자가 일부러 시민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이 모든 신뢰는 대단한 신념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뤄내지 못할 일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최악의 인간이지만 않으면 된다(Wright, 2017/2017, p. 210).”


문제는 이 신념, 믿음이라는 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돌아보면 메리는 처음 감금된 3년 동안 감금이 아니라 새로운 직업 교육을 받았어야 했다. 돌아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병자도 아닌데 병원에서 3년동안 감금하는 것보다, 차라리 새로운 직업 교육이 제공되었다면 이후 스토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메리에게도, 이 사회에도 좀 더 좋은 스토리가 펼쳐졌을 거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보균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의 상식과 메리가 처한 상황 사이에는 깊은 균열이 있었다. 하지만 설사 보균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똥과 오줌에서 장티푸스 균이 나온다고 사람을 평생 섬에 가둬야 할 이유는 도저히 없다. 그 뒤에 발견된 무증상 보균자들은 섬으로 가지 않았다. 오로지 메리만 섬에서 평생을 외롭게 살다가 죽었다.


무증상 보균자는 인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발견된 무증상 보균자의 인생이 완벽히 망가졌다는 것은 씁쓸하다. 여기에는 공포감, 무지, 특정한 대상을 비하하고 조롱하고 손가락질하며 먹고 살아가는 언론들과 인간들, 이민자, 여성에게 악녀라는 프레임을 씌우려는 사회적 분위기 등이 중첩적으로 작용했을 거다.


코로나 19시대,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나의 공포감 때문에, 우리의 무지 때문에, 언론의 나쁜 프레임 때문에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기 쉽다. 누구든 쉽게 지탄할 수 있는 거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 차라리 그 시간에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손잡을지를 고민하는 게 더 낳지 않을까? 그래서 손쉽게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지금의 시대에서, 악의 없이 불행했던 '장티푸스 메리'는 더욱 기억할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Bartoletti, S. C.(2017). Terrible Typhoid Mary. 곽명단 역(2018). <위험한 요리사 메리>. 서울: 돌베게.

Wright, J. (2017). Get Well Soon: History's Worst Plagues and the Heroes Who Fought Them. 이규원 역(2017).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서울: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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